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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재성 Apr 10. 2021

세월호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역사

배 타는 선원들의 특성(?)중 하나를 꼽으라면 정말 하기 싫어하는 일이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그냥 별 동요 없이 나서서 한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투덜거려도 결국엔 하고 마는 것. 한두 번이 아니라 매번 이런 식이다. 다들 입으로는 뭐가 맘에 안 드네, 뭐가 짜증나네하고 말로 풀고 만다. 애초 스스로의 일이 정해져있는 공간에 한정된 인원들로 이루어진 선박에서 아무리 하기 싫어도 맡겨진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할 일을 다른 이들이 덤터기 쓰는 상황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으로만 투덜거릴 수 밖에 없는 것.

 

그런데, 다들 그런 말조차 잊은 때가 있었다.


세월호가 침몰했던 2014년 4월 16일 당시, 나는 선장으로만 40여년을 보냈던 아버지와 TV 앞에 앉아있었다. 퇴직한 베테랑 선장과 휴가 받아 집에서 뒹굴 거리던 항해사 아들 앞에 TV를 통해 보인 화면은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모두 무사히 구조!’라는 뉴스를 보면서 ‘이야 저 상황에서 모두 구해내다니 다들 대단하네.’하며 무릎을 쳤었는데, 옆으로 기울어진 모습만보고도 모두를 무사히 구조한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바뀌어 날아들기 시작한 뉴스들…

YTN뿐만 아니라 모든 매체들이 앞을 다투어냈던 오보. 쓸어내렸던 가슴이 도로 무너지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침나절의 희망적인 소식은 세월호와 함께 뒤집어졌고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복원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맹골수도 한 복판에서 서서히 누워가던 배를 보며 그저 발만 동동 구르던 기억이 악몽처럼 떠오른다. 그렇게 476명이 타고 있던 배에서 처음 뉴스처럼 전원이 무사히 구조되었던 것은 배를 실제로 몰던 선원들 밖에 없었고 결국 304명의 생명이, 그들의 부모들이, 또 그만큼의 형제자매들의 삶이 그 배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즈음 의무교육을 위해 해양수산연수원에 들어갔던 나는 똑똑하게 연수원에 들어와 있던 동료 선원들의 분노와 설움, 자괴감을 목도했다. 배만 내리면 말 많아지고 쾌활해지는 뱃사람들이 거짓말처럼 입을 다물고 충혈된 눈으로 이를 가는 모습들을. 함께 교육받고 함께 바다를 누비던 동료들이 멀쩡한 승객들 버리고 지들만 살겠다고 빠져나온 상황을 보며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부산 영도구의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승선하는 선원들이라면 누구나 정기적으로 찾아가서 교육을 받아야하는 국가기관이다

세월호가 그렇게 어이없이 침몰되고 나서 선원들의 연수원 교육내용은 많이 바뀌었다. 애초 한 번만 받으면 이후에 면제되었던 교육들 중 정기적으로 재교육을 실시하게 된 것도 있었고 원래 교실에 앉아 받던 교육에서 실제 선박처럼 꾸며놓은 시설에서 열 길 깊이의 물로 뛰어들어 빠져나와야 하는 교육도 생겨났다. 


2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대도 다양했던 뱃사람들이 그렇게 새로 생겨난 교육을 받으면서도 누구 하나 투덜거리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이렇게라도 장차 생겨날지 모를 희생자를 막을 수 있다는 거창한 각오는 아니었다. 그저 다들 뭐라도 해야 했던 절박한 심정…그런 감정들이 연수원을 휘감고 있었다. 다들 분노와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웬만하면 입도 뻥긋하지 않던 그 숨막히던 기간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로부터 3년 후, 세월호가 인양되었던 날은 마침 4일짜리 연수원 교육이 마무리되던 날이었고, 수업이 시작될 때 교수님은 슬그머니 오늘의 빅이슈에 대해 교육생들에게 물었다.

다들 눈치만 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 아무래도 세월호가 아닐까요?'


'그렇죠. 오늘의 빅이슈는 세월호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세월호의 일차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다시 다들 눈치만 보는 분위기, 선뜻 말을 못 꺼내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그런 분위기를 가로채며 말을 꺼냈다. 

세월호 인양이 이루어지기 전, BA 3365 CHART(해도)에 표시된 침선 표시. 저 위치에 세월호가 잠겨있었다

'일차적인 책임은 누가 뭐래도 선원들의 책임이 되겠지요. 여러분처럼 지금 이 자리에 앉아있던.. 그리고 그들에게 강의를 했던 바로 우리들의 책임일 겁니다.'

일동의 무거운 침묵 속에 교수님은 말씀을 이어갔다.


'... 3년이나 걸렸습니다, 3년. 일차적인 책임은 우리의 책임이지만 국가시스템의 부재라는 점에서 정부도 그 책임을 면할 수 없겠지요. 당연히 작동했어야 할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는 것... 혹시 여러분 중에 허드슨강의 기적이란 영화 보신 분 계신가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2016년작 'Sully'

어차피 다들 눈치 보는 분위기, 맨 앞에 앉아있던 죄로 교수님의 눈동자에 걸려든 상황에서 내가 총대를 매야했다.


'예, 저 봤습니다.'

'보고서 무엇을 떠올렸습니까?'

'솔직히 세월호가 오버랩돼서 입맛이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랬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세월호 선장 이준석과 정확히 반대편에 놓인 인물, Chesley Burnett 'Sully' Sullenberger III

'허드슨 강의 기적은 2009년 겨울, 이륙하자마자 버드 스트라이크로 추락했던 한 여객기의 이야깁니다. 세월호와는 비행기와 배로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한쪽은 기장과 부기장의 빠른 판단과 승무원들의 대처로 단 한 명의 승객도 잃지 않았고 다른 하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나는 말을 이어갔다.


'한쪽은 단 한 명의 선원도 잃지 않았죠.'


사실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을 받은 부분에 대해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어가야 했다.


'이 영화를 보고 제가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빠른 대처로 단 한 사람의 승객과 승무원도 잃지 않았는데도 철저한 조사로 조종사의 과실에 대해 조사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영화 속에서는 일견 부당하고 일견 비전문가의 섣부른 결론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결국 강을 도착지로 정했던 기장과 그의 order에 따른 부기장의 판단이 옳았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2009년 1월 15일,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US Airways Flight 1549

또한 뭐죠?'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교수님을 보면서 나는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영화만 봐도 허드슨강에 추락했던 당시, 조종사들의 판단이 옳았음을, 그리고 그 모든 철저한 조사과정을 다른 나라에서 영화로 보고있는 저라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 하지만, 세월호는 도대체 무슨 일로 그렇게 참혹한 사고를 당했는지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는 것이죠. 한쪽은 시스템을 통한 철저한 조사로 실제 영웅이었던 이를 잘못된 판단으로 승객들을 위험으로 몰고 간 사람으로까지 만들뻔하기도 했습니다만 정말 모든 과정을 선입견 없이 성역도 두지 않고 철저히 조사했고 그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정부여당이라는 자들부터 나서서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 자체에 딴지를 거는 행태를 보여줬죠. 이런 식이라면 또다시 똑같은 사고가 일어난다고해도 국가는, 그리고 그 국가의 국민이라는 우리는 또 똑같은 행태를 반복할 겁니다. 우리에게는 개개인의 판단에 따른 감동적인 성공사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근본적인 시스템의 구축이 우선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속담은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애초에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어리석음을 탓한 것이지만 어느 영화에 나왔던 것처럼 가장 어리석은 자는 소를 잃고도 외양간 고칠 생각을 않는 자일 것이다.


무려 304명의 인명을 잃어버리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반드시 재앙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런 악몽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감당할 수 있을까?


....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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