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마라케시와 에사우이라
1년 반 만에 마라케시에 다시 왔다. 매캐한 공기 때문에 기침이 나왔다. 안 그래도 오기 전 감기 때문에 몸살을 앓고 아직 목이 걸걸했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제작년 마라케시를 찾았을 때는 일정이 빠듯해 밤에 잠깐 야시장을 둘러본 게 다였다. 그런데 올해는 이곳 저곳 이동하면서 마라케시를 여러 차례 들러야했고, 오로지 마라케시만 보기 위해 마련한 시간들도 있었다. 즉, 도시를 볼 시간이 충분했다.
마라케시를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난 지금 마라케시를 떠올리고, 이 도시를 표현할 만한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는다면 그건 '카오스'. 페즈와 함께 모로코 관광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우는 만큼 관광객도 많지만, 일단 큰 도시라 그냥 현지인도 넘쳐난다. 그런데 이 젬마 엘프나 광장을 필두로 한 주요 관광지에서는 이 현지인들이 관광업에 종사하다보니, 이들이 호객하는 행위가 장관이다. 지나가는데 옷이나 외모 칭찬을 해서 주의를 끌려는 건 애교고, 우리 무리가 가는 길을 떡 하니 가로막고 힘으로 제지하며 자기 가게로 끌어들이려는 호객꾼도 있었다. 호객꾼만이 아니다. 유치원에 다닐 법한 아이들이 구걸을 하거나 휴지, 담배 등을 팔려고 우리를 졸졸 쫓아오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길을 헤맨다 싶으면 가이드를 자청한 현지인이 다가와 길을 알려주는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 작년에는 이 가이드라는 인간이 내 숙소까지 졸졸 쫓아와서 길을 알려줬다며 돈을 요구하기에 "넌 아무 것도 한 게 없다"며 거절했더니, 숙소 주인을 때렸던 일도 있었다. 이번에는 여럿이서 함께라 그런가 단호하게 따라오지 말라고 하면 금방 돌아가긴 하더라만. 사람 뿐일까. 마라케시 하면 정신없던 도로가 사실 제일 먼저 생각난다. 사람만큼 많은 차와 오토바이들은 사람이 길을 건너든 말든 그냥 도로를 지나다닌다. 신호도 없는 도로들이 많아 길을 건널 때 마다 이런 타지에서 혹시나 생을 마감하는 건 아닐까 현실 공포에 사로 잡혔다. 런던에서 길을 건너려고 하면 천천히 멈춰주던 차들과는 정 반대. 보행자도, 사람도 자기가 우선이었고, 그래서 내 코 앞까지 차가 머리를 들이민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라케시에서 나는 친절한 사람들에게도 경계 태새를 갖추게 됐다. 정말 순수하게 친절을 베푸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호의 뒤에는 당연한 듯 팁이 요구된다. 친절을 가장해 이들이 요구하는 돈은 대개 10디르함, 약 1천원 남짓한 돈. 그냥 줘버릴 수도 있겠지만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감정 소모와 정신적 피로도가 너무나 컸다. 나름대로 이들이 돈을 벌고 살아가는 과정이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속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고, 그런 생각이 들면 배신감이 물 밀듯 밀려왔다. 인간 대 인간으로써 기대하던 신뢰, 인간적인 면이 무너지면서 드는 실망감. 그래서 누가 말을 걸 때마다 나는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라케시 야시장에서 제대로 당했다. 샐러드를 포함해 인당 하나씩 시킨 메인이 인당 4개씩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인당이 아니라 총 하나 씩 시킨 거라고 강조를 했음에도. 생전 처음 먹어보는 낯선 음식이니 뭐가 뭔지 구분이 될 리도 없다. 중간에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우리는 하나 씩만 주문했다며 다른 메뉴들을 도로 돌려주었지만, 앞서 우리가 모르고 손댔던 것들은 그대로 계산서에 청구되어 나왔다. 결과적으로 모로코 물가를 감안했을 때 턱없이 높은 가격으로 식사를 마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길을 걷는 나에게 헤나를 하라며 강제로 내 손을 잡고 다짜고짜 헤나 약을 짜려던 아주머니 때문에 기분이 더 상했다. 원래 이런 막무가내가 많은 건 알았지만 제작년 혼자 모로코를 왔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여럿이라 조금 덜 할 거라고 기대했던 탓에 더 신경질이 났다. 시장에 들어가 물건들을 구경하기 시작하자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상인들간의 불꽃 튀기는 가격 경쟁. 어느 한 곳의 물건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옆 가게에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가게 주인이 부른 값보다 더 싼 값으로 똑같은 물건을 팔겠노라고 우리를 잡아 끌고는 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 두 가게 주인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가격 경쟁이라고는 해도 상인들이 부르는 가격이 터무니 없기는 매한가지. 에사우이라나 쉐프샤우엔처럼 시골 마을에서 똑같이 살 수 있는 물건을 여기서는 5배나 되는 가격으로 먼저 부른다. 그 가격에서 반을 깎고, 또 반을 넘게 깎고, 또 가격이 마음에 안 든다며 가게를 나서는 시늉을 하면 신기하게도 대부분 내가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었다. 나중 되어서는 이런 흥정에 넌더리가 나서 나는 그냥 흥정을, 물건 사는 것 자체를 포기해버렸다.
그래서 에사우이라를 갔을 때 그 평화로움에 놀랐다. 우리가 길을 건널 때 우리를 보고 웃으며 멈춰주는 차들도 있었고, 메디나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마라케시처럼 처음부터 어처구니 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지도 않았다. 길에서 우리에게 니하오나 곤니찌와를 던지는 사람들의 수도 확연히 줄었다. 무엇보다도 도시 자체에서 풍겨오는 분위기가 좋았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색과 어울리는 하얗고 파란 건물들. 에사우이라를 조금 거닐고 우리는 카사블랑카 가는 걸 포기하고 여기서 하루 더 묵기로 결정했다.
이런 작은 도시를 여행하면 좋은 게, 꼭 봐야할 것 같은 대표적인 장소들이 없다. 우리는 그래서 삼일 동안 발길이 따르는 대로 메디나를 거닐고, 끝이 나오지 않는 해변을 따라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피곤하면 카페에 들어가 쉬기도 하고, 점심을 먹기도 하고. 그렇게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삼일을 보냈다.
에사우이라가 기억에 남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난 여기서 지갑을 잃어버렸다.
가방 안에 카메라와 함께 넣어놨었는데,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꺼내다가 지갑을 흘린 것이다. 지갑이 없어진 걸 너무 뒤늦게 알아채서 혼이 나갈 것 같았다. 같이 있는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변을 쭉 따라 다시 걸어 왔는데, 지갑이 없어진 건 우리 숙소 근처에서 알아챈터라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하지만 점점 밤이 오고 있었고, 거리는 캄캄해져갔다. 해변에 다다르자 뭐가 보이기는 커녕, 파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지갑을 찾을 확률은 사실상 제로. 설령 내가 정말 길에 지갑을 떨어뜨렸다 해도, 누군가가 주워서 가져갔으면 가져 갔지 그냥 뒀을리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왔던 길을 되짚어 가보자는 친구들의 설득에 휴대폰 플래시를 켜서 다 같이 해변, 해변 근처 인도를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갔던 곳 전부를 뒤졌는데 지갑은 나오지 않은 거다. 그래서 난 카드 분실신고를 했고, 마지막으로 누가 지갑에서 현금만 가져가고 쓰레기통에 버리지는 않았나 싶어 근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떤 모로칸 두 명이 말을 걸어왔다. "혹시 비자..?"하며. 처음에는 무슨 말이지 싶다가, 내 지갑 안에 들어 있던 비자 카드가 떠올랐고 그제서야 아! 싶었다. 이들한테 그렇다고, 지갑이랑 카드를 같이 잃어버렸다고 주절주절 설명하자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내 지갑이었다. 이들은 해변에서 말을 타고 다니며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말을 태워주는 일을 하는데, 이 날도 평소처럼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해변에 지갑이 하나 덩그러니 떨어져있는 걸 보고 주워서 맡아놨다고 했다. 안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걸까도 고민했지만 국제 전화라 너무 비싸서 조금 고민하다 경찰서에 맡기려던 차에 우리를 발견한 거라며. 저 멀리 우리와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여러개의 플래시가 왔다갔다 하며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아 보여서 혹시나 싶어서 이리로 황급히 온거라고 했다. 지갑에 내용물은 그대로였다. 물론 현금까지 다 있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약 20유로, 2만 5천원 가량의 현금은 사라져 있었고, 이들이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너무 고마워서 사례금으로 10유로를 더 주었다. 그 덕에 내가 잃은 건 30유로 가량. 하지만 전혀 아깝지 않은 30유로였다. 지갑에 있는 현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지갑은 내 품에 돌아왔고, 이들이 현금을 가져갔다 치더라도 지갑을 버리지 않고 간직해주고 저 멀리서 돌려주려고 왔다는 게 중요했다. 영국 카드는 지갑을 되찾기 5분 전에 정지해버렸지만, 그래도 지갑 안에 있던 내 교통카드와 한국 카드가 무사했다.
나는 내가 덜렁댄다는 걸 안다. 그래서 사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돈이 들어있는 카드를 하나 더 가져왔고, 그래서 지갑이 완전히 없어졌어도 여행에 표면적으로는 큰 지장은 없었을거다. 그래도 중요한 건 지갑을 찾음으로써 좀 전까지만 해도 바닥을 치던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는 것. 아니 심지어는 지갑을 찾아 준 모로칸들 덕분에 오히려 마음이 따뜻해지기까지 했다는 것. 그 덕분에 이 날 하루를 다른 날들과 다름 없이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여행 후에 여행지는 어떠한 이미지로써 기억되기 마련이다. 흐릿한 잔상으로 남을 수도, 진한 향으로 기억될 수도, 막연하게 좋고 나쁜 기억의 단편으로만 남을 수도 있다. 나에게 마라케시는 흙빛의 도시. 갈색 빛 도시에, 그 색과 함께 진동하는 매캐한 흙 냄새가 나는 도시였다. 반면 에사우이라는 하얗고, 파란, 청명했던 도시다. 분명 마라케시에 있을 때도 구름 한 점 없는 좋은 날씨였는데도, 마라케시를 떠올릴 때는 생각나지 않던 파란 하늘이 에사우이라에서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자연스레 따라온다. 내가 에사우이라에게 갖게 된 이미지가 바로 이런 하늘일 거다. 따뜻하게 내리쬐던 햇살, 그 햇살만큼 따뜻했던 사람들.
여행지의 이미지 형성은 단순히 도시의 풍경만이 기여하는 게 아니다. 도시 자체, 그 도시를 이루는 사람들, 거기서 벌어진 일 모두가 결정하는 일이다. 나는 에사우이라에서 지갑을 잃어버렸지만 그걸 찾게 도와준 좋은 사람들 덕분에 이 도시를 좋은 기억으로만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지갑을 잃어버렸던 도시'가 아니라, '잃어버린 지갑도 돌아오는 순수하고 따뜻한 도시'로 기억될 에사우이라다. 마라케시가 싫었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갈색의 도시는 어지럽지만 그 나름대로 신선한 매력이 있다. 같은 나라지만 너무나도 다른 이 두 개의 도시는 나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억 될 뿐이다. 진한 매연 냄새를 풍기며 코를 자극해오는 마라케시와, 온 몸으로 따뜻함이 전해져오는 에사우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