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셨습니까 수태기

연애에 권태기가 있다면 수영도 마찬가지

by 중앙동 물방개

그간 수영에 여러 변화가 있었다. 월수금 오전, 화목 저녁으로 밤에 널어둔 수영복이 채 마르기 전 다음날 아침 수영장으로 향하는 다소 기이한 일정을 두 달 정도 지속했다. 이후 주5일 저녁 수영으로 바꿨다가 지금은 주3일 저녁수영으로 안정화 된 상태다. 매일 아침 7시 눈을 번쩍 뜨고 ‘아 일어나기 싫다’를 염불하듯 외우며 찬물 세수로 얼굴의 기름기와 가지 않는 선택지를 말끔히 지워버리고 아침 수영을 한 일상이 지금은 전생처럼 아득하다.


아침 수영은 그저 좀 더 자고 싶다는 내 안의 작은 욕망과 싸우는 일이라면, 저녁 수영은 사뭇 다르다. 야구 직관(야구는 대개 평일 저녁 6시 반에 시작한다), 야근(마찬가지), 회식(자주는 아니지만 자주가 아니기에 빠질 순 없다) 등의 사유가 당당히 머릴 들고 물귀신처럼 발목을 잡기에 일주일에 한 번 겨우 수영 나가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체력이 좋고 수영을 제법(?) 잘하는 사람이라 잘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상급은 평균치 이상의 연습량이 보장돼야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며칠 간 못 가다가 오랜만에 가니 체력이 떨어졌단 걸 느끼면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빈약한 체력은 자신감도 같이 떨어뜨리고 자연히 조금만 수영해도 쉽게 지치는 느낌이 든다. 상급반에서 5-6등으로 수영하고 여기에 전혀 불만이 없으나 어쩐지 내 수영실력에 대해선 만족스럽지 않다.


급기야 한 주를 쉬고 왔더니 그새 다른 선생님으로 바뀌었다. 이번 선생님의 강습 방식은 회원별 꼼꼼한 자세 교정보다는 ‘체력 기르기’인가 보다. 수업하다 시계를 보면 수업 시작한 지 딱 20분만 지나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은 아닌지, 다들 접영으로 레인을 이동하면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벽에 붙은 디지털시계를 야속한 눈길로 바라본다.


수영 강습이 이전만큼 재밌지 않다고 느끼는 까닭은 새로운 선생님의 수업 방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적은 힘으로 더 빨리 멀리 나아가고 싶은데 자세 교정 없이 우리를 진천 선수촌의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착각한 강사에게 하드 트레이닝을 받고 있기에 흥미가 일지 않고 힘들기만 하다. 접영하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올 때 앞에 있는 회원에게 나지막이 “저 지금 집에 너무 가고 싶어요.”말했더니 “저도요..”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집에 가고 싶은 우리는 집에 가지 못하고 다시 수영장 물에 몸을 담근다. 늘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도중에 절대 가지 않고 우거지상을 한 채 수영하다 50분이 넘어서도 10분을 더 할애해 마무리 수영까지 하는 사람, 나는 대체 뭘까.


한 중년 여성 회원이 오늘은 수영 오기 귀찮았는데 전날 삶아 놓은 달걀들을 사람들이랑 나눠 먹으려고 나왔다고 한다. 혼자 계란장으로 처리(?)하는 대신, 삶은 달걀을 나눠 먹고 오늘 새로운 카페에서 커피 마시며 얘기할 생각으로 오늘 왔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수태기를 이기는 방법엔 금융 치료라고 해서 새로운 수영 용품 구입이 가장 일반적이다. 귀여운 수모, 신상 수영복을 이때다 하고 사면 그걸 착용하고 싶어서라도 수영 강습에 가게 된다. 그래서 단벌 수영복을 고집하던 분이 갑자기 새로운 수영복을 입고 나오면 혹시 수태기에 빠져있는가 같이 힘을 내시죠, 하고 속으로 말한다.


수영친구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저녁 수영 반에도 안면이 있어 인사하는 중년 여성 회원이 있는데, 샤워하고 나서 옷을 입은 모습으로 만나면 “수요일에 나오실 거죠? 안 나오시면 안돼요~” 하고 말씀하시면서 웃는다. 나도 모르게 얼레벌레 네네 그럼요! 하지만 뒤돌아보면 아 그날 야구가 있는데 싶다. 그러니까 이 분이 나보고 나오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줄어들면 개개인의 연습량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무겁고 기다란 통나무를 10명이 들어야 하는데, 4명이 빠지면 너무 무겁고 힘들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서로의 부재가 사람 수만큼의 고통으로 이어진달까.


사실 체력 부족과 이에 따른 자신감 부족이 문제라면 어쩔 수 없다. 가기 싫은 것은 가면서 이길 수 있다. 가야 체력이 늘고 체력이 늘면 힘들지 않고 그러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 여기가 문화센터가 아니라 태릉 선수촌인줄 아시는 선생님도 8월이면 떠나시고 다시 기본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오실테니 그때까지만 버텨보는 거다. 가기 싫은 걸 가면서 이겨내라니. 원래 하기 싫은 걸 미루지 않고 처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 울면서 하는 방법과 욕하면서 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징징거리며 하기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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