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은 선박들
원유(Crude Oil)는 정제 과정을 거쳐 수많은 산업 기초물질들을 쏟아내는 놀라운 자원이기도 하지만 정제가 이루어지지 않은 원유 그 자체는 폭발력, 휘발력도 가지고 있는 대단히 불안정한 물질로 제대로 된 관리하에 놓이지 않는다면 자원 이전에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산유국과 비산유국의 거리가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 원유를 운반하는 유조선에 대한 관리, 운항의 책임도 상당한 수준인데 기술과 매뉴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100%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인적 재난이란 존재하지 않는 탓에 잊혀질만하면 터져 나오는 사건, 사고들이 가끔 신문지상에 소개되곤 한다.
1989년 3월 24일, 알래스카 인근에서 좌초되어 원유유출 피해를 일으켰던 M/T Exxon Valdez사건에서 유출된 원유의 양은 약 38,156킬로 리터로 추정되는데 청정해역이었던 알래스카 근해를 거의 1년간 초토화시킬 만큼 엄청난 피해를 불러온 바 있었다.
피해라는 것 자체를 수치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겠지만 당시 알래스카 주 앵커리지 법원에서 선주사였던 EXXON에게 부과한 손해배상금으로 물적 손해배상금으로 2억 8700만 달러, 징벌적 손해배상금으로 따로 50억 달러를 책정한 것을 봐도 그 피해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나중에 그 손해배상 수준이 조정되긴 했지만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서 사운을 걸고 거의 대부분의 피해어민들과 직접 접촉하여 피해를 배상했고 사고지역 복구에도 안간힘을 썼던 EXXON은 그나마 최악의 사고 회사라는 오명은 어느 정도 벗을 수 있었고 지금은 사고 자체는 원유유출사고의 상징으로 남아있지만 책임을 모면하거나 축소, 은폐하려 했다는 오명은 받고 있지 않다 - EXXON은 사고 후인 1999년 11월 30일, 또 다른 석유 메이저 그룹 MOBIL을 합병하며 EXXONMOBIL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고 현재 세계 1위의 석유 메이저 회사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번의 크고 작은 원유유출사고가 있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2007년 12월 7일의 태안 앞바다에서 해상크레인과 VLCC(Very Large Crude oil Carrier : 대형 원유운반선) 허베이 스트리트호와의 접촉사고로 인해 12,547킬로 리터의 원유가 유출되었던 사고가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Exxon Valdez호에서 유출되었던 양에는 미치지 않는 수준의 유출량이었는데도 태안지역뿐만 아니라 서해안 대부분이 큰 피해를 입은 대참사였다. 이처럼 원유의 유출은 적은 양이라도 바다 생태계와, 바다를 기반으로 생업을 유지하는 이들에게 대단히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사고 자체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가 펴낸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에서 소개된 법칙으로 어떤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가벼운 사고나 징조들이 나타나며 그로 인해 결국 대형사고로 이어진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망자 1명이 나오기까지 유사한 원인으로 경상자가 29명 발생하며, 실제로는 아무런 사고를 겪진 않았지만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인 부상자가 300명이 있다는 통계에 비롯한 법칙으로 1:29:300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이 법칙의 가장 중요한 교훈은 어떤 아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거나 경미한 사고가 있었을 때, 소홀히 넘기지 않고 반드시 사고의 위험성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운다면 큰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육상직보다 업무의 특성상 위험을 담보하는 경우가 많은 해운회사의 대부분이 회사 내에 정식 부서로 안전품질팀이라는 팀이 있다. 이 팀을 운영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연유한 것으로,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회사 간에도 그 정보를 공유하며 사고의 내용과 예방 방안에 대해 연구한다. 뿐만아니라 정기적으로 선박들에게 그 내용을 브리핑해서 교육자료로 알려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Deepwater Horizon은 총톤수(GROSS TON) 32,588톤, 전장 112m, 전폭 78m, 전고 97m의 제원을 가지고 2001년 2월, 대한민국 울산의 현대조선소에서 건조된 대형 반잠수형 석유 시추시설(semi-submersible offshore drilling rig, 통칭 OIL RIG)이었다. 선주사는 세계 최대의 석유 시추 그룹인 Transocean이었으며 세계 2위의 석유 메이저인 BP(Beyond Petroleum - 이전에는 British Petroleum)의 지휘를 받으며 운영은 선주사인 Transocean에서 담당하는 형태로 멕시코만의 해상유정을 탐사, 시추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통상, 석유 시추시설을 선박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이 있지만 최근 들어 가장 진보된 형태의 석유 관련 시설로 각광받는 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and Offloading : 선박형 석유 시추/정유/저유시설)의 경우, 분명한 선박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OIL RIG와 같은 경우에도 IMO에서 선박의 식별부호인 IMO No. 를 부여하여 관리되고 있다. - Deepwater Horizon의 경우 IMO No. 8764597
심해 유정에 대한 시추작업의 경우, 사람의 손이 직접 도달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무인 작업으로 이루어지게 되고 그런 이유로 수많은 계기판이나 카메라, 안전장치에 의존하게 된다.
Deepwater Horizon의 경우, 폭발 이전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야 할 시추 파이프가 어긋난다던가, 시추공에 걸리는 압력을 막기 위해 주입하는 특수시멘트 작업이 어려움을 겪는 등 작은 사고들이 빈발했고 그로 인해 작업자들에게도 상당히 고된 유정으로 평가받는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작업이 늦어지고 있었고 BP는 늦어지는 작업으로 인해 추가 비용이 계속 투입될 것을 우려하여 반드시 시추 전 완료되어야 할 유정 안정화 작업을 서둘러 마무리 짓고 작업에 들어갈 것을 압박하고 있었다.
작업에 대한 감리를 맡고 있던 Schlumberger, Halibarton그룹의 엔지니어들이 이에 항의하며 유정을 이탈했고 시공을 담당하던 Transocean 측을 BP 측이 직접 압박하게 되면서 재앙이 시작되게 된다 - 이에 대한 상황은 영화 Deepwater Horizon에서도 초반의 갈등 상황으로 자세히 그려진다.
2010년 4월 20일 21시 56분, 유정 안정화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심해 시추공에 걸려있던 시추 파이프에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면서 가스 유출이 시작되었고 뒤이어 대폭발이 일어난다.
처음 압력이 걸리기 시작했을 때, 자동으로 파이프를 막도록 설계되어 있던 시추 장치의 안전장치(Blowout Preventer)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압력에 의해 가스가 시추 파이프를 통해 시추선으로 유입되었고 뒤이어 가스가 인화되면서 폭발에 이르게 된 것. 이로 인해 가장 먼저 가스폭발에 휘말린 파이프 인근의 시추원 9명과 2명의 엔지니어들이 한 번에 증발해버리고 만다.
총 126명(Transocean 소속 79명, BP 측 6명, 잡역부 41명)이 승선 중이었던 Deepwater Horizon에서 115명이 탈출에 성공했지만 처음 폭발에 가장 먼저 휘말린 11명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엄청난 사고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승조원들이 탈출에 성공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던 상황, 하지만 진정한 재난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시추공에 박혀있던 시추관을 제어해야 할 시추선이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시추관을 통해 엄청난 압력의 원유가 그대로 바다로 유출되기 시작한 것. 통상 원유운반선에서 발생하는 사고의 경우, 침몰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누출되는 양에 대한 파악 - 실려있는 원유의 양 - 은 할 수 있는 반면 시추공에서의 유출의 경우, 유출을 막지 못한다면 그 유정의 원유가 바닥날 때까지 쏟아져 나오게 되어 유출량 자체에 대한 파악이 불가능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 사고에서 바로 이런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
폭발 직후부터 바로 발생하기 시작한 원유의 누출은 사고 이틀 뒤인 4월 22일에야 파악이 시작되었다. 부랴부랴 BP 측에서는 무인 심해 잠수정을 투입하여 유정의 누출부위를 잠그겠다고 장담했지만, 이튿날까지 실제 누출이 일어나고 있는 위치를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24일이 되어서야 해저에 박혀있던 시추 파이프를 통해 엄청난 양의 원유가 유출되고 있음을 직접 확인하게 된다.
엄청난 유출 속도에 따라 유출량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계속 엇갈렸는데 훗날 미국 정부 측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당시 1일 60,000 배럴 이상의 원유의 유출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투입된 무인잠수정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찾아낸 유출부위는 그야말로 처참했는데 한 곳도 아닌 세 군데에서 누출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 처음 누출이 시작된 것을 폭발이 일어났던 4월 20일로 잡았을 때, 시추공을 완전히 틀어막은 것이 7월 15일이었으니 무려 석 달 가까운 기간 동안 멕시코만으로 엄청난 원유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애초 시간과 금액을 절약하기 위해 작업을 서둘렀던 BP는 창사이래 벌어진 미증유의 재난 앞에서 그간 쌓아왔던 모든 기술력을 동원하며 유정을 틀어막기 위해 애를 썼지만 번번이 실패를 겪었고 원유가 유출되고 있는 파이프에 Bypass Line을 설치하고 대형 FPSO(Floating Production Storage and Offloading : 선박형 석유 시추/정유/저유시설)인 Discoverer Enterprise호를 사고지점에 위치시킨 뒤, 유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원유를 우회시키기 시작한 6월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유출량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5월 24일, 추측 유출량이 70만 배럴을 넘어섰으며 이로 인한 2차 피해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던 상황. 쏟아져 나오는 원유만큼이나 원유로 인해 파괴되고 있는 해양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가 취해진다. 유출량을 줄이는 것과 함께 유출되어 나온 원유가 뒤섞인 해수를 바로 정화시키기로 한 것.
이를 위해 대만 회사인 TMT(Taiwan Maritime Transport Co. Ltd.)의 초대형 원유/광석 운반선인 A Whale호를 대규모 유수 분리선으로 급조하여 투입하였지만 멕시코만에서 2주간 실시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고 대량의 오염수를 한 번에 정화하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사고 직후부터 투입되었던 크고 작은 유수분리기를 장착한 오염 제거선들의 활약은 이어졌고 이는 7월 12일, 유출되는 원유들을 모두 시추선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이후에도 계속된다. 그리고 사흘 뒤인 7월 15일, 해저에 뚫려있던 모든 시추공을 틀어막는 데 성공한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고 만다는 고사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이 사고에서 BP의 상황이 딱 여기에 들어맞는 이야기였다. 문제를 일으키는 유정, 계속적인 안정화 시도와 실패로 늘어지던 시간. 하염없이 투입되는 비용에 연연하다가 그야말로 엄청난 재난을 맞이하게 된 것.
사고 얼마 후 5월부터 현장에서 가장 가까웠던 루이지애나주 해변으로 기름덩어리들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6월에는 점차 그 범위가 넓어지면서 미시시피, 앨라배마, 플로리다주의 해변까지 기름덩어리가 밀려들었다. 총 1,100마일(1,770km)의 해안선이 원유로 오염되었고 천문학적인 금액이 투입된 정화작업이 진행되었고 무려 4년이 지난 후인 2014년 4월에 이르러서야 작업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사고를 처리하는 중, BP는 무려 회사 가치의 4분의 1 이상의 손실을 겪었고 정화작업과 생태계 복원에 대해 지출한 비용만 400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손실을 기록하게 된다. 그 외에도 사고에 대한 징벌적인 배상책임을 인정한 연방법원의 결정에 따라 45억 달러 이상의 벌금이 부과되었으며, 기름 유출의 규모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아 주주들의 손해를 일으킨 혐의도 인정되면서 증권거래위원회에 5억 달러 이상을 배상하게 된다. 사고 10년이 훌쩍 넘는 지금까지도 멕시코만 인근에서 당시 사고로 인하여 뒤틀린 생태계가 여전히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보고가 이어지고 있어 완전한 복원까지는 아직도 꽤 긴 여정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원유는 그 자체가 수많은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제어에서 벗어날 때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불안정한 물질이다. 작게는 11명의 인명, 크게는 멕시코만 전체의 생태를 뒤틀어놓은 Deepwater Horizon호 침몰사건은 거듭된 위협을 무시하고 기본을 지키지 않을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 교훈으로 남았다. 기술이 아무리 진보하고 정교한 기계가 아무리 많은 일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기계를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며 여전히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로 자연 앞에서 겸손해져야 하는 미약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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