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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하늘 아래 덩그러니

우리 셋

by 직진언니 Apr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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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서울에 있는 집을 모두 처분하고 고향으로 가겠다고 하셨을 때 즈음 집으로 고소장이 날아왔다. 빚 독촉 내용이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의 다른 동 호수가 적힌 재산목록에 가압류를 언급하는 내용이 있었던 기억이다. 우리 집에 아파트가 두 채나 있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시간이 지나서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빠는 이미 고향으로 가시겠다고 하기 전에 직장을 그만두셨고 사업을 알아보셨는데 하시던 일이 잘 안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아빠는 상처뿐인 기억을 안고 고향으로 떠나셨고 엄마와 오빠, 나, 우리 셋은 서울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짐작건대 그때 당시 엄마는 거의 무일푼인 수준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시는 일이 잘 되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간 아빠가 이혼 위자료나 주택 자금을 지원해 주셨을 리 만무하다.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 학교와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려고 노력하셨다. 엄마의 노력 끝에 우리는 아빠가 떠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방이 2개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엄마와 내가 같은 방을 썼고 오빠는 작은방을 사용했다. 다세대 주택이 촘촘하게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 창문을 열면 옆집 풍경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집이었다. 어떤 날은 동네 꼬마들이 우리 집 창문에 달라붙어 집 안을 엿보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아파트에서 살 때와 비교했을 때 가장 불편한 점은 단연코 화장실이었다. 한 여름에 에어컨이 없이 지내는 것은 그래도 견딜만했다. 한 겨울에 너무나도 추운 화장실은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다. 매일 덜덜 떨며 순식간에 샤워를 마쳐야 했고 아침에는 고양이 세수만 하고 후다닥 화장실에서 나와야 했다. 오죽하면 그 시절 나의 꿈은 화장실이 따뜻한 집에 사는 것이었다.








다사다난했던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고 이제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일과가 끝난 후 나를 불러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하셨다.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간 나에게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두발 단속 하려고 데려왔다. 그런데 넌 2학년 때 몇 등 했어?

"1등이요."



타고난 머리색이 밝았던지라 오해를 하셨는지 학생이 염색을 했으니 두발 단속을 해야겠다는 심산으로 교무실로 데려왔는데 뜬금없이 나의 2학년 등수가 궁금하셨나 보다. 선생님의 표정은 순식간에 변했고 두발 단속을 하시겠다며 가위 어디 있냐고 뒤적거리던 손은 멈췄다. 염색을 한 건지 아닌지 사실 확인은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 순간 사회에서 만난 어른에 대한 첫 실망을 경험했다.


그 후로 선생님은 나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반장까지 시키셨다. 나는 반장역할을 하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내가 반장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엄마가 학교일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체육대회 같은 행사가 있으면 간식도 준비해야 했고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혼자서 오빠와 나를 보살피느라 힘든 우리 엄마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가 않았는데, 하는 수 없이 1년을 꼬박 반장과 반장엄마로 살아야 했다.








겨울 방학 동안 큰 변화를 겪었지만 나의 학업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태생부터 독립적인 기질이었던 것인지 엄마와 아빠의 이혼은 내 인생과는 별개의 사건으로 구분되었다.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이 평소와 똑같이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은 삶의 변화가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중요하기에 불필요한 감정 따위는 외면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해결하지 못 한 마음의 그들이 아직 나를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감정을 뒤로한 채 중학교 3학년 말, 나는 진학하고 싶었던 외국어 고등학교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합격 발표가 있기 며칠 전 꿈에서 나는 어딘지 모를 높은 곳에서 추락하고 있었다. 땅에 가까워지는 순간 커다란 에어매트의 가장자리에, 엉덩이가 바닥에 살짝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걸쳐 살아남았다. 고등학교에 입학 후 합격자 등수를 확인해 보니 나는 끝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합격자였다. 은유적이긴 했지만 꿈의 내용과 너무나도 비슷한 결과를 보고 있자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합격 소식은 고단하기만 한 엄마의 일상에도 단비 같은 행복한 순간이었으리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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