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을 만난 것이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작년 겨울 나는 일주일 동안 서울 여행을 했다.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잠깐 만나 얼굴을 볼 수 있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주말에는 시간을 낼 수 있다는 그의 말에 우리는 독립문 근처 영천시장에서 뽀얗게 우러난 도가니탕을 앞에 두고 막걸릿잔을 채웠다.
“누나,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어떻게 내가 누나한테 먼저 연락받을 수 있지?”
“일을 무슨, 그냥 보고 싶어서 연락했어. 일주일 동안 서울에 있는데 너는 한 번 보고 가야지 싶더라고.”
나와 유성은 벌써 20년 지기 친구다. 20대 중반에 둘 다 뮤지컬에 미쳐 인터넷 동호회에서 만난 사이다. 주말이면 매주 만나 몇 년을 함께 대학로와 서울 전역에 있는 공연장을 함께 다녔다.
“내가 먼저 연락 안 하면 절대 볼 수 없는 사람인데, 스스로 연락해 오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했잖아.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누나 네가 나한테 연락 해 오다니.”
그에게서 처음 들은 소리는 아니었다. 살면서 어쩌면 수도 없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가 반드시 노력해야만 이어지는 일방적인 관계. 나와 친구들, 나와 지인들의 관계는 대부분 그랬다. 왜 나는 먼저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인지. 그날 유성을 만나고 나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왔을까?’
나는 혼자 지내는 것을 꽤 즐기는 성격의 소유자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크게 관심이 있지도 않아 외로움을 타지 않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먼저 누군가의 안부를 묻거나 만나자고 했던 것이 언제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지만, 떠오르는 기억이 없는 것을 보니 아주 오래전인가 보다. 회사에 다닌 17년 동안은 더 그랬다. 일주일에 5일은 꼬박 일에 매달려 살았다. 개인적인 약속 따위를 평일에 잡는 일은 당연히 사치였다. 어느 날은 주말에도 혼자 사무실에 나왔고, 어떤 날은 아예 노트북을 집으로 들고 와 주말 내내 일했다. 어쩌다 마주하는 주말은 내게 충전의 시간이어야만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때론 즐거웠지만, 그 시간조차 나의 에너지가 실시간으로 소모되는 시간이기에 나는 집에 머물렀다. 일주일 동안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고 누워서 쉬는 것이 유일한 안식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알게 됐다. 나는 생각보다 더 친구가 없는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는 회사에 몰방하며 이미 멀어진 상태였다.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많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또 있었다. 그동안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상당 부분은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비즈니스 관계로 만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백수가 되고 처음 몇 달은 친구인 줄 알았던 그들과 열심히 시간을 보냈다. 고맙게도 그들은 종일 심심해하는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냈다. 우리는 자주 골프를 같이했고, 끝나고 나면 맛있는 음식을 함께 했다. 각자의 회사 이야기, 속해 있던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들로, 함께 하는 저녁 자리는 회사를 그만두기 전과 마찬가지로 웃음으로 꽉 찼다.
회사를 그만두고 일 년쯤 지났을까? 그들과의 자리가 묘하게 불편해지고 있었다.
“언제까지 놀 거야? 이제 일 좀 해야지?”
“일주일에 3일만 일하는 건 어때? 일하는 시간도 마음대로 해. 하루 3시간도 괜찮아.”
“이제 다시 업무로 복귀해야지. 더 놀면 감 떨어져.”
“그렇게 일에 몰두해 살았던 네가 언제까지 놀 수 있을 것 같아?”
그들은 일을 다시 시작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일을 잘했던 사람으로 기억해 주는 것은 고마웠다. 하지만 더 이상 일하지 않기로 결심한 나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과의 자리는 어쩐지 조금씩 재미가 없어졌다. 그들이 속해 있던 회사에서의 스카우트 제의를 다 거절하고 나니, 당연히 그들과의 사이는 점차 소원해졌다. 일을 잘한다고 인정받던 경쟁사 직원이 FA시장에 나와 버렸다. 함께 했던 저녁 자리의 웃음들이, 알고 보니 스카우트 제안의 예열이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친구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그저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쳐 지나갔던 시절 인연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입안이 쓰게 느껴졌다. 친구라는 단어가 이렇게 쉽게 무게를 잃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도 그 시간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내 마음이 조금은 쓸쓸했다.
얼마 되지 않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사이도 어쩐지 점차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돈이 얼마나 있길래 몇 년 동안 일을 안 하고 놀 수 있어? 라고, 분명 묻고 싶었을 수 있다. 하지만 착한 나의 친구들은 아무도 나에게 직접 묻지 않았다. 그저 나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해줬다. 우리는 가끔 만났지만, 40대 맞벌이 엄마로서, 날마다 직장과 가정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친구들에게 고요한 바다 같은 나의 일상을 나누는 것은 점차 어려워졌다. 그들의 삶에 비해 내 삶은 너무 편안해 보여 미안한 마음에 우리는 자주 만날 수 없었다.
혼자 있는 것도 괜찮아,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톡 창은 휴대전화가 고장이나 난 것처럼 종일 조용했다. 오래된 나의 연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내게 카톡 하나 보내지 않는 날이 자주 반복됐다. 이 세상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점점 외로워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결국 누군가에게 연결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특별한 존재인 적이 없었다. 모두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백수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더 외로운 일이었다.
함께 놀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독서 모임에도 나가보고, 와인 모임에도 나가봤다. 하지만 인연을 이어갈 말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려웠다. 모두 그들만의 일상이 있었고, 소속이 있었다. 그들의 눈에 나는 참 이상한 삶을 사는 이방인이었을 테다. 아무도 나에게 너는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대단히 가깝게 지낼 친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아주 가끔은, 내가 하는 생각과 고민을 나눌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