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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Nov 11. 2020

장소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는가

101간의 여정 3주차

이직을 준비하던 차에 뻔하게 시간을 보내기 싫어 고민하다 결성하게 된 모임이 있다. 각각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10명의 사람들이 모여 매일매일 101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공유한다. 아마 혼자였으면 의지박약이 도져 실패할 것이 분명했다. 느슨한 룰을 정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모임장으로 절로 책임감이 들어 꼬박꼬박 답변을 쓰고 있다. 점점 질문들이 쉽게 답하기 어려운 것들로 가득차는 것 같지만. 이번 주에는 공동 매거진도 시작할 예정이다. 구성원들의 답변들이 어떤 글들로 탄생할지 기대된다. 


11. 매일 웃고 있는가


나는 무섭게 생겼다는 소리를 아주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랐다. 방금 거울을 보니 무표정도 퉁명스러워 보인다. 사납게 생긴 얼굴 덕에 쓸데없는 시비에 휘말린 적 없었으며,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면 상대방이 움찔하는 인상파. 그래서인지 더 잘 웃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나는 화를 내는 게 아닌데 그렇게 보일 때가 있으니 기왕이면 자주 웃자는 마인드로. 타고난 얼굴이 웃는 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레 웃음이 많아졌다. 


직장에서는 원치 않을 때도 웃어야 할 때가 꽤 많았고, 웃으며 말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도 있었다. 물론 그 웃음의 30% 정도만 진실이었을 것이다. 사회 초년생 때보다는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사회적인 웃음을 지으며 살고 있다. 나는 실용과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내가 정해놓은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거짓 웃음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면 아주 교묘한 30% 짜리 웃음을 지어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곱씹어보면 거짓 웃음보다는 순도 100%짜리 웃음의 비중이 더 크다. 사실 옆에 있는 사람이 좋으면 별 거 아닌 말이나 행동에도 잘 웃는 것 같다. 동생은 나의 1호 개그맨이고 엄마와의 티키타카를 할 때도 맨날 배꼽 빠지게 웃는다. 연애할 때도 그렇지 않은가. 노잼 개그를 해도 그 말에 정색하며 핀잔주다가도 웃어버리는. 티키타카가 되는 상대와만 연애했고 그들과의 연애는 대체로 웃음으로 가득했다. 더군다나 나는 웃음 허들이 굉장히 낮은 편이다. 주변에서 그런 개그에 웃어주면 안 된다는 핀잔도 종종 듣는다. 나 자신도 아재 개그를 던지는 것을 좋아한다. 


어찌 됐든 매일 웃고 지낸다. 하루도 웃지 않고 보냈던 날이 있었던가. 아주 슬픈 날에도 잠깐은 웃었던 것 같다. 삶은 1 아니면 0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날에도 위로의 말이나 과거의 행복했던 추억들로 피식하고 웃고 마는 것이 삶이다. 그리고 하루쯤은 웃지 않고 살아도 괜찮을 거 같기도 하고. 세상은 웃을 일보다 화나고 슬픈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나니까. 


어떤 시기마다 웃음을 환기시키는 순간들이 있다. 동생이 성대모사를 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던 때다. 아니면 엄마를 신나게 놀리던 때. 고양이와 신나게 달리기 할 때.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떠올릴 때. 사랑하는 사람의 등 위에 올라타 이곳저곳을 깨물며 괴롭힐 때. 친구들과 네거티브 이상형 월드컵을 하던 순간들. 5060의 말투로 대화를 나누며 낄낄거렸던 때. 언피씨한 상황이 많은 것 같아 조금 반성하게 된다. 사실 그렇게 언씨피한 것도 아니니까 지금처럼 마음껏 웃어도 될 거 같기는 하다. 


나는 30년을 매일을 웃고 살았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럴 것이다. 나는 타고나기로 시덥잖은 이야기를 내뱉고 거기서 웃음을 기필코 찾아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납게 생긴 실없는 사람이다. 경상도 말로 오줄없다는 말을 많이 듣고 산다. (주책없고 사리의 분별력이 없다"는 뜻으로 말할 때에 경상도에서 쓰는 말이다.) 꼭 누군가가 함께하지 않아도 나는 집에 혼자서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혼잣말을 하면서 어이없는 순간에 웃음을 터트린다. 나는 이미 매일 웃고 사는 사람이니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사실 어느 정도는 그렇게 살고 있다.) 방금도 친구와 채팅하다 웃기단 말을 들었으니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12.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건 무엇인가


심장 표면에는 관산동맥이라는 혈관이 있고 이 곳으로부터 혈액을 공급받는다. 심장이 뛰는 것은 심장 내에서 전해지는 전기신호에 의해서이다. 우심방 동방결절이라는 부분에는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 내는 세포들이 있다. 여기서 만들어낸 신호가 심장 내의 전기 신호를 전해 주는 조직을 타고 심장 근육에 전해지면 심장 근육이 수축하고 얼마 후에 다시 이완되어 피를 내보내게 된다. 


메디컬 드라마가 보고 싶어지는 지식인 답변이다. 여하튼 심장은 늘 뛰고 있다. 고양이와 달리기를 하거나 마스크를 쓴 채로 빠르게 걸으면 더 세차게 뛰고. 


관상동맥이 좁아지면 협심증, 막히면 심근경색이 온다고 한다. 관상동맥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을 찾아보자. 무기력, 지루함, 매일 반복되는 일상, 비효율성, 평범함. 그래서 나는 내 심장이 계속해서 뛸 수 있도록 새로운 것을 찾아나서는 편이다. 101 모임도 그러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을 좀 더 재밌게 해 보자는 취지였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 행위에서 즐거움과 에너지를 얻는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접할 때 그 어느 때보다 심장이 뛴다. 그 대상은 사람, 동물과 같은 생명체는 물론 운동 같은 행위까지 다양하다 전시회를 간다거나 새로운 책을 읽는 것도 요즘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무엇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한다면 심장 박동수는 배로 뛸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느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방도 좋아할 때, 함께 할 때도 가슴이 뛴다. 나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서로를 발견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 그리고 함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기적과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적을 행할 때 누구라도 가슴이 뛰지 않을까. 


반대로 불안감도 내 심장을 뛰게 만든다. 때론 그런 불안감이 살아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누군가 혹은 원하던 일, 물건을 기다리는 일 같은 것 말이다.  불안감을 동반한 어떤 것을 성취했을 때의 심장박동 수도 아마 평소보다는 배로 뛸 것이다.


심장이 뛰는 것은 심장 내에 전해지는 전기신호에 의한 것인데 우심방의 동방결절이라는 부분에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세포들이 있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부정맥이 발생한다. 맥박의 리듬이 빨라졌다가 늦어졌다가 하는 불규칙적인 상태라고 한다. 요즘의 나는 부정맥 상태인가보다. 어떤 날은 심장이 거세게 뛰다가도 어떤 날은 아주 느리게 피가 돌기 때문이다. 얼마간은 가슴이 뛰는 것을 잃고 살았다. 사실 지금도 잘은 모르겠다. 맹목적인 목표가 사라진 상태에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중이다. 대입이라던지 취업같은 단순하고 뚜렷한 목표 대신 정말로 가슴을 뛰게 하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나이가 먹어가며 현실이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녀서인 것 같다. 그럴수록 뭐라도 해야 심장은 계속해서 뛴다. 달리기를 하고, 억지로라도 책을 꺼내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고. 심장박동이 너울치지 않고 일자를 그리는 일을 막으려면 결국 펌프질을 해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오늘 나는 내 심장이 얼마나 뛰도록 살았는가. 


13. 장소와 사랑에 빠진 적 있는가


여행을 갔던 대부분의 장소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으로 당연히 대답은 ‘있다’이다. 물론 금사빠에다가 다른 장소로 금방 치환되긴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을 잘 알고 있는가'라는 답변에서 답했듯이 서울을 너무나 사랑한다. 한가한 한강. 국회란 곳도 한때는 사랑에 빠졌던 곳이다. 서강대교나 마포대교를 건너며 바라보는 국회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시는지. 그리고 돌연 사라진 나의 최애 카페 플리플리.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남자친구들을 데려간 연남동의 베무쵸. 서울은 일상을 함께하는 남편같은 곳이라면 떠나간 옛사랑을 떠올리는 곳은 외국에 존재한다. 구시가지의 모습이 잘 보존돼있고 골목골목에 구슬픈 파두가 흘러나오던 곳. 강과 야경이 아름답고 모든 음식이 맛있었던 포르투. 열대우림 속에서 수영하고 아침이면 요가 수업을 듣던 우붓. 그리고 홍콩. 


장국영과 장만옥, 양조위 처돌이인 나에게 홍콩은 그냥 아무데나 서있어도 영화가 되고 그림이 되는 곳이다. 2년 전 겨울 휴가를 3일밖에 쟁취하지 못해 먼 곳으로는 가지 못하고 가까운 홍콩으로 떠났다. 침사추이의 오래된 건물들과 축축함, 깜빡거리는 낡은 간판들, 그 사이에 울창한 빌딩 숲과 바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아무것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보이는 구시가지에 나는 반했다. 음식에 크게 감흥이 없는 나에게 먹는 것마다 감탄을 자아냈던 도시. 사람이 많은 것도, 중국 음식도 싫어하면서 그 모든 것이 있는 홍콩은 좋았다. 


홍콩에서 보냈던 매일 아침 바다를 보며 일어났고 향수병에 관한 노래를 틀어놓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얼죽아인 주제에 따뜻한 커피를 내려서 소파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때로는 그 아침의 기억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컨테이너를 실은 배들이 바다를 떠나는 것을 바라보고, 고층 빌딩에서 일하고 있을 사람들을 상상했던 순간들 말이다. 그 아침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자신이 있다.


후미진 골목 어딘가에 있던 운남쌀국수 집은 매일 저녁 호텔로 돌아가기 전 들르는 곳이었다. 저녁을 먹었어도 꼭 한 그릇씩 사이좋게 해치웠다. 한국에도 운남면 가게가 더러 생겼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코로롱이 얼른 끝나 매일 출석도장을 찍던 국수집에서 다시 먹기 위해서. 화려한 모습보다 낡은 곳곳이 더 기억에 남는 곳이 홍콩이다. 이방인이라 낭만적으로 보였던 도시. 어딘가에 장국영이 맘보 춤을 추고 있을 것 같은 페인트가 다 벗겨진 건물들. 수명이 다해 감도가 낮아진 조명 아래 먹는 밀크티와 토스트. 빨간 택시들. 무지개색의 아파트와 농구장이 있던 옥상. 비가 오지 않아도 어디든 축축한 홍콩과 사랑에 빠졌다. 유명한 명소를 방문하는 게 아니라 도시 그 자체를 하염없이 떠돌았던 곳.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있던 시간들이 그립다. 그 당시 듣던 노래들을 들으면 나는 다시금 그때로 돌아간다. 코로나가 끝나면 좋아하는. 다시 잠깐이라도 홍콩에 가야겠다. 익청빌딩에 있던 세탁소와 청킹맨션 안의 환전소, 미도 카페 근처의 작은 공원, 농구공도 챙겨가서 이번엔 옥상 농구장에서 신나게 뛰어봐야지. 그리고 지겹도록 걸었던 침사추이와 다시 사랑에 빠져야지. 


14. 행복한 사람들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


행복의 기준이 제각각 다른데 그들의 공통점을 찾으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변에서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고 사는 사람들을 둘러보자. 우선 다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때문에 늘 괴로웠는데, 지금도 그 괴리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기도 하고. 행복한 사람들은 그 괴리를 지혜롭게 좁혀나간다. 때로는 자신의 이상을 조율하면서, 현실을 발전시켜나가면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을 찾는 것도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지금을 직시하고 방법을 찾아 행동한다.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상황이 나쁘더라도 거기에 잠식되지 않는 듯하다. 


이어서, 행복한 사람들은 행동하는 사람인 것 같다. 원하는게 있으면 실행에 옮기는 에너제틱한 사람들.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걸음을 떼는 사람들. 그 한걸음을 떼는 것이 어렵지만, 그 걸음 뒤에 어떠한 결과가 있을지 모른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될거야, 라는 우려들은 잠시 뒤로 하고 머릿속의 무언가를 형상화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온다. 물론 그 일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사실 답변을 쓰면서도 잘은 모르겠다. 이 질문을 계기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봐야겠다. 어떨 때 행복한지, 당신의 행복을 유지시키는 것들은 무엇인지.


15. 꿈에 그리던 것을 가졌는가


아직은 아니다. 언젠가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만이 있을 뿐. 어떠한 시기마다 꿈에 그리던 것들은 변형된다. 꿈에 그리던 것을 가졌던 적은 있다. 그걸 가지고 나니 다른 것들을 꿈꾸게 되었다. 물론 궁극적인 것은 현재진형행이다. 평생 갖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뭐든지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갈망했다. 때로는 그 갈망이 나를 갉아먹기도 하면서 말이다. 돌아보니 내가 꿈에 그리던 것은 그려왔던 것과 딱맞는 그림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형태를 바꿔가며 내 곁으로 왔다. 그래서 이제는 두렵지 않다. V를 그려왔지만 U나 Y의 형태로 꿈을 덧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가 그리는 것은 대부분 뚜렷한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추상적인 목표들이 인생이란 흰 캔버스 안에서 선을 그리고 색을 흩뿌리며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그 선과 색들이 어떠한 형태로 완성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다. 미완의 작품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그려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이미 꿈에 그리던 것을 가지기 위해 달리는 길에서 네비게이션이 제시하는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들을 찾아냈다. 그만큼 내 캔버스의 선과 색들도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형태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 꿈에서 더 멀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시금 목적지로 향하는 길을 찾아낼 것이다. 


나는 ‘화양연화'라는 말을 좋아한다. 아직 가장 아름다운 때는 오지 않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간다. 오늘 자체가 아름답지 않아서는 아니다. 오늘을 살면서도 내일이 기대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내일 송강호(우리집 고양이)에 대한 글을 쓸 생각에 신이 나는 것처럼. 어쨌든 내 인생에 단 한 번의 화양연화가 있다면 아직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원하던 것을 성취하지 못했다. 다만 언젠가 그 꿈을 완전하게 그려낸 후, 혹은 그러지 못하더라도 나는 새로운 화양연화를 찾아 떠날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때가 100세 인생에 한 번뿐인 것은 조금 억울하지 않은가. 이참에 매년 화양연화를 기록해봐야겠다. 덧붙여 꿈에 그리던 것을 가지지 못하면 어떠한가. 어떨 때는 꿈을 이룬 것보다 꿈을 그리는 순간들이 더 벅찰 때가 있다. 내게 인생이란 그런 희망과 기대를 자양분 삼아 나아가는 것이다. 1번 꿈을 가지지 못했다면 나는 2번 꿈, 3번 꿈을 꾸며 살 테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꿈에 그리던 것을 가지게 되겠지. 설사 그렇지 못한다고 해도 절망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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