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휴가를 내고 제빵 실기시험을 보러 갔다. 4시간 이상 소요된다고 해서 오후 늦게 만나기로 했다. 시험장소는 당산역으로 1922년 이후로 두 번째일찍 피었다는 벚꽃을 보러 가려던 것이다. 여의도 윤중로에 가려고여의나루역에서 5시에 만나기로 했다.
요즘 이 주일이 넘게 삐끗한 허리로 고통을 받고 있던 터라 정신줄도 정상이 아니었는지 여의나루역이 우리 집에서 한 번에 가는 곳인 줄 알고지하철을 탔건만 여의도 지나 샛강 어쩌고 뜨는 게 이상해 노선을 보니까 여의나루는 5호선으로 갈아탔어야 했는데 잘 몰랐던 것이다. 쫄쫄 굶고 시험을 치른 딸은 김밥을 사느라 차를 잘 못 탄 나랑 언 정도 보조가 맞아떨어졌다. 배고픈 사람은 다 그럴 수 있겠는 것이 평소 양도 많지 않은 사람이 김밥 두 줄과 써브웨이 빵 그리고 커피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거기다 제빵도구가 든 가방까지 짐이 한가득이다.
성급한 봄꽃 구경을 나오고 보니까 이래저래 늦어져 퇴근시간과 맞물리고 말았다. 제빵도구를 사물함에 보관하긴 했어도 허리가 아직 성치 않은 엄마가 구부정하게 걸으면서 여의도 한복판에 있으니 딸애는 나름 당황했을 것 같다. 너무 출출한 이 애는 내게 김밥 한 개만 먹을까를 묻더니 엄마의 대답도 듣기 전에 김밥 꼬다리를 하나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 허기는 멈췄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거리의 가로수는 대부분 아직 입을 꼭 다문채 싹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바삐 퇴근 중인 직장인들의 옷차림도 그리 봄냄새를 풍기지는 않고 있었다. 허리를 숙인 채 가끔은 앓는 소리를 하면서 윤중로를 물으니 700m가 남았다고 한다. 딸과의 벚꽃나들이라는 말에 성급히 나오느라 복대도 스틱도 없이 왔더니 더 이상은 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빨간 빌딩 더 현대 앞에 한그루의 벚꽃나무가 보였고, 이제 시작인 꽃들은 오후라서 인지 조는 듯 가물가물해 보였다. 우리 벚꽃 봤으니 그만 집에 가자고 했더니 너무도 배가 고픈 딸은 백화점 안에 가서 밥을 먹고 가자고 했다. 고달팠지만 쉬기도 하고 먹을 수도 있으니 거기까진 어찌해 보기로 했다.
백화점에 다다르자, 6층에 앉을자리도 많고 나무들도 멋져서 둘만의 좋은 시간을 가졌다. 백화점 측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다음의 고객이 잠시 쉬었다 갔다고 해두자. 그건 그렇고 김밥을 먹고 난 딸은 급 피곤을 느끼며 집에 가자고 했다.
입안에 김밥 있어요
올 때와는 다르게 지하철 타는 지하도를 따라오는데길이 이다지도 먼 줄은 처음 느끼는 기분이다. 멀고 먼 길을 헤매다가 겨우겨우 집에 당도하긴 했지만, 오면서 나의 체중의 삼분의 이 밖에 안 되는 딸에게 몸을 의지하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민폐인 거다.
실제로 윤종로 벚꽃구경은 꿈이었을 뿐 그냥 돌아온 사람으로서 몇 가지 느낀 게 있다.
1.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블록을 야자수 매트로 바꾼다면 보행자들의 피로감이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야자수 매트를 사는 비용과 직장인들에게 올 미래의 의료비중 무엇이 더 효율적일까.
2. 퇴근길 노약자석이 텅 비어 있던데 하루 내내 지치게 일하고 집으로 향하는 직장인들이 앉아 가다가, 실제로 노약자를 만났을 때 자리를 내드리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