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응원가
43호는 그녀의 응원을 가슴에 새기듯 눈을 반짝이며 집중했다. 43호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렇게 끝나고 이승기가 “43호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세요”라고 말했다.
“저는 가수 김현성입니다.”
1997년 스무 살의 나이로 데뷔, 당대 아이돌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43호 가수 김현성 님. 그는 1집(타이틀곡 ‘소원’)의 대성공과 비교해서 2집, 3집의 부진으로 공백기를 가졌다. 소속사가 앨범을 내주지 않으면 활동이 어렵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등산으로 마음을 다잡기를 2년여. 드디어 4집 ‘Heaven’을 대히트시키며 화려하게 복귀했다.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음악 차트 1위를 거머쥐고, 전국을 돌며 매일 콘서트 하듯 공연했다고 한다. 컨디션이 계속 안 좋아졌을 때,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하는데 계속 무리했고.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낼 때 잠시 쉬어가야 하는데,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고 한다. 까닭이 어찌 됐든 ‘살인적인 스케줄로 목이 망가진 가수’, ‘모든 걸 가져다주고 목소리를 빼앗아 노래’라는 꼬리표를 달고 음악계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흘러 싱어게인2의 심사위원장 유희열의 질문 앞에 섰다. ‘(경연에서 1등 하는 것이 아니라) 비운의 가수, 실패한 가수라는 꼬리표를 떼고 싶어서 참여했다’며 담담하게 말하기까지 그의 굴곡진 삶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김현성 님은 경연이 끝나고 아래와 같이 인터뷰했다.
“20대 때 Heaven을 불렀던 나에게 얘기를 해줄 수 있다면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싱어게인은 새로운 도전을 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자리였어요. 나만의 노래를 찾아서 들려드릴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나의 울분과 회한이 김현성 님과 어찌 같겠냐마는, 노래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며 후련한 듯 말간 웃음 짓는 그를 보며, 나도 그렇게 빙긋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맘을 먹는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지병을 얻은 20대의 나에게 얘기를 해줄 수 있다면.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노력은 번번이 실패할 테지만, 책 한 권을 낸다는 건 아이를 하나 낳은 것과도 같다는 말이 있으니 ‘나의 형벌 극복기’를 쓰는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주고 싶다. 싱어게인2 무명가수전 43호 김현성 님의 Heaven 버전, 즉 나의 응원가를 들려주면서 말이다.
3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