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거르는 일이 없는 남편이 하루를 쉬겠다고
했다. 요즘 너무 과하게 일을 한 터라 그러는 게 좋겠다며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하루를 무덤덤하게 보내고 있는데 애들이 저녁 시간에 일찌감치 집에 왔다. 생각지도 않게 이 사람은 애들에게 엄마 힘드니까 짜장면이나 시켜 먹자고 했다. 별 고민도 하지 않고 그러자고 했다. 짜장면 하면 그 외에 짬뽕과 탕수육, 서비스 만두는 기본이다. 그날 짜장에 들어간 면이 불은 것 빼고는 다 맛있었다. 우리는 다소 과식이다 싶었는데 그날따라 남편은 우리 몰래 아이스크림 두 개를
더 챙겨 먹는 걸 봤다.
새벽녘 배를 움켜쥐고 몸은 C자로 웅크린 채 몸 둘 바를 몰라했다. 평소에도 자주 체하는 사람이라 소화제를 먹고 매실차를 마시고 손을 주무르고 어깨를 두드리고 그런 정도로 마무리가
되는 줄 알았다. 결근 이틀째가 되고 토요일이 되어도 호전이 되지 않고 급기야는 나와 그이의 사이만 나빠졌다. 죽을 갖다 주면 거기 놔두라고 하고 매실차를 달라고 하면 만들어 들고 가지만 그것도 거기 두라고 하고 인상은 인상대로 쓰고 하니까 영문을 모르는 나는 그 사람이 싫어졌다. 이제는 필요하면 본인이 갖다 먹는 걸로 하자고 말하고 소파에 지쳐 누웠다. 월요일이 되자 회사에서는 수없이 많은 전화가 왔다. 배를 움켜쥐고 창백한 얼굴로 집근무를 하는 걸 보니 업무량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다못한 딸이 화요일 아침 출근길에 아빠와 함께 갔다. 병원에서 이런저런 진료를 받아보더니 입원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보호자인 나는 내일 검사 후 모레부터 면회가 가능하단다. 그래서 전담간호병동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고 난 하루 지나서야 병실에 갈 수가 있었다.
병명은 급성담낭염이고 때가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았고 그때가 퇴원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오전에 일찍 와서 3층 산책로를 걷다 보니 노란 원추리꽃이 아름답다. 8월의 뜨거운 햇살아래 아직 남아있는 꽃이 방금 샤워를 마친 어린애처럼 청초해 보인다. 남편은 아파있는데 이런 걸 보고 즐기는 게 되나 싶다. 아마도 병원생활에 지친 환자든 의사든 간호사든 보호자든 그 누구라도 보면서 쉬도록 마련된 정원이려니 짐작이 됐다.
경황이 없었던 터라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그날 봤던 노란 꽃은 맘을 뻥 뚫어 주었다. 노란 꽃은 환자에게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하지만 보호자의 입장이어 설까 그날의 노란 원추리는 밝음이었다.
뜨거운 태양과 나무그늘 아래서 하늘거리고 있을 그 꽃을 본지가 딱 일 년이 되었다. 이 사람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