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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라작가 Jul 05. 2024

양육, 정서적 건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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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사람은 우리 아빠였다.

아빠는 밖에서는 상남자지만, 집안에서 여자들에게는 

로맨티스트였고 다정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여장부인 척 해도, 천상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우리 엄마,

그리고 내가 있어야 살 수 있는 우리 아이였다. 


누군가의 목숨,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건,

막중한 책임감이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야,

진짜 인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내가 제일 많이 사랑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때로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하는 얘기들을 들으면

그저 웃는다. 


우리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아이가 1순위가 되고,

다른 순위는 다 물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부터

나는 아이양육에 더 신경을 썼고,

나의 상처를 대물림해주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가족들의 도움이나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그때, 안 좋은 영향을 주거나

언행이 좋지 않다면

몇 차례 경고를 주고,

그래도 아이 양육에 정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거나, 

나쁜 언행이 바뀌지 않을 경우,

나에게서 아웃되기 시작하기도 했다. 

아이양육이 내 삶의 기준이 되기 시작했다. 


아이양육을 하면서 나의 잘못된 거나 부족한 것들도

하나 하나 고쳐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몰랐던 것들도 공부하면서 

양육과 심리의 달인이 되기 시작했고, 

전에는 작가라서 다 품어주고 받아주고 용서해주며

성인성녀 소리를 들었지만, 

이제는 성녀가 되려 하지 않는다. 

좋지 않은 것은 끊어내는 법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마 아빠의 도움 외에 아이양육을 홀로 하며,

외로웠고, 눈물 흘려야 했던 날도 길고 많았다. 

일도 빡센데, 양육은 더 빡셌다. 

그러나, 점점 일은 쉬워졌고, 양육은 더 빡셌지만

중심을 양육에 두고 열심히 정서케어를 하다 보니,

점점 양육이 쉬워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잃어야하거나 놓아야 하는 것,

비워야하는 것도 많았다. 

그래서 속상할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일욕심이 엄청 많았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욕심이 많았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이 아프고, 몸이 아프니까

조금씩 비워지기 시작했다. 

또한 내 도움, 내 손이 필요한 아이가 정말 중요했다.


나는 정말, 원치 않는 일을 겪으며, 알면서도 당하는 

정신 없는 일들을

나만 잘하면 될 거란 생각으로 엄청 노력했으나,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그러다, 조금씩 나는 도움 요청하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고,

아이양육은 나 혼자서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란 것도 알게 됐다. 


나 혼자 하는 일은 잘해낼 수 있었지만,

아이 양육은 온 가족, 온 마을이 키워야한다 했다. 


나는 아이양육을 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 받았다. 

눈물 겹게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아이양육에 도움주는 사람이 내가 제일 고맙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렵게 배운 지식, 정서적 사랑을

다른 엄마들, 아이들과 많이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는 이제 많이 자랐다. 


나는 아이 앞날 미래를 위해,

내 꿈을 더 키워나가야 하는 때가 되었다. 


내가 꿈을 잘 키워나가야

우리 아이가 함께 따라올 수가 있으니까


내가 간절히 바라는 건,

내가 뼈빠지게 희생, 헌신하며 

도움 준 사람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살았으면,

그리고 원하는 꿈을 이루고 살았으면

그것 뿐이다.


그리하여, 언젠가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걷기도 하고,

쉴 때는 그 쉼의 여유, 평안을 함께 누리기도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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