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평변호사
사실관계
A는 고교동창 B에게 자기 명의의 계좌(통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비밀번호를 알려 주었다. B는 정상적인 신용거래,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A의 계좌를 해외선물 투자에 이용했다. C는 2020. 7.경부터 A 명의의 계좌로 1억 2,000만원을 송금하였고, A 명의 계좌가 주식투자에 사용되었다. B는 C에게 A로 사칭하면서 투자금반환약정까지 했다.
제1심, 제2심의 판단
제1심, 제2심(항소심)에서는 A가 B에게 자기 명의의 계좌(통장)을 이용하게 할 경우,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예견가능성(예상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B의 주식투자관련 사기죄에 있어 공동불법행위자(공범)로 C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였다.
대법원의 판단(2024다238316)
B는 주식투자관련 사기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었고 C는 A에 대해 주위적 청구로써 대여금반환청구를, 예비적으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 소송을 제기할 때 주위적 청구, 예비적 청구는 주위적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기각), 예비적 청구에 대해 판단을 구하는 소송의 병합에 관한 것이다. 소송을 제기하는 권리의 근거가 여러 가지일 경우, 주위적 청구, 예비적 청구, 선택적 청구 등 민사소송법상 단일한 청구일 경우 그것이 기각될 것을 대비해 다른 원인을 근거로 청구하는 경우이다.
1 A의 입장에서 B에게 대여해 준 자기 명의의 계좌가 주식투자 사기와 같은 범죄행위(불법행위)에 사용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 예견가능성이 없었던 점,
2 B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주식투자 사기의 점에 대해 B가 C를 기망하였는지 여부에 대해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점,
3 A가 B에게 자기 명의 계좌를 장기간 사용하도록 하여 그 주식선물투자가 이루어진 것이고 A가 B의 자기 명의 계좌에 대한 이용상황을 점검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 A가 B의 불법행위를 방조하였다고도 단정할 수 없는 점,
4 특히 A는 B와 고교동창 관계로 오랜 기간 알고 지내온 사이이고 A가 B의 C에 대한 계좌거래 이외에도 여러 계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는데 아무런 대가를 지급받은 사실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B가 C와의 주식투자관련 거래행위에 대해 특별한 문제점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A에 대해 손해배상청구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윤소평 변호사의 TIP!
예전에 보이스피싱과 관련하여 계좌대여, 신용카드전달 및 인출책, 보이스피싱 상위 행위자와 가까운 관계로 자신의 행위가 범죄행위임을 미필적으로 인식하고 행위를 한 경우 등 형사사건을 상당히 많이 처리한 경험이 있다.
일반적으로 자기 명의의 계좌를 타인에게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신용거래, 금융거래가 불가한 사람에게 자기 명의의 계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한 행위는 분명 민사상, 형사상 책임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거래행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가족, 친구 등 지근 거리에 있는 관계의 사람이 신용불량 등으로 신용거래, 금융거래를 할 수 없다는 사정을 전해 듣고 자기 명의 계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데, 일반적으로는 신용거래, 금융거래에 한하여 자기 명의계좌를 이용하도록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즉, 자기 명의 계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의사표시는, 불법적이지 않은 범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대부분이고 그것이 불법행위(사기 등)에 이용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인식, 예상할 수 있었더라면 자기 명의 계좌사용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 명의 계좌를 사용하게 하면서 일정한 반대급부(대가)를 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본인 명의로 신용,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자가 대가를 지급하면서까지 타인 명의 계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에는 분명 구린(?) 냄새가 나지 않을 수가 없다.
다만, 위 사례에서는 자기 명의의 계좌사용을 허락하면서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았고, 관계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사정에 비추어 자기 명의계좌를 사용하도록 한 것일 뿐, 특히 과거 자기 명의를 이용한 거래가 특별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자기 명의 계좌를 사용하도록 한 사정 등에 비추어 A가 B의 불법행위에 대해 인식할 수 없었은 뿐만 아니라 나아가 예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A에 대해서는 불법행위의 공범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대법원의 판례를 통상적인 판결로 받아들여서는 안되고 제3자가 자기 명의의 계좌, 신용카드, 명의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거나 대가를 지급하겠다거나 할 경우에는 범죄행위에 자기 명의의 계좌, 카드 등이 사용될 수도 있다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자기 명의의 계좌, 신용카드 등을 제3자에게 사용하도록 허락해 주는 행위는 민사적, 형사적 책임발생의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삼가하는 것이 옳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