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예의를 갖추는 것뿐

열심히 들어주면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by 중앙동 물방개


얼마 전 필스너 우르켈을 탭으로 제공하는 가게에 갔다. 서울의 여러 브루펍을 다녀 안 가본 장소가 궁했던 우리에겐 나쁘지 않았다. 맥주를 두 잔째 주문했을 때, 매장 내 손님을 둘러보던 사장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자신이 체코에서 맥주를 배우던 시절로 함께 거슬러 올라가자고 제안(하는 듯)했다.


사장은 체코 맥주 계의 박찬호였다. 프라하를 두 번 다녀온 내게 체코 캐슬 투어 전단과 지도 등을 잔뜩 주었다. 물론 그런 선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적지 않은 맥주를 마셔보고 직접 주조까지 한 내가 타인으로부터 '내가 맥주를 배웠을 때'를 듣는 건 무척 따분했다. 이야기보따리를 내려놓기 전, 체코를 다녀온 적이 있는지 맥주를 평소에 얼마나 즐기는지 물을 순 없었을까. 사장의 그런 모습이 데자뷔처럼 느껴진 건 아마 처음 만난 상대(남자)에게서 유사한 모습을 발견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의 바른 세계 시민으로서 마주한 이에게 무안 주지 않으려고 열심히 듣는 것뿐인데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어서, 또 자신의 얘기가 재밌어서 열심히 듣는다고 착각한다. 사장이 우리에게 자꾸 "체코를 여행해보시면" 하길래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아, 저는 체코를 두 번 다녀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러고도 사장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날 우리가 마신 맥주는 모두 다섯 잔이었는데, 우리끼리 얘기를 나눈 시간보다 사장의 얘기를 들은 시간이 더 길 것이다. 자부심과 전문성으로 맥주를 관리하고 서브하면 손님도 분명 맥주만으로 알아차린다. 굳이 사장이, 쉐프가 나서서 내 역량을 피력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우리는 불자의 미소를 잃지 않고 가게를 나섰다.


"맥주 맛은 괜찮은데, 사장님이 저런 식으로 맨스플레인하고 말이 많으면 오래가진 않을 것 같아. 당신 같은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얘기를 너무 열심히 하시네" 반려인이 말했다.

"근데 그거 봤어? 문 앞에 '노키즈존'이라고 쓰여 있어. 우리 이제 저기 다시 갈 일은 없겠다. 그렇지?"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면서 시내 펍에서 수제 맥주를 마셨는데 한 남성이 홀로 유모차를 끌고 가게에 들어왔다. 그는 파인트 맥주 한 잔을 주문하고 유모차를 움직이며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옆 테이블엔 아이가 있는 두 가족이 식사했고 아이들이 놀고 떠들어도 손님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누군가를 '단지 OO할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배제하면, 당신도 언젠가 당신이 저지르지 않았지만 저지를 '것' 같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차별당해도 괜찮음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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