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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Jan 26. 2024

욕망의 바다

-류승완 감독의 <밀수> (2023)

  류승완 감독의 영화 <밀수>(2023)는 부를 향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군천이라는 가상의 바닷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군천에서 물질을 하며 해녀로 살아가는 춘자와 진숙은 마을에 들어선 화학 공장으로 인해 생업을 잃게 된다. 화학 공장이 폐수를 바닷가에 버리면서 오염된 바다에서는 더 이상 과거 같이 많은 수산물을 수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운 것이 물질뿐인 춘자와 진숙은 밀수 브로커의 제안에 따라 밀수업에 발을 들이게 된다.


  영화 <밀수>에서 바다는 일차적으로 자연적 삶의 공간이다. 영화 초반에 해녀들이 물질을 하며 생업 활동을 하는 현장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군천 바다 근처에 화학 공장이 세워지면서 곧 군천 바다는 오염되고 덕분에 해녀들은 생업을 잃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화학 공장은 1970년대 한국 사회의 산업화를 상징한다. 실제 197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산업화와 도시화는 한국 사회의 경제적 발전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자연의 훼손과 그곳에서 생업 활동을 하던 사람들의 일자리를 상실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춘자와 진숙은 1970년대 산업화의 피해자라고 하겠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한 해외 국가들과의 해외 무역 활동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고, 그로 인해 해외의 상품들이 관세를 물지 않고 들어오는 밀수업도 성행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춘자와 진숙이 해녀로서 일자리를 잃은 것과 그녀들이 밀수업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당시 한국 사회의 구조와 변동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에서 개인의 선택은 우연적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당시 한국 사회의 구조와 변동으로부터 춘자와 진숙의 선택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두 주인공의 운명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증상이다. 


  영화 <밀수>는 바로 산업화로 인해 삶의 현장에서 떠밀려 간 사람들이 밀수라는 범죄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 그리하여 부를 향한 욕망이 서로를 이용하는 배신으로 나아가게 되는 상황을 그린다. 이러한 상황이 1970년대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지금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산업화로 인해 오염된 바다가 밀수가 벌어지는 주요 공간이라는 점에서 바다는 자본을 향한 인간의 오염된 욕망이 표출되는 공간이다. 이런 점에서 바다라는 공간은 인간 욕망의 환유라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산업화라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변동 속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영화 <밀수>는 진숙의 아버지를 통해 드라마의 초반에 드러낸다. 상황과 조건은 인간을 얼마든지 악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안에서도 넘어서는 안 되는 어떤 한계가 있으며,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누구의 탓도 아닌 문제에 직면한 주체의 책임이라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영화 <밀수>는 윤리적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에서 바다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면, 그 위 떠다니는 배는 욕망의 바다를 표류하는 인간을 의미할 것이다. 영화에서 바다의 표면은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밑에는 상어가 헤엄치고 사람의 다리를 물어뜯는 자비 없는 무심함을 지녔다. 그래서 언제고 바다 밑을 헤엄치더라도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바다 위로 올라와야 한다. 바다 위에 올라와 길게 내뱉는 긴 호흡이 없으면 삶은 죽음 속으로 잠겨버린다. 영화 속에서 죽은 자들이 대부분 바다에 버려지고 사라지는 것처럼 밀수품이 상징하는 가라앉은 욕망을 쫓으면 인간은 언젠가 그것과 함께 파멸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밀수>에서 배우 김혜수의 연기력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사실 조춘자 역을 연기한 김혜수가 다했다고 보아도 된다. 영화 <타짜>의 정 마담이 갑자기 기지와 의리의 여장부로 변신한다면 영화 속 조춘자가 되지 않을까? 남성을 유혹하는 팜므파탈이면서도, 기지를 발휘해 권력과 폭력으로 무장한 남성들에게 통쾌하게 복수한다는 점에서 지적이면서도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구현했다. 과연 조춘자를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관객에게 이런 감정을 줄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그리고 조인성이라는 배우를 적절히 활용하고 과감하게 덜어낼 줄도 아는 감독의 판단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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