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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Oct 12. 2021

나의중동여행기42_미이라 전시실에 혼자

왜 아무도 안오는거야

이집트 박물관

첫날 미스터지와 함께 피라미드를 돌아본 나는 이상한 용기가 생겼다. 왠지 반나절 정도는 혼자 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오늘도 미스터지와 함께 다니면 또 사진만 잔뜩 찍어야 할 것 같았다. 하루 쯤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여행하고 싶었다.


미스터지에게 이집트 중앙 박물관에 내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으니 오후 늦게까지 박물관을 구경하고, 해가 질 때까지 나일 강을 산책하다가 저녁이 되면 왓츠앱으로 미스터지에게 연락해 데리러 와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었다. 미스터지는 흔쾌히 그러자고 하며 나를 박물관에 내려 주었다.

들어왔다 박물관!

이집트 중앙 박물관엔 어마어마하게 많은 관들이 있었다. 한국에선 `이집트전시실' 같은 코너에 관 하나 넣어놓고 굉장히 중요한 유물을 모셔온 것마냥 설명판을 가득 달아 놓는데, 여기는 그렇게 생긴 관들이 끝없이 나왔다. 얼마나 많은지 나중에는 장롱에다 관을 넣어서 박물관 한쪽에 쌓아두고 바닥에도 쌓아두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몇은 그냥 야외에다가 꺼내놓기도 했다.


 상형문자가 적힌 관이나 비석도 유리관에 넣어놓지 않고 그냥 세워놔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그것을 대놓고 만져보는데도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나도 살짝 손가락으로 눌러보았는데 아무런 경보도 울리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관들
장롱에도 넣어두고
덜 중요한 건 야외에 던져놓는다

이집트 문명은 사후세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사후세계를 위한 준비를 오랜 기간에 걸쳐 한다.

예를 들어 관 밖에 적힌 상형문자는 주로 망자가 사후세계로 쉽게 갈 수 있도록 쓴 안내서('사자의 서')인데 그 내용이 상당히 자세하다. "여기서는 이런 신을 만날 겁니다. 그 때 이 주문을 외우세요." 요런 안내까지도 다 적혀 있어서 해설 읽는 재미가 있다. 마치 게임 퀘스트 깨는 느낌이다.

관에 적힌 상형문자들

또 사람의 장기 중에 위, 허파, 창자, 간잘 보존해서 여러 항아리에 나눠 담았다. 항아리 머리도 당시에 믿던 호루스의 아들 얼굴(자칼, 매, 개코원숭이 등)본땄다고 한다.

장기가 들어있는 항아리
호루스의 아들을 본딴 항아리

사후세계를 믿기 때문에 동물을 미이라로 만든 이들도 있다. 박물관엔 실제 미이라가 된 양이나 악어, 개도 전시돼 있는데 개나 양은 그렇다 쳐도 악어는 대체 왜 미이라로 만든 건지 의아해진다. 악어를 좋아해서 같이 데려가고팠던 사람이 있었나? 여튼 길이가 수미터가 되는 커다란 악어를, 얼굴까지 그대로 본따 미이라한 모습은 상당히 경이롭다.

악어 머리
기다란 악어
원숭이 미라와 강아지 미라
양 미이라

신기한 유물이 많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데 웬 직원이 다가와 막아섰다. "노. 카메라 노." 여러 사람들이 사진 찍는 걸 봤는데 갑자기 막아서니 당황스러웠다. 촬영이 허용되는 게 아니었나?


날 막아선 그는 손가락으로 벽에 붙은 사진기 표시를 가리켰다. "카메라 머니. 이집션 파운드."

그렇다. 박물관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돈을 추가로 내야 했던 것이다. 아니, 유물 보호 차원이면 그냥 다 안 된다고 해야지 사진 찍는 걸로 장사를 한다고? 요상한 논리에 웃음이 나왔지만 일단 룰은 룰이니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대망의 그것이 왔다. 미이라 전시관.

박물관 입장료는 2500원 남짓이지만 미이라 전시관 입장료는 한국 돈으로 만원이 넘는다. 한국보다 물가가 훨씬 싼 이집트 물가에 비춰 보면 거의 3~4만원 돈이라고 봐도 된다. 이걸 가, 말아?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만원을 쥐어주고 들어갔다가 별로면 어쩌지 고민이 들었다. 벤치에 주저 앉아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피는데 앞에 웬 저기 중국인 학생들 무리가 보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냉큼 달려가서 미이라 전시관 어땠냐, 돈 값어치를 하더냐 등등을 물었다. 남학생 한 명과 여학생 세 명이었는데 여학생 셋은 무섭다고 하고 남학생 한 명은 익사이팅하다며 값어치가 있다고 했다. 역시 확신이 필요했어.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필 내가 들어간 시간대에 미이라 전시관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커다란 전시관들이 여러 형태로 누워 있었고 그 안에 미이라들이 누워 있었다. 공기는 후텁지근했고 안은 적막해서 탈탈탈탈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만이 들렸다.


유리관 안에 반듯이 누운 미이라는 상태가 아주 양호했다. 현대에도 미이라 기술이 유행했다면 이집트 사람들이 해외 기술 수출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신을 사람에 가깝게 보존하는 재주가 있었다. 굳이 따지면 시신보다는 아주 마른 사람에 더 가까워보였다.

다만 미이라에겐 눈알이 없기 때문에 흰색 돌을 가져다가 검은색 눈동자를 칠하고 눈동자처럼 넣어 둔 경우가 있었다. 그런 미이라는 보고 있으면 어쩐지 눈이 마주칠 것 같은 느낌에 더럭 무서워졌다.


공포영화도 못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미이라 전시관을 다 돌아본 건 순전히 `입장료 본전' 때문이다. 미이라가 전시된 유리관을 하나하나 돌아보고 기원과 제작 방법이 적힌 전시실까지 다 돌아보고 나니 사람들이 조금씩 들어오고 전시실에 말소리가 채워졌다. 진작 좀 오지, 생각하며 그 으스스한 곳을 벗어났다.


전시실을 다 돌아보고 밖으로 나왔더니 벌써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 조금 걷고 싶었다.

나일강 건너는 길

그것이 야무진 착각이라는 걸 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이로 강 건너 카페에 가려고 300m 정도 걸었는데 수십 명의 아랍인 남자들이 나를 쳐다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위협을 느끼고 반대편으로 되돌아가려다 길을 잘못 접어들었는데, 거기엔 더 많은 아랍인 남자들이 있었다. 여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얼굴을 꾸개고 걷는 수밖에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치는데 웬 작은 남자아이가 헤이!헤이!하고 나를 따라오며 소리를 질러댔다. 불쾌감이 들어 얼굴을 찌푸렸는데 그 녀석이 내 표정을 보고 화가 났는지 갑자기 발로 땅을 퍽퍽 차며 "뻑큐! 뻑큐!"라고 외쳤다.


 기껏해야 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녀석이었는데 자기보다 어른이고, 처음 보는 사이인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데서 놀라고 말았다. 여기는 내가 나이가 많든 키가 크든 그냥 동양인 여자라고 인식되는구나. 그것이 나를 두렵게 했다.


가는 길마다 비슷한 일을 겪자 거의 패닉이 되고 말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아까 거의 남자들에게 에워싸일 뻔한 순간도 있었다.


어디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에선 와이파이 연결이 안 되기 때문에 와이파이가 연결되는 곳으로 가서 미스터지를 불러야 했다.

아까 확인해 둔 지도엔 가까운 거리에 노보텔 호텔이 있다고 했다. 그리로 일단 몸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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