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씻으면 안됩니다

일본 수영장은 왜

by 중앙동 물방개

수영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여행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행지와 호텔을 정하면 지도앱으로 호텔에서 한 시간 내에 갈 수 있는 수영장을 찾는다. 나는 일본 소도시 여행을 많이 다니는데, 도쿄나 오사카가 아닌 작은 도시에도 제대로 갖춘 수영장이 꼭 하나씩 있다는 사실이 퍽 흥미롭다.


일본의 지역 수영장은 한국 수영장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수영 전, 비누 샤워와 머리감기가 필수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샤워하고 수영장에 들어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얼마 전 갔던 센다이에서 부모님과 함께 차에서 내린 어린이들은 래시가드를 입고 커다란 튜브를 허리에 낀 채 표를 구입했다. 성인들은 샤워실이 아닌 탈의실에서 수영복을 갈아입는다. 사실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았지, 수영복을 ‘입는 중인’ 사람은 많이 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수영 후는 어떤가. 샤워실 모습부터 차이난다. 대중목욕탕처럼 샤워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서로의 몸을 볼 수 있음은 물론, 수영 끝난 후 한바탕 수다의 장이 열리는 한국 공공 수영센터 샤워실과는 달리, 일본은 서로의 몸을 볼 수 없게 벽이나 샤워커튼으로 분리되어 있다.


샤워실 칸도 대체로 한가하다. 도쿄의 어느 수영장은 아예 샤워실 칸마다 “샤워 시 비누사용 금지”를 한글로 써 붙여 두었다. 찾아보니 도쿄 물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사용한 물을 정화해서 재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일본 내에서 공공시설을 이용해 몸을 씻는 것에 대한 사회적 금기가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수영장에선 수영만 샤워는 집에서. 한국도 샤워실에서 염색이나 빨래를 금지하고 있으나 그건 물 낭비를 막기 위해서지 샤워 자체를 금지하진 않는다. 오히려 수영장의 수질을 위해 시설에서도 수영 전 샤워를 필수로 요구하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럼 도쿄 수영장의 수질은 안 좋은가’ 하면 꼭 그러지도 않았다. 직원이 매 시간마다 수질을 확인했고 그래서인지 수영하는 데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정부의 처사에 더해 타인에게 맨몸을 잘 보이려 하지 않는 문화도 작용한다. 일본에선 대중목욕탕에 가면 장소 특성 상 맨몸을 보일 수밖에 없는데, 다들 탈의 후 욕탕에 들어가기 전까지 작은 타월로 몸의 앞부분을 가리고 이동한다. 설날 한중일이 모인 일본 호텔의 대중탕에서 몸이나 외모로는 구별이 어렵지만, 수건으로 몸을 가리냐의 여부에 따라 일본인들을 구별할 수 있었다. 한편 정말 일본인만 있는 것처럼 보였던 대중탕에선 나 역시 괜스레 그들을 따라 타올로 몸을 가리고 들어가게 되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다.


도쿄의 한 수영장은 별책부록처럼 탈의실 안에 또 작은 탈의실이 있었다. 구제 옷가게에 가면 구석에 간이로 마련된 탈의실을 떠올리면 된다. 그만큼 몸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일본인의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도쿄 수영장 안내판을 보는데 ‘문신한 사람 출입금지’가 써 있다. 나는 팔뚝에 작은 타투가 있어서 조금 걱정이 됐다. 그렇지만 금지하는 문신은 위압감을 줄 수 있는 등의 호랑이 문신이나 무늬있는 긴소매를 입은 것 같은 자글자글한 뱀 문신이 아니겠는가. 나는 멀리서는 뭐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바로 앞에 있어도 말하지 않으면 잘 모르는 터라 물 속에서 눈에 띄지 않게 수영했다.


쉬는 시간에 잠깐 물밖으로 나와서 숨을 고르는데 직원이 다가와 문신을 가려야 한다고 한다. “이건 문신이 아니라 타투다.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너도 그렇다” 시를 활용해 말하려다 이런 말이 통할 분도, 일본어 실력도 아닌 것 같아 순순히 그를 따라갔다. 무뚝뚝한 직원이 뜯어주는 살색 테이프를 기다리며 원리원칙을 잘 지키는 일본인 덕에 일본 수영인들이 수영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좋게 말해도 잘 들을텐데 험상궂은 표정으로 말하니 조금 억울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저 사람은 자기 일을 하는 것 뿐인데. 살색 테이프를 붙이고 다시 이어서 수영했다.

한참 수영 후 물 밖에 나왔을 때 팔에 붙은 테이프들은 모두 사라져있었다. 지금 물 속 어딘가에 떠다닐 내 살색 테이프를 본다면 한국인을 떠올려주시겠습니까.


keyword
이전 10화회복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