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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Jul 09. 2022

퀸디궁

1


종수가 독일로 온지 벌써 이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그 다음에는 베를린에서 잠깐 살았다.  지금은 뮌스터의 마우스바흐 슈트라세에 면한 건물의 다흐게쇼스에 살고 있다. 


독어독문과를 나온 종수였지만, 그는 독일어로 된 문학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저히 끝이 나지 않는 토마스 만의 한 문장 안에서 접속사의 갯수를 새면서 그는 작가의 지적 허영심을 느꼈다. 불교의 영향을 받아 신비주의로 나아간 헤르만 헤세의 글을 읽으면서 그는  시인 류모씨가 소개해서 한국에서 잠시 붐을 이루었던 잠언집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옆나라 오스트리아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슈테판 슈바이크의 전기문학은 하나같이 극화가 심해서, 그대로 넷플릭스로 옮겨온다면 나르코스 버금가는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독어권 스위스에도 유명한 작가가 있던가? 


뮌스터 대학의 문학과 교수 역시, 나름 유명한 작가였다. 세 편의 장편 소설과 한 권의 단편집을 냈는데,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평단의 평가가 좋았다. 베를린 미테의 헌책방에서 종수는 그의 데뷔작을 우연히 발견했다.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종수가 독일어로 읽었던 모든 이야기 중에 제일 재미있었다. 토마스 만처럼 스타일이 내용을 앞서지 않았다. 헤르만 헤세처럼 의미가 내용을 앞서지도 않았다. 글을 쓰기 위해서 헝가리에서 독일로 넘어온 문학도가 주인공인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누구보다도 헤르만 헤세의 팬이였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인 뮌스터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은 낮에는 케밥집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 케밥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터키인이어야 한다는 불문율 때문에, 주인공은 간단한 터키어를 배워야 했고 수염도 길러야 했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성실함으로 케밥집에서 인정받았고, 예쁜 터키 출신의 여자친구도 사귄다. 비자문제도 비자청 직원의 실수로 쉽게 해결되었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낮의 생활이 잘 풀릴 수록  밤에 그가 쓰는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종수는 그 책을 사온 날 밤에 끝까지 다 읽었다. 다음 날에 이미 그는 자신이 살던 WG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곧 바로 뮌스터로 갔다. 뮌스터 중앙역 근처의 호스텔에 짐을 푼 종수는, 바로 뮌스터 대학의 문학과 학사에 지원할 준비를 했다. 마감이 채 열흘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미 다른 대학에 여러번 지원해 봤었던 탓에, 완성된 이력서와 모티베이션이 여러 종류였다. 종수는 어렵지 않게 합격했고, 자신이 읽었던 책을 쓴 그 작가 밑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종수에게 달달이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었기 때문에, 종수는 꼬박꼬박 일주일에 한번씩은 연락을 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부모님은 당연히, 뮌스터라는 도시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교수님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교수님의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 적이 없었다. 어쨌든 부모님은 종수가 이년 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에 기뻐했다. 환락의 도시 베를린에서 떠나서, 대학 도시라는 뮌스터로 옮겨온 것에도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아들이 베를린에서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모님의 지인이 부모님에게 걱정스러운 언질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이었다. 아들, 어디서 모르는 사람이 주는 마실거 함부로 먹지마. 아들, 대마 같은 거 하지 마. 아들, 밤늦게 돌아다니지 마.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종수였고, 술도 마약도 관심이 없는 종수였지만, 엄마의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가끔은 막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뮌스터는 작고 예뻤다. 길에는 언제나 걸어다니는 사람보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더 많았다. 예쁜 호수도 있었고,  날씨는 좋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호숫가의 성 앞에 위치한 대학교는, 멘자의 음식이 너무 짜고 맛이 없는 것만 빼면 다 종수의 마음에 들었다. 기숙사에 지원했지만, 자리가 언제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는 시 외곽에 작은 방도 하나 구했다. 창문 밖으로 ICE가 다니는 철길이 보이는 집이었다. 새벽이면 철길을 지나다니는 기차의 소음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이 종종있었지만, 그것도 금방 적응되었다. 


교수는 문학하는 백인 중년 남성의 전형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른 몸, 적은 머리숱, 신경이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 잘 다듬지 않는 수염. 어두운 색의 폴라 니트와 모직으로 된 자잘한 체크무늬 바지가 교수의 일상복이었다. 책 날개 안쪽에 붙어있었던 사진보다 조금 쪼그라든 모습이었다. 줄담배를 피는 것 때문에 기관지가 좋지 않은지 연신 기침을 해댔다. 목소리는 언제나 반 쯤 쉬어 있었다. 


문학 비평에 대한 이론 수업 첫 시간에서 교수는 PPT나 프린트물 없이, 심지어 칠판에 한 글자 판서 하는 것 없이, 세시간 반 동안 혼자 이야기를 했다. 글쓰기란 뭔지, 글이 문학이 되는 순간은 언제인지, 문학을 비평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학생들이 중간에 몇 번씩 손을 들고 질문을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려 했으나, 교수는 오늘은 듣기만 하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독일어 공부 만큼은 열심히 했던지라 독일어 실력에 대해 어느정도 자부심이 있었던 종수였지만, 교수가 말한 내용의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첫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종수는 자신이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마음에 불안에 휩싸였지만, 동시에 이곳에서라면, 내가 열심히만 한다면 무엇인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느꼈다.




종수는 교수가 쓴 다른 책들도 빌려서 읽어봤다. 다 재미있고 좋았지만, 종수가 처음에 읽었던 책, 교수의 데뷔작 만큼 좋지 않았다. 이야기의 흡인력은 여전히 엄청났지만,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져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때 종수가 정말 좋아했던 어떤 한국의 소설가가 이런 말을 했었던 적이 있다. 

"이야기를 읽고 났을 때, 그 이야기의 주제가 간단히 정리될 수 있다면 그 이야기가 아무리 재미있던지간에 진짜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이야기가 너무 재밌는데, 그 재미있는 이유를 간단히 말 할 수 있다면, 그 이야기도 진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기술만 배우면 쉽게 써낼 수 있죠. 서점에 가셔서 수 많은 글쓰기 작법서들을 들여다 보세요. 당신도 금방 그런 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히 정리될 수 없어요. 진짜 이야기 속에는 진짜 삶이 있습니다. 제 삶, 당신의 삶, 여러분의 삶과 같은 삶 말이에요. 삶 속에서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아무런 관계 없이 연달아 일어나고, 당신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를 알 수 없지요. 아마 알았다고 해도 착각에 가까울 겁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이해 범위 안에서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면서 살거든요. 오래 사귄 연인이 헤어졌을때, 서로 헤어진 이유를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는 거랑 비슷한 겁니다. 그 연인들 중 한쪽 편에 서서 실연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그 이야기는 논리적인게 되겠죠. 잘못은 누구에게 얼만큼 있고,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그때 네가 그랬더라면 우리는 잘 사귀고 있었을 거야.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쉬운 주제, 재밌는 이야기, 명료한 서사구조.  하지만 사실 실연은 그렇게 정리될 수 없어요.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게 간단히 정리될 수 없어요. 정리되는 순간 중요한 요소들이 다 새어나가버리고 맙니다. 그런 것들은 인과관계와 같은 논리구조로 포섭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다시 말하자면 진짜 이야기 속에는 그렇게 단선적이고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작동하는 세계가 없어요. 이야기는 여기로 튀었다 저기로 튀었다 하죠. 원인과 결과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모순되기도 해요. 도저히 서 너줄로는 제대로 요약할 수 없죠.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어요. 재미있고, 계속 읽고 싶고, 주인공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고. 그런데 이 책을 왜 읽어? 이 이야기가 왜 좋아? 하고 물어보면 말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왜냐면, 무엇인가를 정말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이유를 대는 것이 사실 어렵거든요. "


그 소설가는 유명한 여배우와 바람을 핀 사실이 들통나자 잠수했고, 한참 뒤에는 더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의 한 소설에 나오는 어느 인물이 그 여배우를 모델로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면서 책이 갑자기 불티나게 팔리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아무튼 그 작가의 이야기에 빗대어 말하자면, 교수가 쓴 두번째, 세번째 책은, 데뷔작보다 더 풀어서 설명하기 용이했다. 말하자면 가짜 이야기인 것이었다.


교수의  데뷔작에서, 주인공은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 케밥집을 그만둔다. 그만두는 방법이 창의적이다. 그는 그만두기로 마음먹고, 다음날부터 케밥에 고기를 기준치보다 두배 더 많이 넣어주었다. 같은 가격에 고기를 많이주는 케밥집으로 소문난 바람에 손님이 늘었다. 뒤늦게 이 상황을 알게 된 케밥집의 사장은 골치아파했다. 손님이 이전에 비해 늘긴 했지만,  늘어난 고기 구매 비용이 이익을 상쇄시키고 있었다. 고기 양을 줄이는 것도 쉽지 않았고, 가격을 올릴 수도 없었다. 왜 그랬냐는 사장님의 질문에 주인공은 대답하지 않고, 제가 잘못했으니 퇴직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음날부터 손님으로 와서 고기가 많이 든 케밥을 즐겼다.


종수에게는 독일에 와서부터 쓰기 시작한 이야기가 있었다.  

독일의 어느 보험회사에서 고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에 대한 이야기다. 그 직원은 고객 서비스 중에서도 해지에 대한 민원을 다룬다. 그가 하는 일은 매일 똑같았다. 멧부어스트에 골파가 올려진 오픈 샌드위치 한 쪽을 사들고 출근해서,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침을 먹는다. 그 다음부터는 자신에게 배분된 편지를 열어 내용을 확인한다. 고객의 이름과 보험 등록 번호를 확인하고, 전산망을 체크해서 고객이 지금 퀸디궁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확인한다. 가능한 상태라면 페어트락 관리 부서에 퀸디궁을 요청하는 문서를 보낸다. 불가능한 상태라면 고객에게 불가능한 이유를 알리는 편지를 보낸다. 불가능한 이유는 보통 두 세가지 안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주인공은 이름과 주소란이 비어있는 상태로 출력된 편지용지를 다시 프린터에 넣고 이름과 주소를 입력해서 다시 출력하는 식으로 일하곤 했다.


어느날, 그 직원은 한 편지에서 자신의 전 아내의 이름을 발견한다. 보험을 퀸디궁 하는 이유로 전 아내는 어떤 남자와 결혼하게 되어 그 사람의 직장인 보험에 가족으로 가입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적었다. 그 직원은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며 그 편지를 불태워버린다.  일주일 쯤 뒤에, 종수는 다시 전 아내가 보낸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발견한다. 직원은 그 편지를 다시 한번 태워버리고 싶었으나, 전 아내가 고객센터에 문의하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다. 게다가 이번 편지는 아인슈라이벤으로 보낸 것이었다. 주인공은 우선 전 아내의 새 남편에 대한 기록을 살펴본다. 치과 의사. 나이는 마흔 둘. 보험에 가입한지는 22년이 넘었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꽤 오래된 고객이었다.  한달의 보험료가 꽤 높은 것으로 보아, 여타 다른 의사들 처럼 꽤 높은 수익을 올리는 것 같았다. 전 아내와 헤어진지도 벌써 오년이 지난 지라, 지금까지 주인공은 모든 것들을 잊고 살았으나, 한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자 주인공은 하루에도 여러번 전 아내와 그의 새 남편 생각을 했다. 어느날 아침, 일어나서 찬물을 마시다 왼쪽 아래 어금니가 시리는 것을 느낀 주인공은 곧 바로 회사에 전화해서 병가를 신청한 뒤, 전 아내의 새 남편이 일하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당일 진료 예약을 신청한다. 그에게 어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우선 그 남자를 직접 보고 싶었다.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그때 가서, 일이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게 나두면 될 일이었다.  이야기의 장르가 크리미는 아닌 이상, 피투성이 장면이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다시 대학생 신분이 된 종수도 새로운 보험회사에서 학생 보험 가입을 하기 위해서 기존 보험 계약을 퀸디겐해야 되었다.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퀸디궁 양식에 자신의 이름과 자신의 기존 보험 계좌 번호를 입력한 다음 출력한 뒤에 편지봉투에 넣으려다 종수는 잠깐 망설였다. 갑자기 머릿속에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터무니없는 장난이었지만 종수는 왠지 모르게 그 생각을 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수는 자신이 쓰고 있던 글 파일을 열어, 주인공의 전 아내의 이름과 보험번호를 복사한 다음에 퀸디궁 양식에 붙여넣기해서 출력했다. 이제 종수에게는 두 장의 퀸디궁 편지가 있었다.  그는 두 장의 편지를 각각 다른 편지봉투에 넣은 다음에 보험회사의 주소를 적고는 우체국에 가서 편지를 부쳤다.



첫 학기는 정신 없이 지나갔다. 종수가 들어야 하는 수업은 모두 네 개였다. 그중 어느 하나 널널한 것이 없었다. 종수는 우선은 독일어와 씨름해야 했다. 새로운 책을 읽을 시간도, 자신이 쓰던 이야기를 이어 나갈 시간도 없었다. 강사진과 학생들은, 두 세명의 예외를 제외하곤 독일인이거나, 오스트리아 혹은 스위스 출신이었다. 그 사람들은 이 강의실에 뜬금없이 앉아있는 아시아 남자 학생에 적잖은 관심을 가졌다. 모두가 독일 어권의 문학에 대한 외부인의 시선이나 의견을 궁금해 했다. 토마스 만에 대한 내 의견에는 대부분 동의 했지만, 헤르만 헤세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무엇보다 류모 시인이 펴낸 잠언집을 이 친구들은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놈의 무라카미 하루키. 이제 와서 유행인 모양이었다. 독일 학생이 한국인으로서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하고 물어보면, 나는 그러는 너는 프루스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하고 물었다. 프루스트는 프랑스 작가야, 하고 답하면,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 작가야 하고 답했다.



나는 보험회사에서 오는 편지를 기다렸지만,  삼주가 다 되어가도록 답장이 오지 않았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편지가 접수되었으니 기다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문득 내가 보낸 두번째 편지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전화를 하는 것은 이상하게 보일 것이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여자고, 내 목소리는 어떻게 들어도 남자였으니까.


나는 낯을 가리는 편이었지만, 필요할 경우에는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멘자의 끝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던 한 여학생에게 다가간 나는, 간단히 사정을 설명하고, 전화해서 퀸디궁 처리가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물어봐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여학생은 퍽 재밌다는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더니, 내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전 아내의 이름을 다시 한번 물어보고는 곧 바로 보험회사의 서비스 센터에 전화했다. 답변은 똑같았다. 편지가 접수되었고, 처리중이니 기다려달라는 말이었다.

그 뒤로, 나는 그 사람을 마리라고 불렀다. 주인공의 전 아내의 이름이 마리였기 때문이다. 



3


교수의 첫 소설에서, 주인공은 결국 소설을 끝맺지 못한다. 그는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기 시작한다. 케밥집을 그만두는 것은 사실 반 장난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그 뒤로부터 주인공은, 자신이 가진 것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는 생각을 집착적으로 반복해서 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가졌던 책을 모두 플로 마트에 내다 팔아 버리고, 그 다음엔 자신이 가진 옷들도 속옷 두어개와 티셔츠 두어개, 그리고 겨울용 패딩을 제외한 모든 것을 처분한다. 터키인 여자친구를 버리는 것이 제일 힘들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여자친구는 이미 마음이 다른 남자에게 가 있었다. 결국 그는 집 계약도 끝낸다. 백팩 하나에 들어갈 만큼의 물건만 가진 채로, 그는 공원에서 살기 시작한다. 


공원에서는 노트북을 충전할 전기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노트에 펜으로 글을 썼다. 모든 것을 버린 보람이 있었는지 글은 술술써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삼십페이지 씩은 거뜬했다. 불편했지만 위생 문제도, 식사 문제도 그는 공원에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흐르는 강물은 차가웠지만 깨끗했고, 돈도 아직 꽤 남아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자, 글이 갑자기 턱 막혔다. 지금까지의 속도가 무색하게도.  더이상 주인공은 버릴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주인공은 자신이 무엇을 아직 버리지 않았는지를 알기 위해서 예전 자신의 집으로 가서 우편함을 열어봤다. 보험회사에서 온 편지가 꼳혀있었다. 자신을 대상자로 한 건강보험이 아직 유지되고 있었고, 그것을 퀸디궁 하는것은 자신의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리는 그 소설에서 이 부분을 특히 마음에 들어했다. 독일인한테도 퀸디궁은 정말 골치아픈 일인 듯 했다. 오죽하면 가입한 모든 서비스의 퀸디궁을 원하는 때에, 기간을 넘기지 않고 대신 해주는 서비스까지 등장했을까. 웃긴 점은, 이 퀸디궁을 대신 해주는 서비스 역시 퀸디궁을 위해서는 삼개월 전에 연락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 역시 퀸디궁 날을 놓쳐서, 반카드가 자동으로 1년 연장된 적이 있다고 마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마리는 뮌스터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프랑스인, 아버지가 독일인이라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둘다 잘했다. 물론 영어도 잘했다. 미술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는 것 만큼 따분한 것은 없을 것이라고 그는 늘 말했다. 제일 따분하지 않을 것 같은 미술도, 그 자신에 대한 역사는 결국 따분해 질 수밖에 없다니, 결국 모든 역사와 이야기는 정사로 인정을 받을 수록 재미 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뮌스터에서의 한 학기를 종수는 어찌어찌 마무리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마리는 가족들과 함께 남프랑스로 떠난다고 했다. 한달이 넘는 긴 바캉스였다. 이야기를 쓰다가 지루해지면, 언제든 와도 된다고, 빈방은 많고 사람들은, 어쩌면 소설가에게는 따분해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예술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재미있는 사람들이라고 마리는 말했다. 생각해보겠다고 종수는 말했다.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방학 동안에 완성해야 하는 하우스아르바이트가 걱정이었다. 무엇보다 학기의 일정이 생각보다 빠듯해서 쓰고 있던 이야기를 거의 진척시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먼저 첫 한주동안 하우스알바이트를 끝내고, 그다음 한주 동안, 적어도 한 챕터는 쓰자. 그 목표를 완료한 다음에 남프랑스로 가야겠다고 종수는 결심했다.



4


교수의 소설 속 주인공은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건강보험은 독일에서는 모든 개인이 꼭 가입해야 하는 것이다. 남자는 다른 모든 것은 퀸디궁 할 수 있었지만, 건강보험을 퀸디궁 할수 없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이유 때문에 자신이 소설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의 애인이었던 터키 여자는 터키 남자와 결혼하고, 도시의 전체 터키 사회가 들썩인다. 빵빵거리면서 시내를 돌아다니는 축하 차량 행렬에서 주인공은 전 드레스를 입은 전 여자친구를 발견한다. 여전히 같은 가격에 두배의 고기를 넣어주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인공은 예전에 자신이 일했던 케밥집으로 향한다. 소설은 주인공이 케밥 임 브롯 하나를 시키는 것으로 끝난다.


종수도 여전히 글을 완성하지 못했다. 보험회사의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남자는, 전 아내 마리의 새 남편이 운영하는 치과에 가서 치과 치료를 받았다. 그 남자는 여러 면에서 자신보다 말끔하고, 준수하고, 흠잡을 데 없이 좋은 사람 같았다. 새하얀 이가 연애인 못지않게 가지런히 제자리를 잡고 들어서 있었다. 지금까지 여러 번 충치 치료를 받았지만, 이번 만큼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이를 갈고 아말감을 때워주는 의사를 주인공은 만나보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주인공은 복잡한 마음으로, 전 아내의 보험 퀸디궁 서류를 페어트락 관리 부서에 넘길지 말지를 고민한다. 주인공은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종수는 한참 전에 자신의 기존 보험을 퀸디궁 하는데 성공했다. 학생 신분으로 새로운 보험에 가입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독일어로 수업을 듣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이제는 그래도 따라잡을 만 하다. 몇 명의 친구도 새로 사귀었고, 더 좋은 집을 구해서 이사도 했다. 부모님은 여전히 한달에 한 번 생활비를 보내주시고, 종수는 일주일에 한번 꼬박꼬박 전화해서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다. 


종수는 자신이 마리의 이름을 적어 보낸 퀸디궁 편지가 어떻게 되었을지 가끔 생각해본다. 종수는 결국 남프랑스에 가지 못했고,  다음 학기에는 마리와 헤어졌다. 그 뒤로 종수는, 자신을 대신해서 마리의 퀸디궁 요청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물어봐줄 사람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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