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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고있는땅콩 Apr 06. 2021

목이 마른 사이로 남기를

 지구가 울퉁불퉁하게 느껴질 때면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이라면 이 길을 어떻게 걸었을지 사정을 쏟고 의견을 묻고 싶은 사람. 부득이 장마에만 찾게 되는 사람. 그래도 늘 환하게 잘 지냈냐고 물어오는 사람. 딱히 대단한 처방을 내려주는 것도 아닌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쩐지 마음을 그윽하게 녹여주는 사람. 남들보다 공감 능력이 두 배쯤 뛰어나서 그네들의 슬픔까지도 끌어안고 두 배쯤 아픈 하루를 떠안고 사는 사람. 그래서 밥을 혼자 먹는 사람. 술에 많이 취하려고 하는 사람.


 그리운 사람이 생기면, 찾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기억력이 남들보다 두 배쯤 뛰어나서 삶의 편린들을 두 배쯤 더 가지고 있는 사람. 그래서 지나간 것들을 품고, 그리움을 물처럼 마시고 사는 사람. 그이 가슴께라면 나의 그리움과 비슷한 이야기 한 권쯤 꽂혀 있을 거라 무례하게라도 이야기를 청해 듣고 싶은 사람. 잊히지만 잊지는 않는 것이 보통인 사람. 웃을 때마다 흉 질 자리를 미리 긁어두는 사람. 그래도 늘 사람들 틈바구니로 들어오는 사람. 기억의 용량만큼 습한 사람. 보고 싶다는 말은 애써 잊은 사람.


 두 사람은 마주쳐도 이상하지 않을 지척에 산다고 했다. 그래서 간절히 바랐다. 그 둘이 인연으로 엉키는 일이 없기를, 누구도 그들을 서로에게 소개하지 않기를. 상대의 이별까지 담아가는 사람과 상대의 기억까지 챙겨두는 사람 사이의 일이라면, 처음 눈 맞춤을 삼키는 일보다 마지막 등짝을 소화시키는 일의 부피가 버젓이 클 테니까. 그런 사람들은


부디 목이 마른 사이로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리 거대한 희곡은 시작되지 않았으면 했다.





[사진 : 옥스포드, 잉글랜드 / 베를린,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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