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6.28
1
손님이 오지 않는 호텔이 있다. 데스크에는 깔끔한 남색 제복을 차려입은 직원이 매일 서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데스크 안쪽 벽에는 어림잡아 50개는 넉넉히 되어 보이는 열쇠들이 가지런히 제자리에 걸려있다. 아무 전화도 아무 팩스도 오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씩 연결이 살아있는지를 확인하는 전화가 전화국에서 올뿐이다. 우체부가 손님의 편지를 전달하러 오는 일도 없다.
그리 크진 않지만 구색을 제대로 갖춰놓은 호텔의 정원에서는 정원사가 관목들을 손질한다.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으면 식물들에게 직접 물을 준다. 계절에 맞춰서 다른 종류의 꽃을 심는다. 자꾸 굴을 파며 다가오는 두더지를 쫓는다. 호텔의 중정에 있는 커다란 자두나무의 자두를 제 때 따는 것이 지금 이 시즌의 중요한 일이다. 시기를 놓쳐서 자두가 떨어지게 되면 먹지 못하게 되는 것은 물론 바닥의 석재 타일에 검붉은 자국을 남긴다. 자국을 지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3층 규모의 높지 않은 호텔 건물이지만, 손님들의 무거운 짐들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근처에는 제복과 같은 재질, 같은 색으로 만들어진 모자를 쓴,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벨보이가 있다. 이 호텔에 취직한 이후로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점심 도시락보다 더 두꺼운 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팁을 받아본 적 역시 당연히 한 번도 없다.
1층의 한 편에는 레스토랑이 있다. 모든 것이 은색으로 반짝이는 주방에는 원래대로라면 10명가량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어야 하지만 지금은 오직 총주방장 한 명밖에 없다. 총주방장은 모든 호텔 직원 중에서 제일 바쁘다. 손님이 없을지라도 직원들을 위한 식사는 계속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아래에 직원 한 명도 없이 주방을 혼자서 꾸려가야 한다는 것에 불만이었다. 이제는 하루에 세 끼, 10인분 정도의 요리를 매일 혼자 준비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약간의 보너스도 매달 받게 되었다) 오늘의 점심으로 그는 감자 크뇌들을 곁들인 새끼 칠면조 요리를, 저녁으로는 지중해식 해산물 스튜를 요리할 것이다.
복도와 객실을 청소하고, 이불을 갈고 수건을 치우는 등등의 일을 맡은 사람은 모두 5명이었다. 호텔에서 일하는 열 명의 직원들이 모두 직원 숙소에서 묵고 있었으나, 자신의 방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치워야 하기 때문에 이 네 명 역시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틀에 한 번씩 복도의 카펫을 청소하고 대리석 계단과 난간의 핸드레일을 닦았다. 나머지 시간 동안에 이 다섯 명은 주로 호텔의 제일 넓은 방에 모여서 포커를 치며 놀았다. 비록 손님은 없었으나 그들은 자신의 포커 회동을 지배인에게는 비밀로 부쳤다.
지배인은 사실 매일 저녁이면 호텔 3층 서쪽 끝, 숙박료가 제일 비싼 방에서 벌어지는 포커판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여러 번 그 게임에 참여하여 자신의 포커 실력을 뽐내고 싶었으나, 그래도 지배인으로서 지켜야 할 권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대신 매일 저녁 자신의 수염을 온갖 도구를 사용하여 최고의 상태로 다듬는 것에서 자신만의 재미를 찾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수염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직원들이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자신을 미스터 달리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그 밖에 그는 자신의 셔츠를 칼같이 날이 선 상태로 다림질하는 법이나 구두끈을 모두 15개의 다른 스타일로 묶는 법, 그리고 나무로 된 가구들에 치명적인 흰개미를 완벽하게 퇴치하는 법 등을 완벽하게 알 수 있었다. 수염을 다듬는 것 외에는 모두 자신이 이 호텔의 지배인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하나도 알지 못했고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것들이다.
2
어두워진 저녁, 나무로 된 두꺼운 호텔의 문이 무게에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열리며 손님이 들어온다. 한 손에는 작은 기내형 캐리어의 손잡이가, 다른 한쪽의 어깨에는 적갈색 가죽으로 된 핸드백이 있다. 초록색의 피케셔츠에, 남색의 리넨으로 된 통이 넓은 바지. 캐주얼하지만 신경 써서 골라 입은 것 같은 세련된 패션이다. 왼쪽 손목에는 금속으로 된 체인이 달린 시계가, 오른쪽에는 두세 개의 가죽끈이 얽혀있는 팔지가 달려있다. 손님은 카펫이 깔린 로비를 성큼성큼 걸어서, 바로 데스크로 걸어온다.
손님을 처음 본 사람은 벨보이였다. 그는 깜짝 놀라 바로 기대고 있던 난간에서 손을 떼고 반듯하게 선 다음에 모자를 고쳐 썼다. 그다음에는 데스크에 서 있던 직원이 손님을 보았다. 손님이 바로 데스크 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에 직원은 놀랄 겨를도 없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오래전 교육받았던 손님 응대에 대한 절차 덕분에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적당한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며칠 묵었다 가고 싶은데요.” 손님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혼자이신가요?” 손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틀을 묵어보시고 나서 원하시면 더 연장하는 걸로 할까요?”
“이틀 뒤에 방이 없다거나 하진 않을까요?” 손님은 꼼꼼한 사람이었다.
데스크의 직원은 자신의 뒤, 수납함의 모든 칸칸에 걸려있는 방 열쇠를 보여주며 어깨를 으쓱했다.
“저희 호텔은 규모가 크고, 지금은 비수기라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해 주세요”
“어떤 룸이 괜찮을까요?”
“그건 알아서 해주세요” 손님은 중요하지 않은 결정을 직접 내리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돈도 부족하지 않은 사람일 것이었다.
데스크의 직원은 잠깐 고민했다. 손님에게 어떤 방을 내어주어야 할까. 이 호텔의 방은 3층 서쪽 끝의 제일 큰 방을 제외하면 1인실, 2인실, 가족실 세 종류, 또 각각 이코노미, 일반, 특실 3등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몇 년 만에 받은 첫 손님이니까, 특별 업그레이드로 일반실 가격에 특실 1인실을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직원은 숫자 309가 새겨진 열쇠를 꺼내서 손님에게 주고, 호텔의 서비스와 시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귀띔해주었다. 손님이 미소를 남기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고 나서야 직원은 자신이 첫 손님의 출현에 얼마나 긴장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긴장 때문에 너무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1인 특실은 309호가 아니라 306호였다. 309호는 서쪽 끝의, 거실과 방 세 개와 욕조 두 개로 구성된 이 호텔에서 제일 큰 방이었다. 손님에게 열쇠를 잘못 건네준 것이었다. 저기요, 하고 직원이 외쳤을 때에는 이미 손님과 벨보이를 태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나서였다.
3
지배인은 서쪽 끝의 309호, 이 호텔의 제일 크고 호화로운 의 문 앞에 서서, 한쪽 손으로 수염의 끝을 잡아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오늘이야말로 포커 현장을 급습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하고 있었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다음에, 우선 처음에는 잠 짓 놀란 것처럼 굴고, 그다음에는 손님을 위해 준비된 방에서 포커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실망을 표시하고, 마지막으로는 쳐진 분위기를 다시 업시키기 위해서 함께 포커를 치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자신의 권위를 지키고 포커 게임에도 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 틈 사이로 가끔은 돈을 많이 딴 사람의 환호가, 가끔은 아쉽게 잃은 사람의 항의가 들려왔다. 그는 자신의 드라마틱한 등장을 위해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지금이다 싶은 순간에 갑자기 복도의 저편에서 팅, 하는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처음 보는 사람 한 명과 벨보이가 내렸다. 지배인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호텔에 손님이 온 것이다. 예전에 다른 호텔에서 일했을 때에는 매일 수십수백을 보았던 지배인이지만, 이 곳으로 이직한 이후로는 처음 보는 손님이었다. 지배인은 309호의 문 앞에서 엉거주춤 서있었던 자세를 가다듬고 얼른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오랜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서비스직의 미소를 띠며 손님을 향해 다가갔다. 손님과 벨보이도 지배인 쪽을 향해 다가왔다.
“환영합니다, 마담” 충분히 가까워진 거리에서 지배인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므슈” 손님의 프랑스어 발음은 완벽했다. 지배인은 손님이 배정받은 방이 306호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첫 손님이라고 데스크에서 특실로 업그레이드 해준 모양이었다. 센스 있는 판단이었다. 3층의 왼쪽 라인에서 1인실은 오직 306호 하나뿐이었다. 지배인은 306호실의 문 앞에 섰다. 지배인으로서 첫 손님에게 건네어야 할 환영인사를 고민하면서. 하지만 손님과 벨보이는 지배인을 스쳐서 계속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지배인은 당황했다. 306호가 아니면 어디에 묵는 것인가? 혼자 온 손님이 아닌가? 하지만 자신의 경험은, 옷차림과 분위기, 그리고 짐의 크기로 봤을 때 이 손님이 동행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배인은 벨보이에게 미간이 잔뜩 주름 잡힌 눈으로 무언의 질문을 했으나 눈치가 없는 벨보이는 지배인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손님은 복도의 끝, 309호의 문 앞에 멈춰 섰다. 설마 하고 지배인이 생각하는 사이에 손님은 우아한 몸짓으로, 세상의 모든 호텔 방 문은 모두 다 열어봤다는 듯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열쇠 구멍에 열쇠를 밀어 넣고 문고리를 돌려서 문을 열었다.
4
문이 열렸을 때는 오늘의 여섯 번째 게임이 막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포커를 치던 다섯 명의 사람들은 화려하게 꾸며진 거실 한편에 놓여있던 테이블에 둘러앉아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칩들과 카드들이 어지럽게 배치되어 있었다. 가운데에 많은 양의 칩들이 모여있는 것으로 봐서는 판돈이 커진 판이었다. 모든 카드들이 나눠지고, 모두가 돈을 걸었다. 이제 막 카드를 오픈하기만 하면 되는 순간이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얼어버렸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두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열린 문 뒤에는 벨보이와 손님이, 그리고 그 뒤에는 지배인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모두들 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얼어있었다. 하지만 곧 테이블에 앉아있던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카드를 테이블 위에 뿌리며 갑자기 외쳤다.
“에라 모르겠다! 오픈! 오픈! 풀하우스!”
그러나 그가 칩을 모두 자기 쪽으로 가져가려고 하자 다른 사람이 또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카드를 테이블 위에 뿌리며 외쳤다.
“ 멈춰! 나는 스트레이트 플러쉬야!”
지배인은 창백한 얼굴로 뒷목을 잡았다. 자신의 직장은 이제 날아간 것이다. 이 손님은 이제 호텔에 공식 항의를 할 것이다. 스태프들이 호텔 객실에서 포커를 치다니,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호텔에서는 자신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었다. 손님 없는 호텔의 지배인이라니, 이렇게 하는 일 없이 편하게 돈을 버는 일을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으리라. 자신은 이제 다시, 뉴욕이나 런던 같은 대도시의 어느 호텔에서, 온갖 종류의 손님들과 온갖 종류의 불평들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만사에 시큰둥하고 열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직원들을 혼내고 다독이다가 스트레스성 위궤양을 얻고는 결국에는 그것 때문에 죽어갈 것만 같았다. 평생 빌어먹을 포커 따위는 손도 대지 않으리라! 그 사이에도 스트레스 플러쉬를 터트린 사람은 칩을 주섬주섬 자기 쪽으로 옮겨 담고 있었다.
“잠시 스탑” 하며 손님이 테이블 앞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목소리는 그 소란 틈에도 모두에게 선명히 들릴 정도로 크고 명확했다.
"혹시 이번에 게임을 하면서 하트 3 본 적 있나요?"
포커를 치던 네 명의 사람들이 서로의 눈을 살펴봤다. 그중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 나 저저번 판에 하트 3이 없어서 풀하우스를 못 만들었는데"
그러자 곧바로 다른 사람이 말했다. “하트 3만 들어왔으면 나도 스트레이트였어"
나머지 세 사람도 하트 3을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다섯 사람은 테이블 위에 놓인 카드를 헤집으며 하트 3을 찾았지만, 그 카드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언제부터 없었던 거야?”
“누가 장난이라도 친 건가?”
사람들은 모두 웅성거렸다. 정원에서 관목을 토끼 모양으로 다듬고 있던 정원사도, 내일 아침을 위한 크루아상 반죽을 방금 끝낸 총주방장도 모두 손님이 왔다는 이야기를 309호 앞에 모여있었다. 방을 잘못 내어준 데스크의 직원도 와 있었다.
“보아하니 오늘 지금까지의 게임은 모두 무효인 것 같네요” 하고 손님이 자신의 품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내밀었다. 모두의 눈이 손님의 손끝으로 향했다. 웅성거림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하트 3이었다.
"엘리베이터에 떨어져 있더군요." 손님은 말을 이었다. "들고 올라오다 떨어진 것 같은데요."
테이블에 앉아서 포커를 치던 다섯 중 네 명이 나머지 한 명을 째려보았다. 카드와 칩을 보관하던 그 한 명이 자기의 숙소에서 이곳 309호로 오다가 중간에 한 장을 떨어트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방금 스트레이트 플러쉬로 대박을 터트린 그 사람이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게임은 전부 무효가 될터였다. 자신의 실수로 엄청나게 큰돈을 딸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사람은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자, 자, 손님.. 잠깐만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하고 정신을 차린 지배인이 입구를 지나 방 안으로 들어섰다. "자네들, 얼른 챙겨서 나가지 못하겠나! 이게 뭐하는 짓인가!" 어떻게든 지배인은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배인의 호통에 다시 한번 상황을 지각한 다섯 플레이어들은 앞으로의 자신들의 고용상태에 대한 걱정에 얼굴을 구기며 주섬주섬 카드며 칩 등을 챙기기 시작했다.
"자네들도! 얼른 돌아가서 할 일을 하게나!" 하며 지배인은 총주방장과 정원사 그리고 데스크 직원을 돌려보내려 했다.
"잠깐만요" 하고 손님이 다시 한번 끼어들었다.
"저분들은 다 이 호텔의 직원들인가요?"
"그렇습니다, 마담"
손님이 흥미로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데스크에서 보니까 모든 열쇠가 그대로 남아 있던데, 그니까 오늘은 손님이 저밖에 없고요?"
지배인은 손님이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저들을 질책하실 생각이신가요?"
"유감스럽지만 그렇습니다. 일단 근신을 시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배인은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 직원들을 근신시키면 당장 오늘내일 이 방의 청소는 누가 한단 말인가.
"음..." 손님은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갑자기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잘 되었네요. 보시다시피 저는 혼자 여행을 온 터라 심심한데, 여러분들이 근신이시라면 그동안 일을 할 필요가 없을 테니 제 포커 친구들이 되어주실 수 있겠죠?"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손님은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호텔은 위치가 좀 외진 것 빼고는 아주 좋네요. 저같이 혼자 온 손님에게 이렇게 크고 화려한 방을, 그것도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주시다니. 보아하니 직원들도 인생의 재미를 즐길 줄 아는 것 같고요. 미루어 짐작하건대, 음식도 아주 맛있을 것 같은데요?"
말을 마치며 손님은 총주방장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러운 언급에 당황한 총주방장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곤 말을 받았다.
그는 "물론입니다. 오늘 저녁은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정원이 아주 잘 손질되어 있다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고요."
손님의 시선을 받은 정원사도 역시 당황해서 답했다.
"그럼요! 식사 후에 정원으로 나오신다면 산책 하기 제일 좋은 길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 하고 손님은 지배인을 바라보았다.
손님은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여태까지의 긴 여행 중에서 지금이 그에게 있어서 제일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손님이 웃음기가 어린 투로 지배인에게 말했다.
"지배인님은 분명히 호텔에 온 손님의 편의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여기 이 종업원분들이 지루해하는 손님을 즐겁게 해 드릴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실 것 같은데요?"
5
309호의 테이블에서는 밤새도록 포커 판이 벌어졌다. 호텔에 근무하는 모두가 적어도 한 판씩은 플레이했다. 총주방장은 주방의 냉장고를 털어서 지금까지의 요리사 인생 중에 제일 심혈을 기울인 요리를 만들었다. 물론 직접 들고 309호로 올라온 다음 다른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포커판에 참여했다. 정원사는 이미 어두워진 정원에 조명을 설치하고 관목으로 토끼와 여우와 펭귄과... 동물원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자랑스럽게 309호로 올라와서는 역시 포커판에 참여했다. 벨보이도 팁을 칩으로 받았다. 데스크의 직원도, 비록 많이 잃었지만 즐겁게 게임을 했다. 방에서는 끊임없이 즐거운 웃음과 간간히 탄식이 새어 나왔다.
지배인은 문 밖에서 고민했다. 양쪽 수염을 양쪽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이번에야말로 이 게임에 끼어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자신의 직업적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 전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포커를 치던 직원들을 엄하게 혼내지 않았던가. 하지만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들이 그를 자극했다. 당장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면 자존심이며 품위며 이 멋들어진 수염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는 다시 타이밍을 노렸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머릿속으로 여러 번 시뮬레이션했다. 지금이다, 하고 309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복도 끝에서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