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사람마다 묻곤 했다. 회사 안 가니까 뭐가 제일 좋으냐고. 혹시 알람을 아직도 맞춰 놓고 자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알람 같은 것을 맞춰 놓을 리가 없잖아요, 라며 피식 웃는 내게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게 너다, 하며 지인들은 눈을 흘기곤 했다. ‘일어나야 하는데 제발 5분만’이라는 부탁을 자신에게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은 달콤했다. 고민 없이 안방 깊이 들어오는 햇살을 온몸으로 맞고 있어도 되는 여유, 그러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앉아 멍때리는 시간. 더 이상 더디게 오는 주말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았다. 매일이 주말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울리지 않는 알람보다 더 좋았던 것은,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매일 아침 혼자 앉아 차 한잔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꾸역꾸역 출근해서 만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평생 만나며 살고 싶은 좋은 사람도 물론 많았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함께 있으면 불편한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웃어야만 했던 17년이라는 시간, 속으로는 욕하면서도 친절하게 대해야 했던 사람들. 스트레스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그들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은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 특히 가장 자주 떠올랐던 사람은, 과장 1년 차 시절 3년 동안 함께 일했던 K 팀장이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에요? 어떻게 서쪽 끝에서 소리 지르는 것이 동쪽 끝에 있는 내 자리까지 맨날 들리는지 몰라. 그 팀은 오늘도 무슨 큰일이라도 난 거예요? ”
그날도 아침부터 벌어진 난리를 피해 화장실로 자리를 피한 참이었다. 사무실 반대쪽 끝에서 근무하는 해외 사업팀 팀장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 끝에서 끝까지 100미터는 될 정도로 큰 사무실이다. 거기까지 소리가 들렸다니. 내가 지른 소리도, 나를 향한 고함도 아니었지만 창피해서 순식간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떠들썩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가 과장을 다는 해에 만나, 3년 동안 함께 일한 K 팀장이다. 주의만 주면 되는 사소한 실수에도 사무실 반대쪽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만큼 매일 소리를 질렀다. 사무실에서 고함을 치는 상사라니, 지금 회사에 다니는 청춘들은 그런 상사가 어디 있어? 하며 이해 못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과 10년 전 만 해도 잔인하고 비열한 인격모독은 회사에서 일상이었다.
지긋지긋하도록 비합리적인 언사에 함께 일한 지 삼 개월 만에 난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통보를 했다. 사자는 자식을 성장시키기 위해 절벽에서 밀어버린다며, K 팀장은 나도 그렇게 강하게 성장시키고 싶을 뿐이었다고 변명했다. 멀쩡히 일 잘하던 직원이 팀장이 바뀌자마자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모든 사람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퇴사를 번복한 것은 물론 그의 회유 때문은 아니었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그래도 떠나지 말라고 붙잡아 나는 조금 더 그를 견뎌내기로 했다. 내 심사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인지, K 팀장은 그때부터 나에게만은 친절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모욕감에 기어이 눈물까지 흘리게 만들고서야 끔찍한 시간이 끝이 나곤 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홍어삼합 어때? ”
K 팀장은 큰소리를 낸 날이면 여지없이 우리에게 물었다. 3년 동안 일주일에 3번 이상 지겹도록 들은 질문이다. 공식적인 핑계는 아침에 서로 얼굴을 붉혔으니 오늘 꼭 풀고 넘어가야 한다는 이유였지만 우린 모두 알았다. 정규 퇴근 시간에 사무실에서 출발하면 본인이 집까지 가는데 차가 너무 밀리니까.
업무 때문에 큰 소리가 나는 일이 없었는데 종일 사무실에 냉랭한 분위기가 가득한 날도 있었다.
“선배님, 오늘은 분위기가 왜 이래요? 왜 또 저렇게 말 한마디 안 하고 결재도 안 하고, 저희를 째려보는 거예요?”
지겨워 죽겠다는 얼굴로 조용히 묻는 내게 선배는 애써 씁쓸함을 감추며 대답했다.
“미안해. 나니 매니저. 내가 어제 집안일이 있어서 저녁 자리를 거절했더니 저래. 도대체 어쩌라는지 모르겠네. 정말 미안해”
선배가 미안해할 일이 전혀 아니었다. 누구라도 중요한 개인적인 이유로 저녁 자리를 거절하게 되면 최소 일주일 정도는 냉랭한 분위기가 흘렀다. 지금의 나라면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는, 견디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거절‘이라는 자유의지조차 박탈당한 채 우리는 3년 동안 수많은 저녁을 그에게 바쳐야 했다.
K 팀장과의 지독히도 길었던 3년을 함께 견딘 팀원들과 여전히 종종 안부를 묻는다. 아직도 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유통업을 하는 K 팀장과 어쩔 수 없이 연락하며 지내고 있는 후배가 내게 말했다.
“나니 매니저님, 혹시 K 팀장님께 따로 연락은 안 하세요? 저한테 매니저님 안부를 물으시더라고요. 저는 당연히 두 분께서 연락하고 지낼 거로 생각해서 조금 당황했어요”
“당연히 안 하죠! 저는 그분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요. 혹시 또 물으시면 저 잘 지낸다고만 얘기해줘요. 3년 동안 최선을 다해 견뎠으면 됐지. 뭘 더해요. ”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 동안은 K 팀장에게서 가끔 연락이 왔다. 어디선가 내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던 모양이다. 아팠다는 이야기도 들었는지 몸은 좀 어떤지 묻곤 했다. 연락이 올 때면 시간을 한 번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라고 대답했고,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드디어 내게도 그에게서 멀어질 자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내 인생에 남기고 싶은, 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제일 먼저 내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이 바로 그였다. 내게 두 개나 되는 암이 찾아온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K 팀장으로부터 시작된 스트레스의 지분이 상당할 것으로 생각됐다.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K 팀장한테 자꾸 연락이 오는데, 연락하고 싶지 않은 내가 너무 나쁜 걸까? 함께 일하는 동안 그분은 내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티를 안 냈어. 그랬더니 내가 자기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줄 아나 봐. 난 진짜 어쩔 수 없이 상사니까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엄마는 고민하는 내게 단호하게 대답했다.
“나니야, 네 마음 불편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만나지 마. 모든 사람에게 잘하려고 할 필요 없어. 너한테 상처 주는 사람, 만나면 널 힘들게 하는 사람, 어떤 사람도 의무감에 만날 필요 없어. 널 사랑하고 널 지켜주는 사람들만 만나고 살아, 이제.”
나는 내 곁에 내가 보고 싶은 사람들만 남기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지금쯤이면 그도 이미 모든 것을 알게 됐을 거다. 어쩌면 가족처럼 생각했던 가장 사랑하는 후배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다. 드디어 그와의 인연이 끝났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훨씬 마음을 가볍게 했다. 아주 조금, 미안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