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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Mar 19. 2016

길바닥에서 일한다고 무시하지 마라

안경 쓴 남자, 바로 너.

 무명의 프리랜서 예술가는 말이 좋아 프리랜서고 예술가지, 실상 굶어 죽지 않으려면 늘 돈벌이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현실의 SCV(스타 크래프트 게임의 유닛으로 돈을 벌어다 주는 노동유닛)가 되어야 하는데 이번주의 아르바이트는 히어로들이 싸우게 되는 영화의 4DX 홍보였다. 오늘의 역할은 착하고 일 열심히 하는 '나레이터'다.

 

 마이크를 붙잡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멘트를 치고 있으니 안경을 낀 남자가 다가와 묻는다.

 

 "배트맨이랑 슈퍼맨이랑 왜 싸워요?"

 "네?"

 "둘 다 정의의 편이잖아요. 왜 싸워요?"

 "... 정의는 늘 부딪히죠."

 "미인들은 공부 잘 안하죠."

 "네?"


 난 나름 남들이 부러워하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공부 잘해야만 들어 간다는 대학의 학사 졸업장이 있다. 수재 소리 들으면서 자랐고, 학구열 넘치는 부모님 덕분에 공부라면 다방면으로 했다. 물론 지금은 내 욕심에 한다.


 내 자랑이다. 굳이 얘기 할 필요는 없으니 그에겐 그저 웃어 보였을 뿐이다. 속으로는 "니가 보는게 전부가 아니란다. 애송아."라고 생각하면서.

 남자는 이어서 말했다.


 "공부 좀 더 하셔야겠어요. 정의는 늘 부딪힌다는 말은 보편적이지 않아요.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소린가 할 걸요. 공부 좀 더 하세요."

 

 ... 일이다. 돈을 준다. 쌍시옷이 앞니까지 나오다가 들어갔다. 남자는 내일 다시 온다며 공부 좀 더 하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웃었다.

 정의는 늘 부딪힌다고 할 게 아니라 '정의도 늘 부딪힌다.'라고 말을 했어야 했나. 아니다. "상영관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을 했어야 했다.


 정의는 늘 부딪힌다고 생각한다. '정의'라는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옳은 일이 다른 이에게는 옳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인간, 사회, 국가, 개인, 혹은 집단. 무엇이든 다를 바가 없다. 정치인들도 자신이 하는 얘기는 정의라고 믿고 떠든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들이 말하는 것은 정의가 아닐 때가 훨씬 많다. 정의라기 보다는 이익.

 충돌은 내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다를 때 일어난다. 인간이 모두 다르듯 정의도 모두 다른 모양새를 지닌다.


 이 얘기를 그 인사에게 구구절절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굳이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안경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편적이지 않은 생각을 제시 했다고 해서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모두 안경을 꼈기 때문이다. 나도 안경을 쓴다. 하지만 그는 마음에 안경을 썼다. 그것도 앞이 보이지 않는 선글라스를.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건 안 한 사람이건 관계 없이 지혜로운 자는 지혜로우며 멍청한 사람은 멍청하다.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고 해서 얕잡아 보며 함부로 말 하던 그 남자가 나는 더 무지해 보였다. 타인에 대한 존중도 없이, 어떠한 경험도 없이 책만 들여다보고 앉은 사람들이 "나 똑똑합니다." 자만심에 가득차 화이트 칼라 랍시고 금뱃지를 다는 순간 국가건 기업이건 망한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그는 글렀다.


 그가 쓴 선글라스는 불량품인가보다.

 

 선글라스를 벗고 세상을 보면 나은 사람은 있어도 못한 사람은 없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의 지혜가 있다. 그도 지혜가 있겠지만 내 보기엔 불량품 같았던 걸 보면 나도 안경을 끼고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내 안경은 불량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하고 싶은 말.


 길바닥에서 일한다고 무시하지 마라. 길에서 얻은 경험이 책 보다 낫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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