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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Sep 08. 2022

헬스의 미학(美學)

하늘이 무너져도 꾸준히 무엇인가 계속한다는 것에 대하여

애석하게도 나는 키가 중3 때 이후로 크지 않았다. 즉, 그때의 키 그대로 168cm이다.


아버지는 키가 172cm이시고 어머니는 키가 158cm이시기 때문에 최소한 나는 175cm까지는 클 줄 알았다만 정말 죽어도 170이 넘지 않더라. 줄넘기에 농구에 칼슘우유 등 정말 모든 노력을 해봐도 키가 크지 않았고, 나는 고2가 되고 나서야 이 키가 내 평생 키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비로소 고2가 되고 나서야 마른 내 몸을 보고 이 몸뚱이를 어찌해야 할지부터가 고민이었다.


누구에게는 살을 빼는 것이 고역이겠고, 누구에게는 살을 찌우는 것이 고역이다. 다만 차이점은 키는 성인이 되어서도 크지 않는 것이고 살은 후천적으로도 빼거나 찌울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매우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나에게 키 185cm와 몸무게 100kg를 동시에 준다면 계절 두 번 바뀔 때 쯔음이면 근육질의 몸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내 몸무게는 대학교 이후 68~70kg를 변함없이 유지해왔고, 혹시라도 과식 주간으로 인해 71kg가 넘어가면 일주일 안에 다시 68kg 수준으로 복귀시켰다. 많은 사람들도 물론 그러겠지만 눈바디(‘눈(眼)’과 체성분 분석기 브랜드인 ‘인바디’의 합성어로, 다이어트를 할 때 거울을 통해 몸을 확인하는 것을 말한다)를 매일 전신 거울을 보며 가슴 근육이 흐려졌는지, 삼각근이 줄었는지, 이두 또는 삼두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살펴본다.


마인드가 육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반대로 육체의 현황이 마인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몸에 대한 변화를 항상 보기 위해 전신 거울을 통해 눈바디를 잰다. 근육이 없어지거나 생기는 것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오늘은 헬스의 미학, 즉 그 가치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2003년인 고등학교 2학년, 즉 유학생활 11학년(Junior) 시절부터 헬스를 꾸준하게 해왔다. 비가 내리나 눈이 오나 푹푹 찌는 여름과 상관없이 19년을 변함없이 해왔고 내가 살면서 유일하게 10년 이상 꾸준히 한 취미이기 때문에 더욱이 특별하다. 어떤 사람은 다이어리를 평생 써왔고, 어떤 사람은 요리를 10년 이상 해왔다. 나는 이 꾸준함이 '운동'에 있었는데 그 이유는 계속 몸이 개선이 될 수 있고 내가 최상의 컨디션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5년 반짝 하고 안 하는 것이 아닌 10년, 15년, 20년을 지속시킨 것에 대해 어떤 미학(美學)이 과연 있을까? "10년 이상 변함없이 지속시킨 것이 우리에게는 과연 무엇이고 그게 왜 중요할까?"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어린이든 상관없이 헬스가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내 생각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그냥 쉽게 얘기해서 왜 내가 운동을 변함없이 하고 있는지 3가지 이유를 얘기해보고 싶다. 나의 생각들이 여러분들의 일상에 일종의 활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 시작에 앞서 나는 영양학 또는 헬스 전문가가 결코 아니란 것을 밝힌다. 그저 하루에 30분씩 미만으로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있는 헬스 19년차 직장인이다. 장염에 걸려 드러누운 날들에도 자기 전에 꼭 팔굽혀펴기를 하고 잤으며, 논산 훈련소 4주간 당연히 푸쉬업+어깨운동을 변함없이 했고, 입사 직후 회식 때 과음으로 토를 하고 집에서 그냥 자빠져 잔 몇몇 날을 제외하고는 이두에 힘(Flex)라도 몇 번은 주고 잠들었다. 만약 본인이 약 20년 가까이 총 30일 미만을 제외하고 꾸준히 한 것이 있다면 나의 일관성(Consistency)에 대해 의문을 가져도 좋다. 단, 그 꾸준함이 생리적인 현상에 국한되거나[먹방, 낮잠], 노력이 동반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일 경우는 제외다.





미학의 첫 번째, 몸의 변화는 철저하게 나의 지배 하에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운동을 하지 말라고 뜯어말리는 사람은 주변에 없을 것이다. 대부분 야근을 해서, 피곤해서, 출장을 자주 가서, 시간이 없어서, 헬스장이 멀어서, 육아를 해서, 피치못할 집안 사정들이 많아서이다. 먼저 위 이유들은 당연히 운동을 못할 합당한 이유라고 생각하고 공감한다. "네가 육아해봐. 네가 육아를 알긴 아냐?" 라고 반문한다면 당신 말이 다 맞다. 내가 육아를 모르기 때문에 아직 운동을 꾸준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육아를 했다면 내 잠자는 시간 30분을 빼서라도 거실 바닥에서라도 맨몸 운동을 끼워 넣었을 것이다. 


운동이 불가능한 사유는 이제 "내 잠자는 시간이 24시간 중에 총 30분 미만인데?"밖에 안 남는다.


나는 내가 오늘 퇴근하고 어디 부위에 몇 세트를 할 것인지 머릿속에 그리면서 퇴근한다. 집에 도착하면 저녁을 집에서 간단하게 먹거나 옷을 바로 갈아입고 단지 내 Gym으로 출발한다. Gym으로 향하는 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단언컨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내가 내 행동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는데, 자기 통제(self-control)가 가능한 영역은 세상에서 그렇게 많지가 않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는 내가 어떤 업무를 할지도 컨트롤 못하고, 어떤 직장에 원하는 기간까지 다닐지도 컨트롤 못하고 (심지어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바뀔 확률이 높음), 주변 또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내 컨트롤 영역 밖이다. 다만, 하루에 30분 미만의 시간을 쪼개 넣는 것은 오로지 나의 선택에 기반한다. 설령 Gym을 가는 도중에 갑자기 누군가가 급하게 미팅을 요청해도 운동 후 30분 뒤에 출발해도 된다. 내 삶이라고 생각했던 이 생애 기간 동안 고작 내가 주도권을 잡는게 이렇게 매력적인 상황이라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미학의 두 번째, 몸은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매우 조심해야 될 부분이기도 하다. 피치 못하게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운동을 하기에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여건이 힘든 분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걸을 수 있고(Being able to ambulate),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Healthy mindset)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나 해당된다고 본다. 추측컨데 직장인은 약 99% 해당되지 않을까 예상된다.


나는 관찰력이 굉장히 좋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대개 사람을 볼 때 나는 사람의 신체를 전반적으로 본다.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빠르게 파악이 되는 편이다. 특히 걷는 자세도 보는 편이다.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또는 본인 몸에 관심을 주고는 있었는지에 대한 사항들에 대해서 궁금하기 때문이다. 스콰트를 꾸준히 한 사람이었다면 힙이 쳐지거나 모양이 퍼지지 않았겠고, 벤치 프레스를 적어도 수개월 이상 진행했다면 셔츠를 입을 때 모양새가 잡혀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힘차게 빠르게 정자세로 걷는지 또는 팔자걸음을 하며 힘없이 걷는지 또는 발을 질질 끌며 걷는지까지 관심이 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자신감, 즉 자기애가 가꾸어진 신체에서 시작하는지 또는 멘탈(Mindset)에서 시작하는지를 알고 싶어서이다.


살이 크게 쪘다면 그건 원큐에 스트레이트로 찐 것이 아니라(예: 68kg에서 다음 날 일어나 보니 98kg가 돼있는 경우이다) 70kg를 찍고 그다음에 75kg를 찍고 그다음에 80kg을 찌우는 본인을 그대로 마주한 날들이 숱했던 것이다. 그 수많은 날들에 대해 본인은 그것에 대해 냉철한 액션을 취하지 않았던 또는 못했던 것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어떠한 형태로도 몸이 망가져있다는 것은 '그날들에 대해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못했어요'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 기간 동안 자기애(自己愛)는 과연 어디에 갔었는가? 분명 몸 관리보다 더 우선순위가 있었던 것임이 분명하고, 그것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는 것이 맞다. 몸은 그 사람의 일부 사상까지도 감히 엿볼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미학의 세 번째, 헬스는 실패 지점을 통과하는데 의의가 있다.

"실패 지점"이란 더 이상 수축과 이완을 통한 반복이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즉, 헬스 트레이너 분들이 마지막에 "하나 더! 하나 더!"하는 그 순간이다. 첫 세트부터 물론 실패 지점에 도달하는 건 현명하지 못하다. 우리 근육은 세트 후반부에 갈수록 근육이 활성화되기 때문에 마지막 세트 정도 때 실패 지점을 통과하려고 하는 우리의 마인드셋에 근성장이 달려있다.


가슴 운동 중에 Butterfly라고 있는데 이 운동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45kg을 올려놓고 22회 x 4세트를 한다. 총 88회를 하는 것이다. 다만 4세트 때 돼서는 결국 88회까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근육이 지쳐서 첫 세트는 22회, 둘째 세트는 22회, 셋째 세트는 18회, 넷째 세트는 16회 이런 식으로 피로도가 쌓여서 88회를 못 채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상황에서 못 해낼 총 88회를 고정으로 정해 놓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88회를 채워야 하는 것이고 내가 만약 셋째 세트에서 힘들다고 2개 부족한 20회를 할 경우, 그 2개를 마지막 세트에 추가시킨다. 즉, 내가 못 해낸 '오차값'을 내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변명은 없다. 셋째 세트에서 2개 안 하고 꿀 빨았으면 넷째 세트에서는 그 오차값을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내가 가슴 운동 중 가장 좋아하는 Butterfly 운동이다"


실패 지점이 그렇다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우리는 늘 우리에게 변명을 하는데 익숙해져 있고 나 또한 그런 경우가 많다. 실패 지점에 도달하면 근성장에 이로울 뿐만 아니라 내가 불편함을 겪으면서까지 결국 밀어붙인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헬스를 할 때 제일 최악인 것이 쾌적하게 운동하는 것이다. 쾌적하게 12회씩 4세트를 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지향점은 아니다. 개인마다 다르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실패 지점까지 통과하고 나면 며칠 뒤에 전신 거울을 보면 그 Extra mile, 즉 한 뼘 더 앞으로 그날 2개 더 했던 것이 몸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헬스의 미학은 꾸준함, 즉 일관성에서 오는데 기반한다. 헬스가 되어도 좋고, 탁구가 되어도 좋고, 테니스가 되어도 좋은데 반드시 10년 이상의 일관성(Consistency)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헬스가 대수가 아니다. 오히려 이 글의 제목은 '일관성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 수도 있다. 부끄럽지만 몇 년 끄적이다가 집어친 것들이 내게는 많다. 내 유튜브 채널을 보면 디지털 피아노 녹음도 대학교 때 엄청 했다가 지금은 치지도 않는다. 마지막 업로드가 2009년이다. 이 말은 피아노 치는 것에 대해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확실히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 부분은 바로 운동이 결코 '훈장'이 아니다. 다만, 개인이 자기 주도 하에 취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건강한 취미이기도 하다. 인스타 보면 #오운완 태그 하나 남기려고 거울 헬스 하시는 분들 많다. #오운완도 좋고 #내운완도 좋다. 뭐든 좋다.  다만, 오운완에 만약 본인이 진심이라면 해쉬태그를 매일 10년 이상 찍길 권장한다. 5~6년 하는 척 하다가 #오운완이 사라지면 그것 또한 참 아쉽지 않겠는가.


이 글을 읽었으면 오늘 자기 전에 맨몸 스콰트라도 양치하면서 10회라도 하는 것을 제안한다. 몸이 좋아지는건 두 번째고 일상에 연속성을 부여하는데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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