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에는 꼭 운동하려 애썼다. 주말 내내 집에 콕 박혀 뒹굴었더니 온몸이 굳어있다. 일주일의 시작을 필라테스로 하고 나면 몸과 마음이 모두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에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집 근처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갔다. 책을 보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했다. 때론 아무 일정이 없는 오후를 만나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일주일에 하루는 영어를 배웠고, 가야금 레슨도 받았다. 그마저도 하기 싫은 날이면 기꺼이 결석을 택하고 집 앞 백화점에서 쇼핑하기도 했다. 수업을 땡땡이칠 때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게, 스스로 한심해 보여 조금 망설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이런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백수가 되기로 했잖아, 하며 나를 설득하곤 했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자유, 하기 싫은 것들을 하지 않을 자유. 나 스스로 선택한 것들로만 내 하루를 가득 채울 수 있게 된 일상은 꽤 달콤했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했고, 때로는 거절로써 나의 선택권을 보장받았다.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은 없어졌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애써 봐줘야 하는 상황들도 사라져갔다.
하지만, 행복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던 자유로운 삶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균열이 갔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회사에 가야 하는 일상, 원하지 않아도 사람들과 어울려야 했던 저녁 자리. 나를 불편하게 했던 그 모든 것들이 내 일상에서 사라졌는데 이상했다. 분명 잘 보낸 하루였는데, 하루가 끝나면 피곤했다. 대단히 무엇을 하지 않았으니, 몸이 피곤할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 정신적으로 지칠 만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다. 별로 중요하게 하는 일도 없는 백수의 삶을 만끽하고 있는데, 나는 왜 회사에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피곤하단 말인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를 다 써버린 느낌이었다.
이유를 찾으려다, 문득 암 치료 후유증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리 없었다. 나를 피곤하게 했던 것은 하루 종일 스스로 해야 했던 결정의 순간들이었다.
모든 것을 내 자유의지로 할 수 있었지만, 모든 순간이 선택의 순간이었다. 매일 아침 출근을 위해 울렸던 알람은 사라졌다. 대신 몇 시에 일어날지 나는 선택해야 했다. 눈이 떠진 지금 바로 일어날지, 조금 더 게으름을 피울지 즐거운 고민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보통 아침 식사를 걸렀지만, 유난히 배가 고픈 날이면 회사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첫 끼니를 먹을지조차도 결정해야 했다. 간단히 아침을 먹을지, 아침은 건너뛰고, 이른 점심을 먹을지, 집에서 해 먹을지 나가서 사 먹을지, 아침부터 밀려오는 결정의 순간에 하루가 빨리 지나갔다. 구내식당에서 고작 한식을 먹을지 특별식을 먹을지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의 선택에 비하면 결정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다.
오늘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또 내일은? 하루에 관한 결정이 끝나면 이번 주는 무엇을 하며 하루를 채워야 할지, 매 순간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일주일에 고작 이틀 동안 선택 앞에 놓여 있던 나는 이제 일주일에 7일, 1년 365일 선택 앞에 섰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는 타인의 간섭 없이 오롯이 나의 선택들로 결정됐다. 자유를 가지면 모든 것을 가지게 될 줄 알았지만, 매 순간 내게 닥친 선택의 순간들은 묘하게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백수의 삶은 결국 모든 선택의 결정권을 내가 가지게 된다는 의미였다. 아무도 대신 정해주지 않는 선택 앞에서 나는 매 순간 망설였다. 이 중 무엇을 골라도 틀린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에게 이게 맞아? 하며 정답을 찾는데 애써야 했다. 수십 년 동안 남이 정해준 삶을 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이었을까? 누군가가 정해준 하루를 따라가는 게 싫었는데, 모든 걸 내가 정해야 하는 하루도 꽤 힘든 일이었다.
나는 하루를 애써 꽉 채워 ‘잘’ 보내려 애쓰는 대신, ‘덜 선택하는 순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직장인이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해야 할 일에 자리를 만들어줬다. 일주일에 세 번은 오전에 꼭 필라테스하기로 했다. 화요일 2시는 영어 수업을 듣고, 4시에는 가야금을 배웠다. 하루에 최소 1개의 일정을 넣어 일주일을 꾸렸다. 골프레슨이든 원데이클래스든 상관없었다. 특별한 일정이 생기지 않는 한, 아무 생각 없이 하기로 나와 약속한 일들이었다.
아침은 간단히 과일과 요거트로 먹었고, 하루에 한 끼는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것으로 정했다. 먹는 것에만도 덕지덕지 붙어 있던 선택의 순간을 절반 이상 없애버리니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달력 가득 채워져 있는 스스로 만든 일정은, 아무 생각 없이 저 일들만 해치우면 나는 오늘 선택으로부터 해방이다,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오늘은 뭘 할까 하는 물음마저 삭제해 버린 루틴이 생기면서부터 조금씩 백수로서의 나의 삶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쏟아지는 선택의 홍수에서, 옷 입는 선택마저 단순화하고 싶어 했던,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를 어쩐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심을 직접 해 먹지 말지를 고민하는 나처럼, 그들에게도 어떤 옷을 입을까 하며 망설이니 그 짧은 결정의 순간이 스트레스였을 것 같았다.
자유로운 삶이란, 쉬워진 삶이 아니라 책임의 방향이 바뀐 삶이었다. 자유란 달콤하지만, 생각보다 무겁기도 했다. 그 무게를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