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야?
월급쟁이 20년 차, 이제는 그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든다. 유치원생부터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회사원까지, 갓난쟁이 때부터 유치원엘 가기 전까지 단 몇 년간의 기간 외엔 한 번도 '백수'로 살아본 적이 없다. 친구들은 대학생 때 휴학도 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는데 나는 재수도 하지 않았고 대학도 휴학 한번 없이 스트레이트로 졸업했다. 그 나이 때에만 할 수 있는 워킹홀리데이나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있는데 그런 것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을까 싶다.
다른 사람들은 취직하기가 어려워서 면접만도 수도 없이 보던데, 나는 어쩌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일을 시작했다. 취업에 그렇게 열정을 쏟지도 않았는데, 어찌 보면 정말 운이 좋았는데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잘 살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생각으로 살았다.
그렇다고 평생을 건실하게 열심히 공부하고 일만 하며 산 것도 아니다. 돈이 무서운 줄 모를 20-30대 초반, 명품도 사 들이고 해외여행도 많이 다니고 솔직히 번 돈을 그냥 다 쓰며 살았다. 통장에 100만 원 이상 갖고 있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에 쓴 돈은 아깝지가 않은데 명품에 쓴 돈은 너무 아깝다. 좋은 경험 했다 치고 말았다. 해보고 별거 없네? 하고 안 하는 것과 안 해보고 억지로 참는 건 인생에 깨달음의 순도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매일을 살아지는 대로 살다가 코로나가 터지고 불경기가 오면서 회사가 어려워졌다. 일은 많아지고 몸은 너무 힘들고, 이러다 과로사할 것 같아서 그만두고 싶었지만 월급이 필요해서 그만두지 못했다. '와! 돈 정말 무서운 거구나' 깨달은 후부터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명품 하나 살 때마다 회사 몇 달 더 다녀야 되고 내 시간을 그만큼 월급과 교환해야 하는 것인데, 그 돈으로 투자를 했으면 몇 배가 되었을 텐데, 나는 그만큼 엄청난 돈을 잃었구나 싶었다. '필요한 거 아닌데 왜 사?'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이 너무 갖고 싶을 때엔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한 달 지나도 생각나면 그때 사자. 소비 습관이 180도 달라졌다.
그때부터였다. 월급이 항상 부족하기만 했는데, 월급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만큼 통장에 돈이 쌓이기 시작했다. 주로 생필품 외엔 소비가 없으니 한 달에 몇 백만 원 투자금이 생기는 게 어렵지가 않았다. 아파트 대출금도 다 갚고 투자도 차곡차곡하면서 금융자산도 꾀나 모였다.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 존재인지 방심했다. 이제 대출도 없고, 금융자산이 쌓이니 일을 하기가 싫어진다. 집을 팔아서 그 돈으로 배당주 투자를 하고 배당금으로 살까? 실행할 엄두도 나지 않는 생각을 매일같이 한다.
게다가 인간의 욕심이 참 끝이 없지, 이제 그만 일하고 쉬고 싶으면 선택을 하면 될 일인데, 집을 팔기는 싫다. 첫 집이라 그런지 애착이 남 다르다. 향후 개발이 되어 자산 가치가 오를 것을 생각하니 집을 팔고 백수로 살다가 나중에 뒷목 잡지 않을까 싶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생각을 해봤다. 나는 지금 왜 일을 하고 있을까?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20년을 쉬지 않고 일했으면 나는 쉴 자격이 충분하지 않나?
평일 시간에 대한 자유를 잃고 살지만 회사 생활을 통해 나 스스로 성장하는 부분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끔은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은 '돈을 받고 인생을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의 시간을 내어주고 월급 그 이상의 가치를 얻는 곳이었다.
다행히 인복이 많아 항상 좋은 사람들과 일했고 일하고 있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감정을 느끼고 고민하며 아직도 성장한다. 직장생활 20년 내내 성장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은 승진도, 월급 인상도 아니다. 내가 확장되는 과정에 있는지, 즉 나의 생각의 깊이가 더 깊어지고 있는지,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사고하는 사람으로 자라고 있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더 이상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이 들 때, 그때가 나의 퇴사일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