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 Lee Apr 03. 2016

어디쯤 왔을까?

여정의 경유지와 종착지는 계속 바뀐다

이제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그 답은 최초 목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아마 목적지에 도착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처음 J가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우리의 목표는 J가 말도 하고 앉아서 밥도 잘 먹고 분노발작도 좀 적게 부렸으면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그 목표에 도달했다. 무엇보다 J가 말하기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진전이다. 다만 앨러지 때문에 먹으면 안 되는 걸 달라고 조르면서 떼를 쓰는 정도가 문제라면 문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금방 다음 목표를 찾게 된다. 그래서 다음 목표로 삼은 것은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이었는데, 현재 캐나다 학교의 정규반에 잘 다니고 있다. 물론 J는 IEP라고 불리는 개인화된 교육 계획에 따라 학급의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교과과정을 따르지만 대부분은 전체 학급과 같은 수업을 받는다. 그리고 조금 힘든 일을 도와주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교실에 배치된 보조교사의 지원도 받고 있다.


한국에서 내가 어릴 때 다녔던 국민학교에는 특수반이라는 별도 학급이 있어서 장애아들을 따로 교육하고 관리했던 걸로 기억된다. 특수반 애들을 자주 볼 일은 없었지만 왠지 궁금함과 동시에 약간은 겁이 났던 게 생각난다. 그나마 그런 아이들도 중학교에 가면 다들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서 볼 수 없게 되었고 기억 속에서 장애아는 잊혀 갔다. 그리고 한국에서 장애아를 일상에서 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캐나다의 경우, 공립학교에는 별도의 특수반을 두지 않는다. 캐나다에서도 일종의 사립학교라고 볼 수 있는 캐톨릭 계열 학교는 특수반을 운영하는 것으로 안다. 특수반 운영에 따른 자원의 집중 다른 학생들이 받을 수 있는 방해 최소화 그리고 뭐 또 다른 장점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자폐증 진단의 주요 원인이 되는 사회성 결손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정상적으로 발달하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방식이 바람직한 것 같다.


물론, J가 가끔씩 떼를 써 수업 분위기를 흐리고 전교생이 강당에 모이는 어셈블리(한국으로 치면 전교조회?) 시간에 소란을 피우는 일도 있지만 담당하는 보조교사의 능숙한 지도로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고 진정되곤 한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초기에는 어찌나 크게 또 자주 울었던지 전교생이 J를 알 정도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단 한 건의 불평이나 다른 학부모의 민원을 받은 적은 없다. 학교 차원에서 차단했을까? 아니면, 유치원 때 사고를 친 것 때문에 학교 교직원들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외부에 J의 존재를 알리지 말라고 한 것일까?


앞서도 밝힌 적이 있지만 한국과 캐나다의 장애인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바로 밝힘과 숨김이다. 자폐증 장애아와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아도 불만스러워하지 않는다. 보다 자폐증에 대해 잘 알고자 하며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려 한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지만 자신들의 시선에서 자폐증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다. 캐나다에도 일명 '왕따'라고 부르는 불링(bullying)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J를 불링하는 애들은 아직까진 없다. 모두 잘 놀아주려고 하지만 J가 디스한달까? 시크한 놈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장기적인 목표는 J가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거나 아주 작은 정도의 도움을 받으며 홀로 서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목표를 목적지로 한다면, 아직 도착하지 못한 것이다. 인간의 수명이 한정되어 있고 다음 세대보다 오래 살 수는 없는 것이 순리인지라 평생 보살필 수는 없는 일이고 하나뿐인 형한테 일임하자니 그놈의 인생은 뭐가 되나 싶기도 하다. 레인맨의 영화에서 형의 존재를 모르고 혼자 살던 주인공을 보면 그 부모가 왜 시설에 수용하면서 동생한테는 얘기하지 않았는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실천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J한테도 바람직한 선택은 아닐 것 같다.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갖도록 해 주고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금까지 받았던 각종 지원과 혜택을 누리는 지위에서 도움을 주는 지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또 다음 목표는 최소한의 지원으로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정했다. Keep it up J!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