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며 여성 회원들과 짧게 수영 얘기 하는 게 좋다. 저마다 수영에 진심이다. 수업이 끝나면 원래는 혼자 배운 걸 복습하고 갔는데, 요즘엔 시작점에서 다른 회원이 선생님한테 물어보면 그 답변을 옆에서 같이 듣는다.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인 듯해도 알고 보면 모두가 비슷하게 고전하는 부분이라 도움이 된다.
한 회원이 말했다. “지금 선생님한테 가서 이것저것 물어봐요. 그래야 수영할 때 유심히 봤다가 나중에 알려줘요.” 지금 당장 팁을 얻지 못해도 눈도장을 찍고 물어봐 놓으면 다음에 피드백을 들을 수 있다는 것. 그 말을 듣고 선생님 옆에서 기웃거리니 나는 접영할 때 가슴을 더 눌러야 한다고 알려주신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적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도 그랬다. 많은 학생을 상대해야 하기에 모든 이를 세심하게 챙기기 어려운데, 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뭐라도 가르침을 더 주고 싶은 법이니까 많이 질문하라고 했다.
오늘은 중년 여성 회원(아까 선생님한테 눈도장 찍으라고 알려준 그분)이 내 스타트에 관해 말하셨다. 점프하고 벽을 민 뒤 바로 쭉 나가야 추진력을 얻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서 수업 후에 몇 번 연습을 더 했다. 아무래도 선생님이 봐주지 못하는 지점을 몇몇 회원은 관심 있거나 친한 회원들의 수영을 지켜봤다가 부족한 부분은 말해주기도 하고 잘하면 칭찬하기도 한다.
초급반에 있을 때, 주3회 중 하루는 자유수영을 했다. 내 바로 옆 레인은 상급반 레인이었는데 그 반의 어르신은 훈수 두는 걸 좋아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내 수영자세를 보고 알려주는 건 어찌 보면 좋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땐 다들 그 어르신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붙잡혀 훈수를 당하지 않기 위해 몇 바퀴를 쉼 없이 돌거나 잠영을 하는 등 말걸 틈을 보이지 않도록 애썼다.
왜였을까. 강사처럼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수영시간까지 할애하며 왜 코칭 했을까. 그리고 왜 초급반 회원들은 그분을 멀리했을까. 나는 조언과 오지랖의 차이를 생각해 보았다. 조언과 오지랖은 그 말을 듣는 청자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내 수영에 조언이 필요해 선생님에게 물어봤고 그가 한 말은 조언이다. 하지만 내가 조언을 듣고 싶지 않은 상태에 있는데, 조언할 만한 당위성을 부여받지 못한 회원은 아무리 상급반의 수영인이라도 그저 오지랖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듣길 원했는가 그 말을 한 사람이 그럴만한 전문성이 있는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하나 더, 어르신은 자신이 그런 가르침을 함에 따라 ‘나 제법 젊은이들에게 수영을 알려주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의 위신을 높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젊음을 찬양하고 죽음을 금기시하며 노인을 혐오하는 한국사회에서 어르신이 그렇게라도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면 기꺼이 들어드릴 수 있으나, 아무래도 50분밖에 되지 않는 자유수영 시간을 그렇게 쓰기에는 조금 아깝긴 하다.
나도 어느새 회사에서 윗사람보단 후배들이 더 많은 사람이 되었는데, 이 부분이 참 어려웠다. 어떤 부분에선 분명히 내가 알려줘야 하는 게 있고 따끔하게 주의를 줘야 할 때도 있는데 혹시나 오지라퍼나 꼰대로 보이면 어떡하나 하고. 당연히 말해야 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하려다가 그냥 ‘에이 그냥 나중에 알게 되겠지’ 하고 돌아서기도 했다. 비단 말의 내용 뿐 아니라, 나란 사람의 당위성(저 말을 당신이 왜 해? 라고 생각하지 않게 평소에 능력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과 더불어 말을 듣게 되는 사람의 상황도 중요하다. 감정의 풍랑이 격해졌을 때는 피하되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모두에게 공개된 자리가 아닌, 따로 불러서 말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타당한 말이라도 상대가 조언을 조언으로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와 나 사이의 신뢰가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아무튼 ‘나는 이런 말할 입장이고 듣기 싫으면 듣지마’라고 생각하는 게 편할 순 있지만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옆 레인의 어르신 회원’이 되고 있진 않나 생각해본다.
자유수영할 때 열심히 뺑뺑이를 돌다 보면 갑자기 먼저 말 거는 사람이 있다. “뭐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네?” “자전거 혹시 잘 타세요?” “아니 그건 왜..?” 그리고 그런 사람들 모두 30-40대 남성이다. 자신이 그런 말을 할 입장이 되고, 선한 의도를 갖고 있으니 조언할겸 말을 걸고 조언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조언과 오지랖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 차이. 제가 궁금하면 도움받을 만한 방법을 알아서 찾습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오지랖 부리지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