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멈춘 곳에서

by 중앙동 물방개

어딜 보는지 모르는 초점 없는 눈빛, 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칠게 내쉬는 숨,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은 얼굴, 레인을 구분하는 레인 줄에 자꾸만 기대는 몸.

이게 뭐냐고요? 몇 바퀴 연이어 수영한 뒤 선생님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며 서 있는 우리 반 회원들의 모습이다. 말수는 줄고 탄식이 그 자릴 대신한다. 매일 수영하는데도 왜 힘든 걸까. 아니 매일 하기 때문에 힘든 걸까.


50미터를 40초 안에 돌고 20초 동안 휴식을 취하는 연습을 10번 했다. 앞사람과 거리가 벌어지지 않게 계속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1등이 아니면 몇 바퀴 도는지 세보지도 않는다. 그냥 아무 생각 안하고 도는 게 제일 낫기 때문이다.


“선생님, 천천히 하면 몇 바퀴고 오래 할 수 있는데, 그 40/20 훈련은 죽겠어요.” 1등 회원이 토로하자 회원들은 모두 깊게 공감하며 잘 훈련된 방청객처럼 고개를 주억거렸다.

“힘들어도 하셔야 해요. 힘든 지점에서 멈추면 늘지 않아요. 모든 운동은 속된 말로 ‘뺑이’를 어느 정도 해야 실력이 늡니다.”

운동선수는 내가 환호했던 데서 영원히 늙지 않고 수영은 멈춘 곳에서 영원히 늘지 않는 법이군.


스크린샷 2025-08-20 160317.png 출처: 김민정 <읽을, 거리>


접영이 어느 정도 해결되는 듯 보였는데 복병이 있었다. 바로 잠영이다. 30초 동안 잠시 숨을 참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25미터를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잠영으로 가라고 하면 나는 대략 20미터 정도에서 수면 위로 나와 버린다. 선생님이 안 보는 줄 알고 중간에 나왔는데, 수업이 끝난 후 물어 보신다. “숨이 차서 나오는 거예요? 아니면 몸이 떠올라서 나오는 거예요?” “아..둘 다인데요..”


숨이 차고 몸이 떠오르는 것은 맞지만 사실 아니다. 진짜 이유는 ‘왠지 나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숨이 좀 찰 때쯤 '이만큼 오면 많이 왔겠지'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이 세계(물 속)와 저 세계(수면 위)를 구분 짓는 표면과 나 사이의 공간에서 불안한 마음이 인다. 수심이 1.5m 밖에 안 되는데도 잠영하다 위를 올려다보면 왜 그렇게 수면 위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지는지. 지금 나가지 않으면 누군가의 발뒤꿈치에서 떨어져 나온 밴드처럼 물속을 영원히 부유할 것 같다. 회원들 모두 잠영을 잘해서 이런 느낌이 드는 게 나뿐인가 싶었는데 얼마 전에 읽은 책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물속에서 수면을 바라보면 천장이 보이지는 않는다. 단지, 거울 같은 막이 섬뜩하게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물속에 갇혀버린 기분이 든다. 밑에서 수면을 올려다 보면 물고기들도 나오고 싶어하지 않는다. 바깥에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물이 보여주기 때문에. 이 단단한 것을 뚫고 나가면 죽는다고 생각하게끔.


<네, 수영 못합니다> 다카하시 히데미네와 히로시마대학의 나가누마 다케시 조교수의 대화


이 글을 읽고 나니 나의 불안에 과학적 근거가 있어서 조금 다행이다. 물론 그렇다고 불안한 마음이 단번에 해소되진 않겠지만 말이다. 하긴 육지 생활을 30년 넘게 했는데 수영 좀 몇 년 했다고 물속이 편해지진 않겠지. 물살이 중에서는 물 밖에 나오자마자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부림치다가 몇 초 만에 수명이 끊어지는 생물도 있다. 결국 잠영은 내 마음의 문제인데. 일단 수면 위를 보지 않기로 한다. 어제 하던 것보다 3미터만 더 가보려고 하자. 내가 멈춘 곳에서 실력도 함께 멈추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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