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키도 컸다. 듣기로는 반장도 하고 주변에 싹싹해서 친구들도 여럿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말을 트게 되었는데 그 친구 옆에 서면 크지 않은 내 키가 더 작게만 느껴졌다. 어쩐지 붉어진 피부가 더 새빨갛게 타들어가는 느낌에 얼굴 온도가 한껏 높아졌다. 다이알 비누는 언제 효과가 나타날까. 얼굴이 그렇게 뜨거워진 날에는 집에 와서 세수를 여러 번 했다. 듣기로는 두 번 정도 세수하면 된다고 했지만 좀 더 효과가 있을까 봐서 세 번, 네 번도 했다. 빨리 피부가 좋아지면 쭈뼛대지 않고 그 친구와도 편안히 얘기할 수 있을까. 그날을 기다리는 사이 그 친구가 부추겨서 극장도 가 보고 인생 처음 버거킹도 가 보았지만 아직 피부가 좋아지려면 조금 멀었기에 난 계속 쭈뼛대기만 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산 건 가짜 다이알 비누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그 좋다던 효과는 전혀 없었고 그 친구는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며 나의 축하까지 받아갔다. 속상한 마음에 학교에서 집에 가는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한동안 나는 그렇게 내 부족함을 탓하며 침울하게 지냈었다.
그때부터 한참이 지난 어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정리하다가 우연히 옛 사진이 들어있는 폴더를 클릭했다. 그 속에는 지금 나보다도 잘 나고 생기 있어 보이는 고등학생인 내가 있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