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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Lee Feb 20. 2016

떼쓰기 대마왕

분노발작과 심리탈진

지금도 가끔 그러지만 1살 반에서 2살 무렵 J는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될 때면 내부로부터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표출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소한 것들이라도 몇 가지가  상승효과가 겹쳐지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발작에 가까운 떼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아는 사람 집이라도 방문했다 집에 와야 할 때, 취침시간을 넘겨 졸리기는 하지만 새로운 놀 것이 많은 곳을 떠나기 싫은 감정이  상승효과를 부려 극심한 발작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억지로 차에 태워도 자리에 앉기를 거부하며 뻣뻣하게 경직된 몸으로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른다. 쇼핑몰에서 원하는 게임을 사지 못하거나 충분히 전시된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할 때도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울고 소리 지르고 떼쓰는 아이를 그냥 둘러메고 나와야 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J가 2살 때 자폐일 가능성이 있다는 소아과 전문의의 평가는 청천벽력 같았는데, 설상가상일까? 자폐증라는 장애의 무거움에 더해 새로 알아야 할 것들도 정말 많았다. 낯선 용어는 기본이고 상대해야 하는 전문가들과 영어로 대화해야 하니 이제 막 정착한 이민자가 상대하기에는 벅찬 일의 연속이었다. 초기 인터뷰에서 많이 들었던 단어 중에서도 분노발작이라고 번역되는 tantrum과 심리탈진(meltdown) 같은 것들은 더욱 생소하게 느껴졌다. 물론 ASD 세계에는 이것보다 낯선 용어와 약자도 많이 등장한다. 분노발작이라는 번역이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그냥 항간에 쓰는 말 중에 '지랄병 한다'라고 표현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사실 이 단어는 간질과 관련 있어서 어감이 좋지 않다. 또는 '생떼 쓴다'는 말도 있는데, 이건 일반적인 떼쓰는 아이들에게도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에 그냥 분노발작이라고 하는 것이 제일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용어인 meltdown은 심리탈진으로 번역되는데, 이것은 원자로 노심이 냉각계통 이상으로  녹아내리고 주변으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매우 심각한 사고인 노심용융을 지칭하는 단어다. 그런 단어를 적용할 정도면 상당히 심각한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보다 전문가의 손을 빌리자면, 자폐증을 보이는 개인이 그동안 억눌려 왔던 스트레스를 더 이상 다스릴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을 심리탈진이라고 하는데, 마치 분노발작처럼 보이는 폭발 속에서 분출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또 몰랐던 사실은 자폐성 장애아동이 심리탈진을 보이는 것은 의도적이 아니며, 무력한 감정과 압도당한 기분을 느낀 결과라는 점이다. 사실 어찌 보면, 우리는 자폐성 장애아동의 기분을 거의 모른다고 볼 수 있다. 자기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면 자폐라고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자폐성 장애아들은 가끔씩 그 이유가 뭔지 짐작도 못하는 심한 분노발작을 보이기도 하는데, 단순히 너무 흥분했거나 아픈지만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한 경우일 수도 있다. J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자폐를 진단했던 정신과 의사의 조언에 따라, 매일 출근길에 어린이집에 데려다 줬는데, 하루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큰 소리로 울기만 해서 난감하기  그지없었던 적이 있다. 출근 시간에 쫓기던 나는 2~3분 기다리다가 거의 완력으로 J를 차에서 끌어내어 교사한테 인계하고 화가 난 상태로 차로 돌아왔는데, 우연히 뒷좌석을 보니 차 바닥에 체리 한 알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있다. J는 그날 아침 어린이집에 가는 길에 간식으로 체리를 먹었는데, 아마도 마지막 주차하는 순간에 체리를 바닥에 떨어뜨린 모양이었다. 그것을 주워달라고 했으면 되었을 텐데 왜 쉬운 길을 두고 힘들게 떼쓰고 모든 사람을 괴롭힌 것일까?


대부분의 자폐아들은 공격적이지 않지만 많은 경우 어려운 상황에 노출되거나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심리탈진을 하거나 심각한 분노발작을 일으킨다. 자폐아가 이런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까다로운 아이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간의 단순한 전략을 이용한다면, 아이의 심리탈진이나 분노발작을 줄일 수 있으며, 자제력 향상도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1] 자녀의 심리탈진은 대개 자녀가  욕구불만이 있을 때 발생하며, 자녀가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불만이 최고조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표현형태로는 소리 지르기, 울기, 귀 막기, 자해, 간헐적인 공격성 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심리탈진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폐성 장애아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스트레스 유발을 최소화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일상적인 규칙을 시각화하여 안정감을 주는 것으로 시각적 일정표 (visual scheduler), 시각적 작업판(visual working board), 시각적 신호(visual cue) 등이 있다. 변화가 필요할 경우, 변화에 앞서 상황을 인지시키고 준비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으로 사회적 이야기(social stories)를 사용한다. 머리 깎기, 새로운 학교 가기, 수영장 가기, 쇼핑몰 가기 등등 다양한 스토리를 구성할 수 있다. 자폐성 장애아는 미리 학습된 상황에 대처하기 쉽기 때문에 침착함을 더 잘 유지할 수 있다. 만약 필요하다면 감정을 식힐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할 수도 있는데, J의 경우에는 실내에 설치하는 1인용 텐트를 이용했다. 나중에는 스스로 감정조절이 안 될 때 텐트에 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유사한 사례로는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이 사용한 자가 포응기(hugging machine)가 있는데, 템플이 불안하거나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스스로를 좁은 상자에 넣고 줄을 당겨 압박을 가하는 장비를 사용하여 심리적 안정감을 되찾았다고 한다.


위키하우에서 찾은 항목 중에 놀라운 것이 있었다면, 바로 '심리탈진 중에는 절대로 경찰을 부르지 마십시오.'라는 경고였다. 자폐증 환자들이 경찰의 관리 하에 있을 때 정신적 외상을 입거나 죽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믿기 힘든 일이라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아니다 다를까 실제로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9세에 아스퍼거스 진단을 받았고 15세 때 캘러밋(Calumet)시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스테폰 와츠(Stephon Watts)의 가족은 자폐아들을 사선에서 구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자폐성 장애아를 둔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와츠 가족도 스테폰이 흥분하거나 길을 잃고 방황할 때 긴급 서비스에 의존했다. 사회복지사와 의사들도 즉각적인 정신적 안정이 필요할 경우 경찰에 연락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시카고와 같이 법집행에 불신이 강한 곳에서 경찰의 개입을 원치 않았던 스테폰의 아버지 스티븐은 경찰을 부르지 말 것을 아내에게 요구하면서 언젠가 경찰 손에 죽을 수 있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2]


실제 생활에 있어, 심리탈진보다 더 많이 접하게 되는 현상이 바로 분노발작이다. 경미한 분노발작은 아이들이 원하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다. 자폐성 장애아의 경우에는 분노발작을 통해 어른을 통제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분노발작을 보일 때마다 원하는 것들을 들어준다면 학습효과를 통해 분노발작을 부리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거나 좀 더 늦게 잠자리에 들고 싶어서 분노발작을 부리는 경우, 그것을 들어주는 것보다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은 분노발작 대응은 어릴 때 효과적이며 이미 커버린 10대라면 대응과정에서 부상을 입을 위험이 커지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직은 J가 어려서 감당할 수 있지만 나중에도 그러면 정말 암담할 것 같다. 다행인 것은 어릴 때 몇십 분 단위였던 분노발작이 요즘에는 길어도 몇 분 짧으면 몇십 초에 진정된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동안 교육 및 치료의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때로는 자폐에 관한 넘치는 자료와 팁은 더 이상 내 아이의 경우에는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 자신도 덩달아 격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위키하우에 등장하는 의사소통하는 법 등은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의사소통은 꿈만 같던 이 시절의 J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때는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칠흑 같은 터널을 통과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1. http://www.wikihow.com/Reduce-Meltdowns-and-Tantrums-in-Autistic-Children

2. http://www.chicagoreader.com/chicago/stephon-watts-police-shooting-autism-death/Content?oid=2051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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