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경보 사이렌을 피해 욕실에 웅크려서 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르는 당신에게는 불현듯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를 것이다. 어쩔 수 없으니 대피하기는 했지만 과연 이 아파트는 공습에서 얼마나 안전할까? 그러고 보니 발코니 쪽에 대피공간이나 사다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리로 숨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이비 같은 글에 속아서 이대로 빛도 들어오지 않는 욕실에서 최후를 맞이하는 건 아닐까?
우선 당신의 등 뒤를 지키고 있는 철근 콘크리트 벽이 어느 정도로 단단한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철근 콘크리트 벽은 말 그대로 철근과 콘크리트가 일체화된 구조물이다. 철근은 잡아당기는 힘인 인장력에 강하고 콘크리트는 누르는 힘인 압축력에 강하다. 아파트에서 주로 쓰였던 철근의 항복인장강도는 약 300 Mpa, 콘크리트의 압축강도는 25 Mpa이다. 1 Mpa는 제곱미터당 1000N의 힘을 견딜 수 있다는 뜻이다. 대략 1,000kg의 물체를 초속 1m, 즉 시속 3.6km로 가속할 수 있는 힘이다. 대략 1 Ton의 물체가 시속 1,000km로 부딪히면 벽 속의 철근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은 보통 철근이 파괴되기 전에 변형이 일어나서 시각적으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갑자기 뚝 부러지는 취성파괴가 아닌 순차적으로 연성파괴가 일어나도록 설계되므로 아파트 벽은 그보다 낮은 강도에서 부러질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될 것을 알고 쓴 문단이니 앞의 두 문단은 무시해도 좋다. 요약해 보면, 짐을 가득 실은 5톤 트럭이 시속 100km로 들이받아도 당신의 아파트 벽은 금이 갈지언정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장사정 포 정도의 포탄은 콘크리트 코어 벽체를 절대로 부술 수 없다. 보통 600kg 정도 나가는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이 당신의 집을 음속으로 직격 한다면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그 중거리 미사일들은 민가나 공격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요약하면, 당신의 아파트는 생각보다 공습에서 안전하다.
그렇다면 만약, 핵공격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지만 어느 정도 희망이 있다. 단, 폭심지 주변은 어떠한 희망도 없으므로 예외로 두자. 그 외의 폭풍, 열, 초기 방사선을 피할 수 있다면 생존 가능성은 있다. 국민재난 안전포털은 핵 및 방사능 관련 대피공간의 재질로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핵공격의 폭심지로부터 당신이 있는 방향으로 일직선을 그어 당신이 엄폐한 콘크리트 벽의 두께가 30cm가 넘는다면 생존의 가능성은 있다. 앞서 말한 파이프 샤프트 너머 방향에서 핵공격이 있었다면 당신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크다. 외벽 및 구조 벽의 두께는 대부분 20cm가 넘으며, 파이프샤프트는 튜브 구조이므로 둘 이상의 벽두께가 겹쳐져 30cm를 넘어설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 아파트에 숨은 당신은 공습에서 생각보다 제법 안전하다. 당신이 엉뚱한 곳으로 대피하지만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