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당해도 놓지 못하는

by 중앙동 물방개

"이러다 내년에 수영대회 나가시는 거 아녜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수영하는 내 얼굴에서 수영장의 로프가 떠올랐는지 지인들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묻는다. 그들 중 다수는 나중에 이런 걸 물었다는 사실 조차 기억하지 못할 테고 나 역시 "에이 대회는 무슨" 하고 웃어 넘기곤 했다.


굳이 따지자면 수영대회는 내게 토성의 고리와 같았다. 존재는 알지만 이에 관해 평소 깊이 생각하진 않는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사람이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아직 그정도(?)의 실력은 아닌 것 같다. 미래에 수영선수가 될 수도 있는 어린이와는 달리 나는 나이도 있고 내 직업은 수영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수영대회의 출전이나 수상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을 시험대에 올려도 될 지 이 질문에 쉬이 답을 정하지 못했다.


문득 고등학교때 생물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일주일에 딱 한 시간 생물 수업이 있었다. 문과는 수능에서 생물 시험을 보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 시간에 수학 문제를 푸는 등 다른 과목을 공부했다. 나는 생물 수업이 흥미롭기도 했고 시험을 보지 않아 더 편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준비한 수업을 정성스럽게 내보이는 사람을 애써 무시하며 다른 걸 하는 게 더 괴롭기도 했다. 어쨌든 당연하게 생물 시간에 늘 생물 수업을, 물리 시간에는 물리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은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을 나무라지 않았고 그저 충실히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생물 수업(의 무언가) 정말 재밌지 않니?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재밌는 일이야. 근데 이걸 시험이나 평가로 점수를 매기게 되면 그때부터 재미가 없고 괴로워지지.”


이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 선생님의 저 말 만큼은 오래도록 소중하게 어루만진 청동상처럼 반질반질 윤기가 남아있다. 공부 자체가 괴로운 게 아니라, 배움 그 자체는 즐거운 것이며 평가나 시험이 우리가 배우는 재미를 축소하거나 가려왔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수영을 시험대에 올리고 그 이후에도 여전히 지금처럼 수영을 좋아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던 것 같다.


참여 의무는 없지만 대회에 참여한다면 기록과 상관없이 대회 참가에 관한 글을 쓰고, 올해 연말정산에 유의미한 도전으로 꼽을 게 분명하다. 어떤 이야기가 써질지 내 펜의 움직임을 보고 싶다.

수영대회에서 부족한 성적을 거두어도 위축되지 않는다면, 대회를 준비하면서 나를 구석 끝까지 몰아붙이지 않는다면 수영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대회로 인해 잃지 않는다면, 밑지는 장사가 아닐까. 잃을 수 있는 것은 불확실하나 얻을 수 있는 건 확실히 더 많아 보인다. 나의 분초에 국가의 명예와 코치의 월급과 가족의 흥망성쇠가 걸려 있지 않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저 글을 한 번 써보겠다는 그 마음 만으로 충분하지 않나.


재능이란 얼마나 잘하는가가 아닌 그렇게 배신당하면서 왜 놓질 못하는 가에 답이 있다고 한다. 대개는 수영 잘하는 사람을 보면 ‘와 잘한다’ 감탄하는 것으로 끝나지 어떻게 하면 잘하는지 그걸 직접 하면서 분석하고 계속 연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고 보면 나는 후자에 가깝다. 끝까지 놓지 못하는 마음, 그 과정을 계속 되풀이하는 사람은 재능이 있다는 말을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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