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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고있는땅콩 Jan 31. 2021

따땃한 글이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한 시절 제 마음에 자리를 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글이 따땃했으면 좋겠다고. 제가 끄적인 이야기들을 곧잘 읽어주던 사람이었는데 함께 두 번째 봄을 맞이할 때쯤이었을까요, 그 말을 '날日'을 잡고 하더군요. 저는 글쟁이도 아닌데 말이죠.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만나 생각지도 못한 말을 그토록 그윽하게 전하니, 목 뒤에 얼음을 들이댄 것처럼 온몸이 저릿했습니다. 애정의 마음에서 꺼낸 이야기로부터 이별을 예감하는 건 다만 오해였을까요. 자꾸만 자책이 들어, 고맙다는 문장을 미안하다는 말로 발음해버렸습니다. 차마 시선을 올리지 못하고 잘 들리지도 않을 법한 왜소한 목소리로, 노력해보겠다고 답했더랬죠. 자신이 없었습니다. 의도하는 바도 아닌데 쓰는 것들마다 왜 그런 냄새가 묻어나는지 저도 제 속살들을 판독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보이지 않는 당신의 음지가 바라보는 양지보다 더 클까 봐 걱정이 된다'는 말에 코 끝이 시큰해져 시야가 일렁이는 걸 간신히 참았던 날이었습니다.

 살아온 날들에 사정이 많았던 것이, 그런 자취들을 단속하지 못하고 당신 앞에 흘려 보였다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함께 있는 사람의 글에서 쓸쓸한 냄새를 맡는 일은 얼마나 서늘하고 외로운 일이었을까요.


감기라도 걸려 열이 오르길 바랐던 날이었습니다. 아무튼 열을 낼 수 있다면요.



 당신은 겨울을 싫어하던 사람이었지요. 혹한이 닥친 날엔 추위 때문에 울음까지 터뜨릴만큼 추운 것을 싫어하던 사람. 추워서 울어버릴 정도라니요. 그날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이 사람은 눈雪을 제외하면 겨울에 전혀 미련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죠. 반면에 저는 겨울의 한기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지요. 내복은 고사하고 혹한에도 남들보단 한 겹씩 덜 입고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으니까요. 우리는 그처럼 태생도 체온도 다른 종種이었나 봐요. 5월 봄에 태어난 저는 겨울로 돌아가고 3월 봄에 태어난 당신은 여름으로 걸어가다, 4월쯤에서 잠시 스친 것이었을까요. 그래서 인연이 그토록 환한 봄 같고, 당신은 늘 분홍빛으로 기억되는 것일까요. 짧은 시절이라도 좋으니, 3월에서 온 당신에게 5월의 온기를 더해주고 싶었습니다. 차라리 읽고 쓰는 일 따위 옛날 일로 두고 싶었습니다. 저는 글쟁이도 아니니까요.

 함께 여행을 갔던 기억. 우리가 사는 곳엔 아직 겨울 얼룩이 남아 있어 조금 더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났더랬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조금씩 땀이 맺히는 것이 우리 마음의 온도도 조금쯤 올라갔던 것 같습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맥주 한 병씩을 손에 들고 테라스로 나가 전경을 바라보다 당신이 말했습니다. "따땃하니까 참 좋다". 그렇게 저는 방향을 틀어 다시 5월이나 여름으로 향했어야 했을 텐데요. 그랬더라면 지금쯤 당신과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걸으며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겠지요?


 저는 결국 계속 글을 쓰지만 여전히 서툴고 따땃하지도 못한 사람 같습니다. 여전히 겨울의 한기를 찾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런 글들을 모아 모아 한 뭉터기로 엮는다면 조금의 체온이나마 담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오늘도 끄적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 글이 따땃해지는 날엔 우리 한 번쯤 다시 마주쳐도 괜찮겠지요. 역逆으로 걸어간 방향 따라 겨울을 지나 가을이나 여름쯤에 말이에요.


곧 봄이 오니, 내게도 따땃한 글이 피어나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조금 더 솔직해져 보겠습니다. 그때는 더 이상 스스로를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 사람으로 마주하겠습니다. 미안하거나 쓸쓸한 마음 따위가 끼어들 수 없도록 말이에요.





[사진 : 시애틀, 미국 / 샌프란시스코, 미국 / 전주, 대한민국 / 체스키 크롬로프, 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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