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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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연은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했다. 충분히 깊이 내려가면, 자신이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고, 또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하는 것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수심 20미터는 내려가야 했다. 승연은 약 5년 전부터 프리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계기는 우연했다.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선가 유명한 여자 프리다이버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녀는 전직 러시아 수영 국가대표였다. 인터뷰에서 한 말은 뻔했다. 프리 다이빙을 하면 자연의 위대함이며 나와 자연이 하나임을 느낄 수 있다는 둥. 하지만 승연은 바닷속의 거대한, 새파란 구멍 속으로 다이빙하는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집트 다합에 있는 블루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승연은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모두 털어 겨울방학 때 필리핀으로 날아갔다.
일반적인 스쿠버 다이빙과는 달리, 프리 다이빙은 산소통을 사용하지 않고, 숨을 참고 잠수했다가 다시 올라온다. 당연히 위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곳도 그리 많지 않다. 본인이 대담하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승연은, 자신이 프리다이빙을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 구청 스포츠 센터에서 수영을 1년 배운 것이 다였다. 그래서 승연은 우선 스쿠버 다이빙을 배워보기로 했다. 필리핀에서는 스쿠버 다이빙을 한국보다 더 싸고, 더 빠르게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에게 들었다.
세부의 스쿠버 다이빙 학원은 대부분의 강사들이 한국인이었다. 원장도 한국인이었고, 홈페이지도 한국어로 되어 있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수강생들도 한국인들이었다. 승연은 4일간 이어지는 코스를 이수하고 오픈워터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무사히 딸 수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은 체계적이었고, 강사들은 친절했다. 마지막 날에는 직접 바다에 나가서 강사들과 함께 수심 10미터까지 잠수했다. 여러 색의 물고기들이 승연의 주위를 헤엄쳐 다녔다. 같이 교육받은 사람들과 함께 수중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날 저녁에, 학원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의 부엌에서 무사 이수를 축하하는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연과 동년배였다. 첫 바다에서의 다이빙에 대한 감흥에 아직 푹 빠져있었던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셨고, 금방 다들 취해서는 절친이라도 된 것 마냥 어깨동무를 하고 그룹 셀카를 찍고 노래를 불러댔다.
승연이 혜정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이 파티에서였다. 목쯤에서 끊어지는, 밝은 갈색의 짧은 쇼트커트 머리, 보통 키에 약간 마르지만 근육이 있는 몸. 새하얀 얼굴 위에 오밀조밀 모인 눈 코 입은 언제나 약간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파티에서도 혜정은 사람들과는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발코니에 기대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엇, 혜정 누나, 누나도 영문학과랬죠?” 승연과 서로의 전공에 대하여 묻고 답하던 남자아이가 고개를 돌려서 혜정을 불렀다. 혜정은 별 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사람들이 모여 앉아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가왔다.
“여기 누구 또 영문과인 사람 있어?”
“아, 저요” 혜정은 고개를 돌려 승연을 바라보았다. 처음으로 혜정의 얼굴에서 뚱함이 사라졌다.
“ 이름이... 승연 씨죠? 저는 작년에 졸업했지만, 쓸모 1도 없는 전공을 가진 불쌍한 사람들끼리 건배!" 연과 혜정의 맥주병이 부딪히며 쨍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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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간 뒤, 승연과 혜정은 종종 만났다. 커피를 마시고, 곱창전골을 먹고, 맥주와 소주와 와인을 마셨다. 둘은 금방 친해졌다.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화제는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한 명의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 영문과 이외에도 무궁무진했다. 대학은 달랐지만 교수들은 하나같이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얼간이들이었다. 전 남친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처음에는 욕이 나왔지만 나중에는 언제나 통쾌한 분위기로 파했다. 좋아하는 아이슬란드 뮤지션의 내한 공연에 같이 가기도 했다. 주로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승연이었고, 혜정은 듣거나, 대답을 하거나, 가끔은 엉뚱한 방향으로 이야기의 물길을 트는 말들을 던졌다.
승연과 혜정은 프리다이빙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승연과 달리 혜정은 프리다이빙에 대해 별 다른 욕심이 없었다.
“ 프리 다이빙은 너무 무섭지 않아? 나는 사실 스쿠버 다이빙 배운 것만 생각해도 내가 대단해. 오픈워터 자격증을 따긴 했지만, 나보다 더 경험 많은 사람이랑 함께 아니면 스쿠버도 다시 하지 못할 거야.” 하고 혜정이 말했다. 승연도 혜정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막상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고 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었고 또 충분히 무서웠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스쿠버다이빙으로도 블루홀에서 다이빙할 수 있었다. 둘은 우선 이년 뒤에 다시 필리핀으로 함께 가서, 어드밴스드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승연은 한 미국의 단편 소설 작가의 작품들이 그 이후의 미국 문학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로 영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식 날에는 올라오신 부모님들과 아직 대학교 1학년인 남동생과 함께 고깃집에 갔다. 승연이 고3 때 사업이 쫄딱 망하는 바람에 부모님은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다. 끌어다 썼던 사채를 이리저리 융통하여 갚는 데에 꼬박 4년이 걸렸다. 지역의 부농이었던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이제는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며 블루베리를 재배하게 되어 사정은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제일 중요한 고3 때 승연을 이모네 집에 식객으로 들여놓고는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거의 하지 못했다는 것에,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도 단 한 번도 딸의 등록금을 내주지 못했다는 것에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승연의 대학생활은 무척 힘들었다. 이른바 대학교의 낭만 따위는 즐길 여유가 없었다. 전액 장학금을 받는 것 만이 방법이었고, 출석, 리포트, 조별과제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실제로 단 한 학기를 빼고는 09학번 영문과의 전액 장학금은 언제나 승연이 받았다. 물론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는 언제나 한 두 개의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이 모든 고생이 그래도 쓸모가 아예 없지는 않아서, 승연의 부모님은 이제 자신들은 딸의 인생에 참견을 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고, 자신들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도 소극적이었다. 전공을 영문과로 정할 때도 아무 이견이 없었고, 이제 졸업을 하게 된 마당에도 취업이니 진학이니, 앞으로의 진로니 하는 것들은 대화의 화제로 오르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혼자 잘 해왔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앞으로도 잘하겠거니 하는 생각인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염치가 없어서 꺼내지 못하는 것인지 승연을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입대를 앞두고 있는 승연의 동생을 대하는 부모님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터울이 승연과 4살 차이가 나는 동생은 피시방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걸로는 자신의 용돈으로도 모자랐다. 동생의 학비는 사정이 좀 나아진 부모님이 내주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부모님은 동생의 인생에는 훈수를 두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승연의 졸업을 축하하는 자리였지만 화제는 어느 틈에 승연이 아닌 동생의 군생활과 진로, 그리고 연애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다. 승연에게는 자신의 동생이 불쌍해 보였다. 부모님이 내주는 학비로 공부하면서, 부모님이 이끄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앞으로의 동생의 모습이 뻔하게 보였다. 아빠, 하지만 동생은 머리가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서, 아빠가 원하던 정치인의 꿈을 대신 이루어 주지는 못할 거예요. 하고 승연은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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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연은 작은 무역회사에 그리 어렵지 않게 취직할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 특히 필리핀 쪽의 냉동 해산물을 사다가 한국의 대형 급식 업체 등에 파는 무역을 하는 회사였다. 동남아시아의 냉동 새우의 껍질을 까는 일은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의 몫이라는 탐사보도를 뉴욕 타임스에서 읽었던 것을 승연은 기억했다. 이제 승연은 바로 그런 냉동 새우 관련 홍보 자료와 세관과 방역을 통과하기 위한 문서를 영어로 작성하고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회사의 사람들은 나쁘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는 사장은 같은 회사의 과장이랑 바람이 난 상태였으나,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이상 승연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다만 가끔, 메일로 받는 자료들 속 필리핀의 바다 사진을 보면서, 얼른 혜정과 약속한 2년이 지나 다시 세부로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러 가게 되기를 바랐다.
혜정의 결혼 소식은 승연에게는 뜻밖이었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심지어 자기 자신보다도 제일 늦게 결혼을 할 것 같은 혜정이었다. 이자까야에서 모듬 사시미와 사케를 사이에 두고 혜정은 자신도 어안이 벙벙하다면서 말했다. “그러게, 내가 청첩장을 돌리는 날이 다 오다니. 이 사람은 그런데 달라. 내가 지금껏 만났던 그런 남자들이 아니야. 같이 있으면, 내가 나로서 온전해지는 느낌이 들어. 사랑이라는 것에 나는 지금까지 큰 가치를 두지 않고 살아왔고, 지금 내가 그 사람과 서로 사랑을 하고 있는 건지도 확신은 없어. 하지만 이 사람이 아니라면 나는 평생 결혼할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사람도 그렇대. 그래서 한번 해보려고” 말을 마치고 혜정은 씨익 웃었다. 놀랍게도 혜정의 얼굴에서는 늘 있었던 뚱한 표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승연은 같이 어드밴스드 스쿠버 다이빙 코스를 들으러 세부에 다시 가기로 했었던 약속을 떠올렸으나, 굳이 화제로 삼지 않았다. 그 대신 물었다. “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요?”
“아, 세부로 가려고. 이 사람 스쿠버 다이빙해 본 적이 없대. 같이 다시 처음부터 배워볼까 하고.” 그러고 나서 혜정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 아! 다음에 우리 셋이서 다이빙하러 가자. 세부도 좋고, 보홀도 좋고, 어디든 일정만 맞출 수 있다면”
“좋아요. 맞출 수 있다면” 대답하고 승연은 웃어 보였다. 하지만 혜정과 같이 바다에 들어가는 날은 앞으로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혜정의 남편을 승연은 결혼식에서 처음 보았다. 선한 얼굴의 선이 가늘지만 올곧은 느낌이 드는 남자였다. 이 사람이 혜정 언니가 지금까지 만났던 그런 남자들과는 다른 사람이구나.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그런 남자들과도 다른 사람일까? 다른 모든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의미 없는 여분의 것들이 범람하였지만, 그래도 혜정은 행복해 보였다. 승연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혜정의 뚱한 표정을 보고 싶었지만, 어쩌면 그런 날이 오지 않는 것이 혜정에게는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해 여름에 승연은, 1년 차인데 휴가를 쓴다는 눈치에도 꿋꿋하게 짧은 여름휴가를 내 속초에서 2박 3일짜리 프리 다이빙 비기너 코스를 들었다. 스쿠버 다이빙을 더 배우는 것에는 왠지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애초에 어드벤스드 스쿠버 다이빙 교육을 받기로 한 것도,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혜정 때문에 그렇게 결정된 것이었다. 프리다이빙은 스쿠버 다이빙보다 더 위험한 만큼 모든 것에 있어서 더 정확하고 실수가 없어야 했다. 호흡법과 이퀄라이징 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조금 까다로웠지만, 처음에 막연히 걱정했던 것보다는 할 만했다. 산소 탱크 없이 바다에 들어가는 것도 생각보다는 무섭지 않았다. 몸이 가벼운 만큼 승연은 더 가볍게 가라앉을 수 있었다. 동해의 바다는 세부보다는 더 춥고 더 어두웠지만, 그것도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다음 해 여름에는 같은 곳에서 어드밴스드 코스를 들었다. 3박 4일의 교육 이후에 어드벤스드 프리 다이버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승연은 잠수복, 스노클, 롱핀 같은 장비들을 샀다. 주말이면 분당 근처에 있는 깊이 15M의 잠수풀에서 프리다이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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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연은 하면 할수록 프리다이빙에 빠져들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2인 1조로 팀을 이루어 다이빙해야 한다는 규정이 제일 거슬렸다. 다이빙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은 대체로 좋았지만, 그래도 함께 바다에 들어가고 싶은 만큼은 아니었다. 다이빙하는 순간에 바다는 온전히 자기 자신만의 것이어야 했다. 물속에서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지만, 그럼에도 다이버들은 항상 물속에서 필요 이상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기를 원했다. 손짓, 발짓, 몸짓. 친밀함을 드러내는 사회적 효용을 가진 동작들. 이 장엄한 순간에, 너와 내가 함께 있다는 감흥. 아니. 이 순간의 나에게는 네가 필요 없어. 물속에서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승연은 또박또박 그렇게 말했었을 것이다. 잠수풀에서, 속초의 다이빙 스쿨에서, 그리고 온라인 동호회에서,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다이버들 중에서, 승연은 준후와 짝을 이뤄서 다이빙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얼굴로 봐서는 자신보다 조금 어린것 같아 보였지만 서로 나이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도 없었다.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다. 다이빙할 때에도, 안전을 위해 서로의 상태를 체크하는 동작들 외에는 서로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물 밖에서 만날 때에는 주로 다이빙의 기술적 문제나, 서로 가본 다이빙 포인트, 유명한 프리 다이버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승연은 자신을 프리 다이빙의 세계로 이끌어준 러시아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준후는 잠 짓 놀라더니, 그 다이버가 작년에 죽었다는 소식을 말해주었다. 클러빙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이비자 섬 근처 바다에서, 수심이 겨우 15미터 남짓한 곳으로 홀로 다이빙을 했다가 올라오지 않았다고 했다. 수많은 다이버들과 구조대들이 출동하여 근처 해역을 뒤졌지만, 결국 실종된 다이버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승연은 생각보다 놀라지 않는 자기 자신에 더 놀랐다. 사실 다른 식으로, 요컨대 암에 걸려서 병상에서 죽는 그 사람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그녀는 자신에게 걸맞은 식으로 죽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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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지 3년 반쯤 되었을 때, 승연이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도산했다. 수입해서 공급했던 냉동 깐 새우에 중금속, 특히 납이 과다 검출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미 3개월가량 서울시의 중 고등학교 급식 식재료로 납품된 뒤였다. 조사가 시작되면서 그 사실을 이미 사장과 몇몇 회사 임원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고소와 고발, 수사가 이어지고, 사장은 바람을 피웠던 과장과 함께 며칠 잠적했다가 지방의 어느 모텔에서 한 언론사의 기자에 의해 사진이 찍혔다. 사장은 구속되고, 승연을 비롯한 직원들은 퇴직금을 절반 정도밖에 받지 못한 상태로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직원들은 함께 모여 고용노동부에 구제 신청을 하자, 못 받은 퇴직금을 받기 위한 민사 소송을 하자 하는 식의 공동 대응 안을 논의했다. 처음에는 승연도 그 모임에 나갔지만, 두 번째 모임부터는 참여하지 않았다. 월급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일의 양도, 회사의 사람들도 그리 나쁘지 않은 회사였기 때문에 승연은 아쉬웠다. 하지만 오히려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퇴직금과 저축으로 4000만 원가량의 돈을 모았다. 이제 승연은 이집트 다함으로 갈 것이었다. 그곳은 전 세계의 다이버들이 몰려드는 성지였다. 다이빙 교육기관도 많았고, 그들 중 한 곳은 예전에 우연히 안면을 튼 한국인 다이버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다이빙 강사로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는 바닷속에서 보내는 것이 승연의 계획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작년에 프리다이빙 마스터 자격증까지 딴 것이다. 원래는 회사에서 5년을 채운 뒤에 다함으로 갈 생각이었으나 이렇게 된 이상 더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재작년에 전역한 동생은 어느덧 대학교 졸업식을 치렀다. 건실한 중견 건설회사의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어서 부모님들은 기분이 좋았다. 횟집에서 참치회를 시켜 놓고 그들은 아들에게 그다음 계획을 물어봤다. 승연의 동생은 막힘없이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물론 처음에는 정직원이 돼야 할 것이었고, 그다음에는 열심히 일을 하며 상사들의 눈에 든 다음에, 이른 타이밍에 해외지사에 파견을 나가서 해외 경험을 쌓는다. 돌아오고 나서 너무 늦기 전에 결혼을 할 것이며, 자신의 아내가 될 사람은 무엇보다 … 그다음 순서로 승연은 부모님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서른이 넘은 딸이 갑자기 이집트로 가서 다이빙 강사를 하며 평생을 살 것이라는 말을 하니 승연의 부모님은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이번에는 엄마 아빠 모두, 명확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러나 승연은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부모님도 딸을 설득하기를 포기했다. 구김살 없이 자란 동생은 승연의 결정을 부러워하거나, 혹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정직원이 되어 돈을 잘 벌기 시작하면, 이집트로 누나를 보러 가겠다고 했다. 어쩌면 이집트로 파견을 나갈 수도 있다고 했다. 티는 잘 내지 않았지만 승연은 동생을 아꼈다. 하지만 동생이 파견 나갈 나라가 이집트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동생과 부모님과 식사를 마친 다음에 승연은 택시를 타고 분당으로 내려왔다. 금요일 이른 저녁의 잠수풀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승연은 오랜만에 혼자서 물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차가운 물이 사방에서 자신의 몸을 누르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웅웅 거리는 소리가 귓속을 맴도는 것을 들으며, 꾹 눌러 참은 숨이 한계까지 차오를 때까지 몇 번이고 잠수했다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물속에서는 눈을 감았다.
소리는 점점 희미해지다가 어느새 더는 들리지 않고, 이제는 차가움도 수압도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감각들이 하나로 뭉쳐져서, 승연 자신이 커다란 하나의 감각 수용 기관이 된 것 만 같다. 그 기관은 깊고 먼 곳에서부터 파동처럼 전해져 오는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느낀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기에 이 곳은 충분히 깊지 않았고 승연의 숨도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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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으로 향하는 길에서 승연은 준후에게 보낼 메시지를 적었다. 혜정에게도 보낼 메시지를 적어보았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았다. 중동의 어느 나라에서 환승하는 것까지 포함하여 12시간이면 자신은 이집트의 카이로에 내릴 것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버스로 4시간이면 다합에 닿는다. 다합에는 미리 연락한 한인 다이빙스쿨의 스탭이 나와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 깊은 바닷속에 차갑고 어두운 물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