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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 Apr 27. 2020

나에게로의 초대

두근두근 첫 카우치 서핑

집, 가장 사적인 공간.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은 나에게 드문 일이다. 친한 친구라도 집에 오라는 말은 쉽게 하지 못하겠다.


아주 가끔 친구를 초대하더라도 그 전날 청소는 필수 코스다. 겉보기엔 널브러져 보이지만 나만의 규칙으로 놓아둔 잡동사니들을 구석구석 숨겨 놓는다. 그러다 보면 가장 편한 공간이던 집이 어느새 그렇지 않은 공간이 되어버린다.


이런 나에게 카우치서핑의 존재는 뿅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을 주었다.

'친구도 안 데려오는 집에 처음 만난 여행자를 공짜로 재워준다고? 말도 안 돼.'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기도 전에 카우치서핑은 이미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말이 되는 플랫폼이었다.


새로운 세계가 가져다준 충격은 위시리스트가 몇 가지 없던 여행 초짜에게 '카우치 서핑해보기'라는 목록을 만들게 했다. 그렇게 나의 첫 카우치서핑은 시작되었다.  


 

예카테린부르크 도심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아파트 단지, 한적한 놀이터 의자에 앉아 첫 카우치호스트 올가를 기다렸다. 한껏 두근대는 마음만큼 올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일을 마치고 집 앞에 온 올가는 나를 발견하고선 손을 내밀었다.


"안녕, 네가 오늘 온 게스트 맞지?"

큰 키에 굽 높은 하이힐을 신은 올가는 진한 자주색 티셔츠에 노란색 스키니진이 잘 어울리는 친구였다. 환하게 웃고 있는 올가의 손을 잡으며 그의 하이힐만큼 높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맞아, 초대해줘서 고마워!"



올가와 함께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들어섰다. 1분 전에 만난 사람과 카페나 식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가는 것이 퍽 낯설었다. 탁한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현관문을 열자 올가의 공간이 나를 반겨줬다. 올가의 집은 손님이 온다고 말끔히 치운 기색 없이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이힐이 줄 지어 있는 신발장, 한입 베어 먹은 빵이 올려져 있는 식탁, 방 한 구석을 구르고 있는 짐볼.

의 일상이 숨김없이 묻어나는 간에서 나를 손님이 아닌 친구로 환영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두근대는 마음은 사실 긴장 때문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잔뜩 굳어있던 어깨에 스르르 힘이 풀렸다.


만약 올가가 게스트를 초대할 때마다 집을 말끔히 치웠다면, 다년간 카우치호스트를 했을 정도로 낯선 이를 꾸준히 초대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올가의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기에 나도 5분 전에 만난 낯선 이의 공간에 부담 없이 들어설 수 있었다.



집에 누군가를 초대할 때 정돈된 모습으로 맞이하는 것.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방식은 나의 관계에 상대를 초대하는 방식과도 닮아있다. 널브러져 있는 감정들은 마음 구석구석 숨겨 둔 채 말끔한 부분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손님에 대한 예의일 수는 있지만 친구를 맞이할 편안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한 입 베어 먹은 빵이 올려져 있는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올가가 끓여준 홍차를 마시며 10분 전에 만난 사람들이 주고받을 법한 대화를 나눴다. 신발장에 줄 지어있던 하이힐만큼 높아졌던 목소리가 점점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날 밤 올가가 마련해준 침대에 누워 한국에 돌아가면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말끔히 치운 집 말고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이 내 멋대로 널브러져 있는 집에.






-집 내부 사진은 올가의 허락을 받고 촬영하였습니다.


https://brunch.co.kr/@yj63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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