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나니 님, 얼마가 있으면 이른 은퇴가 가능할까요? 지금 쓰는 생활비의 70쯤을 생활비로 잡으면 충분할까요? 나이 들면 점점 돈 쓸 곳도 없어질 거잖아요. 은퇴하면 사회생활도 줄어들고 하니까요. 나니 님은 한 달에 얼마나 써요?”
한 달에 얼마를 쓰는지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애써 돌려 대답한다.
“은퇴 후에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정말 다른데요.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계실 거면 그렇게 잡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정도 즐겁게 살고 싶으시다면 이 생각을 하셔야 해요. 지금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일하느라 돈 쓸 시간이 없잖아요. 돈이나 주말 이틀 동안 쓰죠. 그런데 은퇴하면 돈 쓸 시간이 주 7일 이예요. 뭐 하나라도 배우고, 어디라도 놀러 가면 돈이에요. 아무 생각 없이 쓰다 보면 내가 얼마나 돈을 잘 쓰는 사람인지 곧 알게 되실 수도 있어요. 그러니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따라 은퇴 자금 계획을 잘 세우셔야 해요. 제가 그걸 못했어요.”
은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 중 돈 쓸 날이 주 7일이라는 생각을 해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취미 생활과 여행 등으로 가득 찬 행복한 은퇴 생활을 꿈꾸던 많은 사람이 나의 현실적인 이야기에 한껏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냉정하게도 그것은 현실이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던 것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회사를 그만두고 우리사주를 정리하자. 한 달에 얼마면 될까? 난 원래 소비가 많지도 않으니까 우리 사주 판 돈이면 일을 안 해도 최소 20년은 살 수 있을 거야. 아껴 쓰면 충분해. 투자해서 더 벌면 더 여유로울 수 있어. 그래 지금 그만두자. 지금이 아니면 안 돼.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는 없어.’
고작 하루짜리 고민이었지만, 퇴사라는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만한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채는데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았다. 나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꽤 자신만만하게 평생 자금 계획을 세웠다. 많이 쓰지 않는 성격이었고, 오래 살 것 같지도 않았다. 이미 암이 두 번이나 찾아온 몸이었다. 백 살까지 살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오래 살아봐야 이십 년쯤 아닐까. 그 정도면, 지금 가진 돈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론은 빨랐다. 회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는 아무 걱정 없이 살아도 된다. 그렇게 나는 일 년 치 생활비를 따로 떼어 놓고 백수가 되었다.
넘치게 많은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할지 몰라 이것저것 경험하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마음껏 가졌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그룹수업을 들을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기에 개인 레슨을 시작했다. 50분 수업에 8만 원도 넘는 레슨비가 매우 비싸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건강을 위한 투자는 아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코로나가 한참이던 백수 일 년 차에는 골프가 유일한 안식처였다. 탁 트인 자연에서의 골프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고, 실내에 머물기만 해야 했던 암울한 그 시기를 버티게 했다. 그래도 남는 시간은 백화점 문화센터에 가서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과정이기도 했고, 처음 맞이한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좋은 방법이기도 했다. 대단히 무엇인가를 하며 돈을 쓰지 않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취미생활들로 가득 찬 나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갔다. 백수에게는 돈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차고 넘쳤다.
육 개월쯤 지나 통장 잔액을 확인한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라? 나 미친 건가? 도대체 얼마를 쓰고 있는 거야?’
명품 가방을 샀다던가, 좋은 옷과 구두를 샀던 기억도 없었다. 사치를 해본 적도, 하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기 위한 탐색의 시간은 소비가 아니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이 비용은 생각보다 컸고, 이 모든 것이 지출이었다.
가득 차 있다고 믿었던 곳간은, 월급이 사라지자 텅 비어 있었다. 매달 수혈되던 월급이 사라지니 통장 잔액은 밑 빠진 독에서 물 빠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줄어들었다. 앞으로 몇 개월을 더 버텨야 하는 데 벌써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잔액을 확인하니 비상등이 켜졌다. 비상금 통장에서 어쩔 수 없이 생활비를 추가하며 불현듯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직장인에서 백수가 되면서, 소득보다 먼저 ‘소비의 시간표’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내 소득과 소비에 대한 데이터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월급은 늘 들어왔고, 빚 없이 살았다. 돈을 관리해야 한다는 필요를 느껴본 적도 없었다. 그 사실을, 월급이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됐다. 엄마가 나 어릴 때 용돈 기입장이라도 쓰라고 했었으면, 지금보다는 나은 예상을 할 수 있었을까. 지나가서 하는 후회는 의미가 없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걱정 하나가 슬슬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돈으로 나는 정말 죽을 때까지 일을 안 하고 살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줄어드는 숫자 속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버는 돈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자신감은 무력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시 직장을 얻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였다. 월급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지켜야 했다. 그때 처음 ‘투자’라는 단어가 내 삶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