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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r G Apr 04. 2024

사랑만 그 자리에 멎어 있었다


  이 도시에도 꽤 많이 왔다고 생각했다. 선상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과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던 이들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이들 사이에서 울었다. 채 비우지 못한 컵을 앞에 두고 얼마나 울 수 있나 하며 눈물이 멎을 때까지 눈에서 눈물이 다 떨어져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 내 속을 채운 감정은 사랑도 슬픔도 괴로움도 아니었다. 나는 어떤 단어로도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워지고 있었다. 

  우는 행위에는 쓰라림이 동반되었다. 아픈데 울었다. 덜 아프기 위해서. 얼마나 울 수 있나 그 바닥을 볼 작정이라도 한 사람처럼 울음에 나를 내맡겼다. 우는 것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니까 눈물을 뱉어내는 것으로 규정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감정을 밖으로 내놓을 수 있다면 볼이 부르트도록 울어서라도 그 감정을 덜어내 버리고 싶었다. 더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해하는 감정을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속에 응어리져 있는 정체 모를 그 큰 덩어리가 더는 나를 훼손하지 않았으면 했다. 눈 감은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금 나를 눈뜨게 하는 불안이 작별을 고해주었으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과감하게 결단 내리고 냉정하게 돌아서는 것. 하지만 그것은 우유부단한 나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눈 한 번 질끈 감고 주먹 한 번 쥐고 있다 보면 사라져 버렸으면 했는데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낼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힘든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의 나는 대담했고 무모했다. 지치고 지쳐 힘들다는 감각에서조차 한 걸음 멀어져 서 있게 된 지금, 나는 안다. 힘들다는 게 무엇인지를. 그렇기에 지금은 감히 힘들어도 괜찮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다. 괜찮지 않아 찢겨나가는 나를 보았기 때문이고 그리하여 파편이 되어 흩날리는 내가 나를 찌를 때의 고통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그러한 날들을 마주하게 된다면 이제는 전처럼 무모하게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모든 것을 감내할 것이라 선언할 자신이 없다. 나를 살고 싶게 하고 설레게 하고 희망에 부풀게 해야 할 마음이 나를 벼랑 끝에 세우는 잔혹한 사랑의 아이러니를 마주하는 것의 위태로움을 알기 때문이다. 죽을 날까지 아니 죽어서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건 견딜 수는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무모한 견딤을 통해 망가져 갈 나를 더는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무엇을 위한 노력인지 누구를 위한 결의인지 모르는 상태로 사랑이라는 모호한 감정을 쥐고 있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하고 자문을 반복했다. 상황이 되었건 의지가 되었건 사랑하는 자도 사랑받는 자도 아프기만 한 사랑을 붙들고 있는 건 어쩌면 서로에게 폭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게 끌어안을수록 더 고통스러워지는 이 마음을 무엇이라 규정해야 하는지, 죽을 만큼 아픈데 더 강하게 상대를 끌어안게 되는 이 고집을 무엇이라 해야 하는지, 놓으면 후련해질 것을 아는데도 쥐고 있게 되는 이 무모함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울었다. 강을 앞에 두고서. 숨을 죽인 채 날이 저물 때까지 울고 또 울었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놓으면 슬픔이 정말로 슬픔이 되어버릴 것 같아 숨을 삼키며 눈물을 뱉어냈다. 나도 모르게 눈꺼풀이 스르륵 내려왔다.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빗소리가 쉼 없이 귀를 두드리고 들어오고 밤은 깊어갔다. 눈물이 강물이 되도록 울었는데도 어쩐지 마음은 후련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은 온통 어지럽기만 했다. 얼마나 더 울어야 가슴에 새겨진 두 자의 의미를 알 수 있을지, 눈물은 멎지 않고 흘러내렸고 강은 쉬지 않고 흘러갔다. 다만 사랑만 그 자리에 멎어 있었다.


G. Okeeffe_Dark Abstr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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