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엔 봄을 두 번 맞게 되었다. 첫 번째 봄은 그냥 집에서 후다닥 달려온 봄을 앉아서 맞은 것이고 그다음에 만난 봄은찾아가는 봄이었다.
제일 먼저 온 봄은 늘 당연히 찾아오는 계절이라기보다는 긴 겨울의 지루함을 떨치기가 무섭게 훅 다가와서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 수수꽃다리가 한꺼번에 피었다가 그 뒤를 내달 리는 영산홍, 철쭉들이 내가 먼저 필걸 그랬다면서 봄 단비가 내린 다음날부터 세상을 빨갛게도 하얗게도 밝히더랬다.
그런 중에 친구들과 평창엘 갔다. 아주 오래된 사찰 상원사에 오르려니 산자락에 서서히 다가오는 봄의 향연이 서울에서의 가벼운 옷차림을 무색하게 몸을 움츠리게 했다. 잎을 조금씩 피운 나무들 사이로 졸고 있는 진달래는 아직도 새색시의 수줍음이 남아있는 듯했다. 가볍게 산사에 오르는 친구도 있고, 운전하느라 고생한 친구는 좀 헉헉대고, 그래도 난 그나마 걸을만했다. 전나무숲길 아래로 피어난 하얀 꽃무리와 간간히 피어난 보랏빛 꽃들이 조화롭다. 쥐보다 조금 큰 얼룩이 다람쥐가 우릴 보고 후다닥 달아나기도 하고, 그곳의 봄은 이제야 오는 듯하였다. 두릅나무가 오래되었는지 키가 우리보다 커서 올려다보니 손가락 반 만하게 자란 게 실하다. 누가 따려면 족히 2주는 지나야 하려는지.
1km가 채 안 되는 오르막길을 걷고 있을 때 어디서 사람들 소리가 난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순례객들이 버스 서너 대에서 내린 듯 한 무리가 올라온다. 우리는 조용한 상원사를 느끼려고 오르는 중이었으므로 옆의 다원에서 침향차를 마시면서 우리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잘 달여진 침향차
차를 다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멋스러운 하늘 구름만이 우리를 반기는 눈빛이다. 계단을 오르면서 울창한 잣나무숲을 보기도 하고 저 먼 곳의 산머리에 흐르는 바람의 기운을 즐기기도 하면서 마음 안의 기지개를 켜기도 했다. 가끔은 준비 중인 영산홍의 꽃망울을 만져보기도 하고 진보라의 싹을 띄우는 작약을 만나기도 하였다.
탑 주변으로 달린 등에는 그것을 단 사람들의 염원이 봄바람에 하늘거렸다.
탑과 등 그리고 하늘
일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엔 버드나무들이 꽃을 피워 그 털이 눈을 간지럽혔다. 혹여 결막염에라도 걸릴까 얼른 차창을 닫기도 하였다.
문막쯤 왔을 때는 수풀이 무성하여"와우 대단한 초록이네~" 하고 함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방송으로 듣기는 제주나 강릉이나 서울이나 봄이
똑 같이 오는 줄로 알았건만 이번에 다녀온 평창의 봄은 아직도 연두였다. 연두와 초록사이는 이른 봄과 봄이 한창인때의 기온차가 있다. 이러고 봄을 즐기다 보면, 어느덧 진초록의 유월이 오고,
나무 그늘이 그리워지는 여름이 오겠다 싶다. 생각지 않게 봄을 두 번 맞아본 사람으로서 갈수록 짧아지는 봄이라는 계절에 왜 그리들 남으로 북으로 꽃을 찾아 떠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 맞는 봄은 짧지만, 찾아다니는 봄이면 그래도 엿가락 늘이듯 어느 정도 덜 서운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