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 Lee Feb 21. 2016

스트랫퍼드의 기억

2009년 2월 ~ 2010년

 1년짜리 인턴 기간의 두 번째 기간이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09년 1월에 온타리오 스트랫퍼드(Stratford)라는 곳에 위치한 지역 의료서비스 기관으로부터 잡오퍼를 받았다. 휴런과 이리호 사이에 위치한 온타리오 남서부 지방은 호수 효과(lake effect)로 인해 캐나다의 스노우벨트(snowbelts)라고 불릴 정도로 정말 눈이 많이 내린다. 반면에 토론토도 역시 5대호인 온타리오호를 끼고 있지만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비교적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하지만 남쪽의 버펄로에는 폭설을 가져온다.)


사실 그 전까지 스트랫퍼드에 가본 적은 없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눈폭풍이 오는 날에 잡인터뷰가 잡혔는데, 아무래도 제시간에 도착할 것 같지 않아 중간에 차를 세우고 좀 늦을 것 같다고 전화를 해 양해를 구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무튼 하이웨이 7을 따라 한 시간 정도 달리니 눈에 덮인 조그만 도시가 나왔다. 시내에 낡은 붉은색 벽돌 건물이 들어서 있고 토론토와는 달리 영국의 옛 도시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트랫퍼드는 사실 셰익스피어 페스티벌로 유명하며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현대 뮤지컬까지 다양한 공연을 하는 극장들이 4월부터 10월까지 문을 여는 곳이다. 지명도 스트랫퍼드-어폰-에이본(Stratford-upon-Avon)이라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탄생한 마을에서 유래한 것이다. 스트랫퍼드는 인구 약 35,000명의 작은 도시로 아이들을 키우는데 좋은 곳이다. 도시 한 가운데 조성된 호수에는 매년 봄에 백조를 방사하여 한가롭고 여유로운 백조의 호수변을 산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매년 봄에는 송어 낚시대회가 열리기도 한다. 겨울에는 꽁꽁 언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거나 하키를 즐긴다. 비탈에서는 눈썰매를 탈 수도 있다. 그리고 저스틴 비버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이맘때 스트랫퍼드에서 두 번째 생일을 맞은 J는 여전히 한 마디 말도 안 해 걱정이 되었지만 말이 늦는 아이도 있다는 어른들의 말로 위안을 삼고 기다렸다. 특이하게도 J는 화장실에 달린 환풍기가 돌아가면 반사적으로 달려와서 끄곤 했는데, 그렇게 크지 않던 팬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았다. 냉장고 문에 자석 글자를 붙이면서 단어를 만들며 노는 걸 제일 좋아했고 영어 파닉스, 한글 자모 등 글자와 단어를 가르쳐주는 비디오를  끊임없이 보기도 했다.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한 4개월 정도 지났을 때, 하루는  J가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너무 답답해서 아동 보건 서비스 쪽에서 일하는 동료 직원 리안에게 "우리  막내아들이 2살인데, 말을 아직 안 해서 왜 그런지 알고 싶은데, 혹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알아?"라고 물었다. 그러자 리안은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면서, 우선 언어치료사와 상담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스트랫퍼드 종합병원 언어치료실에 여유가 있어서 얼마 기다리지 않고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이 약속이 앞으로 시작될 기나긴 여정의 첫걸음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이전 03화 질주본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