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 가득 채워진 것에 대하여
토요일 오전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이런 질문들 아직도 있네’라는 생각과 함께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낡디 낡은 철학 질문이었다. 한때 철학에 심취했을 때 ‘얼마나 멋진 질문인가?’라는 생각에 나름 고민을 많이 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이런 질문과 생각할 시간에 얼른 집안일이나 하고 쉬자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나는 언제나 하던 청소를 시작했다. 아내는 진공청소기를 들고, 나는 물걸레를 같이 들었다. 아내가 먼지들을 빨아들이고 난 바닥 길을 따라서 나는 정성스레 물걸레로 닦아 나갔다. 청소 끝나고 모카포트로 만든 커피를 꺼내 마셨다. 오늘 날씨 맑음. 햇빛이 베란다를 통해서 나를 비추었다. 따뜻함에 기분 좋은 숨을 들여 마셨다. 숨에는 커피 향도 같이 섞여서 기분을 한층 더 좋게 해 주었다.
거실 모니터에 커피 마시고 세상 편한 자세로 누우려는 내 모습이 보였다.
청소하는 나, 커피 마시고 있는 나, 햇빛을 쬐고 있는 나.
나는 그렇게 일상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이 다시 생각났다. 청소하고, 커피도 마셔보고 햇빛도 쬐이니까 생각난 답변이다.
나의 삶은 일상들로 가득했다. 삶에는 소위 말하는 빅 이벤트들이 일어난다. 지금도 생각나게 하는 강력한 순간들이 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 인생 첫 직장에 양복 입고 출근했을 때, 결혼식, 승진했을 때 글쓰기로 처음 돈을 벌었을 때 지금도 떠올리면 저절로 흐뭇해지는 사건들이다.
하지만 사건들 사이에는 소소한 일상들로 가득 차 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동작대교와 한강을 바라보는 순간, 회사에서는 매일 커피 머신에서 커피를 뽑고 한잔하는 순간, 숨죽이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보고서를 써 내려가는 순간, 집에 와서 파스타 면을 삶는 순간들 이런 소소한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소소한 매일매일 생활 속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내 아래에서는 시간이 나를 다음 일상으로 옮겨주고 있었다. 그래 내가 놓여 있는 이곳은 바로 일상이다. 우리의 삶은 그저 일상이고, 시간이 그다음 일상으로 옮겨 주고 있었다.
일상은 나의 삶의 전부였다. 소소 함들이 모이고 모여서 나의 삶을 형성하고 있었다. 단지 이를 깨닫지 못하고 흘려보냈을 뿐이었다.
나는 일상으로부터 왔고, 다음 일상을 향해 간다.
내가 누구인지 헷갈리고 삶이 흔들린다면, 나에게 주어진 소소한 일상에 집중하면 어떨까? 우리가 문제 해결에 집중하느라 그냥 흘려보낸 나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상들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잘하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