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5.
일찍 출근한 날엔 아침에 턱걸이를 한다. 평소보다 부족한 수면 시간, 밤새 고여있던 공기로 가득한 텅 빈 사무실에서의 한 시간 남짓한 분주함. 벌써부터 하루를 다 소진한 듯한 몽롱함이 찾아올 때 엉덩이를 뗀다. 옷깃을 여미고 하나 둘 출근하는 동료들을 거스르며 정원으로 발을 내딛는다.
차가운 겨울 공기는 유난히 상쾌하다. 함박눈이 내리고 난 다음 날의 맑은 공기와 햇살이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마스크를 뚫고 나오는 입김마저 눈의 결정으로 반짝일 듯한 착각에 빠지며 숲길로 들어서면, 밤의 흔적들이 고스란하다. 세상의 틈새 곳곳을 수놓은 하양들을 감상하노라면, 이곳은 온전히 홀로 누리는 설국이구나, 괜히 심사를 과장하게 된다.
철봉 위에도 눈이 쌓였다. 철봉을 둘러싼 설원에 최초의 발자국을 남기며 다가가 살얼음들을 살살 털어 내고 웃차, 점프를 해본다. 나의 무게를 몇 차례 감당해본 뒤 착지한다. 손을 엄습하는 한기를 막아주는 건 민트색 로고가 새겨진 나이키 장갑. 턱걸이를 시작했을 때 굳은살 생기지 말라고 제임스가 선물해 주었다.
바짝 힘을 쓴 후 숨을 고르면서 음악을 듣는 일도 커다란 즐거움이다. 그럴 땐 부러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곤 하는데, 이번엔 quinn_(쿠인)이라는 뮤지션의 ‘난 빤쓰만 입고도 멋진 생각을 해’를 반복해서 들었다. 몸도 들썩이고 멜로디와 가사를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난 빤쓰만 입고도 멋진 생각을 해, 난 빤쓰를 안 입고도 멋진 생각을 해.
고개를 돌리면 낡고 낮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쪽방촌이다. 몇 해 전 쪽방촌에 관한 르포 시리즈를 읽으며 참혹한 실상에 깜짝 놀랐었는데, 내가 늘 보았던 저곳이 쪽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저곳은 왜 맨날 소란스러울까, 맘속으로 힐난을 했을 뿐.
쪽방임을 알고부터는 이따금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한다. 대한민국의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상징했던 구 대우빌딩이자 지금도 엄청난 자본을 굴리는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는 현 서울스퀘어의 그늘에 가린 누군가의 집. 잠시 들러 유유자적 망중한을 누리는 나와 좁디좁은 그곳에서 생을 이어가는 누군가.
가끔은 창문 너머로 그들과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황급히 시선을 거두지만 대단한 실례를 한 것만 같은 배덕감이 밀려올 때도, 뜻 모를 공포에 흠칫할 때도 있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옳은 일인지,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있는지, 아직 많은 것들이 의문이다.
쪽방 거주민의 신발을 신어볼 수 있다면 달라질까? 쪽방 거주민의 빤쓰를 입어본다면 변화가 있을까? 모르겠다. 남의 빤쓰를 입어보지 않아도 조금쯤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 테지.
설국을 만끽한 바로 그날, 동료들에게 화를 냈다. 함께 일하는 후배들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했다. 욱함이 올라올 때 잠시 호흡을 고르고 후배들이 최근에 얼마나 바쁘고 지쳤을지를 떠올렸다면, 더 선배답게 어른스럽게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난 빤쓰만 입고도 멋진 생각을 해’를 quinn_(쿠인)은 이렇게 소개한다. “어쩌면 인간 몸의 가장 밑바닥이라 할 수 있는 '빤쓰'를 보이고도 남의 눈치 보지 않는 삶을 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그야말로 힙하고 닮고 싶은, 멋진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쩐지, 자꾸만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끈질긴 관찰과 고민 끝에 그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선물하는 이의 마음 씀과 같이, 나도 더 성숙할 수 있었는데. 남의 빤쓰를 입어보지 않아도 그들을 헤아릴 수 있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