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목욕탕 행복한 센토
일본에 살 때 겨울에는 거의 매일 욕조에 들어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면 온 몸 구석구석의 냉기가 녹는 게 느껴진다.
같은 뜨거운 물이지만, 발 뻗기도 힘든 집의 욕조에 담그는 것과, 센토의 커다란 탕에 담그는 거랑은 완전 다르다.
큰 주전자에서 끓인 물이 작은 주전자의 물보다 천천히 식는 것처럼 센토의 탕은 정말 기운이 다르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센토에 가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계속 조른다.
"아. 추워~~ 이봐 형씨! 몸 좀 데우러 가자고~~~"
그럼 그날 밤엔 자전거에 목욕바구니를 싣고 센토로 향한다.
먼저 온탕에 들어간다. 이때가 기분이 제일 좋다. 온도가 42 정도 되는 것 같다. 한번에 쑥 들어가기엔 꽤 뜨겁다. 그래서 발끝부터 조금씩 조금씩 담그기 시작한다. 가슴 위까지 담그면 답답하고 열이 올라와서 반신욕을 한다. 난 이렇게 뜨거운데, 목까지 몸을 담그고 오래 있는 일본 할아버지들이 항상 신기했다.
몸이 살짝 더워지면 탕에서 나온다. 기본적으로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한다. 다음은 건식 사우나로 간다. 사우나실 안에 TV가 있다. 사우나라는 공간은 들어서는 순간 마치 시간이 정지한 듯 천천히 흘러가는 곳인데 TV에 집중하다 보면 뜨거워도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다. 어느새 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탈출하듯이 밖으로 나온다.
건식 사우나를 이용하려면 100엔의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곳도 있다. 또는 아예 건식 사우나가 없는 곳도 있다.
땀을 흠뻑 흘린 몸에 바가지로 물을 끼얹는다. 그리고 냉탕에 들어간다. 물이 엄청 차갑다. 정말 차갑다. 깊은 산속의 계곡물이 이렇게 차가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는 사우나를 하지 않으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온도다. 머리까지 푹 담가본다. 물론 아주 잠깐이다. 머리까지 너무 시원해진다. 세포 하나하나가 전부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목욕하다가 너무 덥거나 몸이 쳐지면 다시 냉탕에 들어온다. 아주 잠깐만 몸을 담가도 정신이 번쩍 든다. 냉탕이 없는 센토도 있는데 그런 곳에서는 오랜 시간 목욕하기가 힘들다.
건식 사우나 냉탕, 건식 사우나 냉탕을 여러 번 반복한다. 단순한 반복인데 이게 재미있다.
예전에 오랜 시간 목욕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떻게 목욕탕에 그렇게 오래 있을 수 있죠?"
그랬더니 그분이 말하기를
"탕을 왔다 갔다 하면서 노는 거지~"
라고 했다.
그 당시 나에게 목욕탕이란 곳은 덥고 지치고 오래 있기에는 지루한 곳이었다. 그래서 목욕이 어떻게 놀이가 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렇게 놀게 되었다.
[사우나 냉탕 놀이] 가 재미없어지면 거품탕으로 가본다.
욕조 모양이 침대처럼 드러누울 수 있게 되어있다. 머리를 두는 곳이 시원해서 기분이 좋다. 속에 차가운 물이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가벽게 몸을 간지럽히는 거품 속에 있다 보면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일본의 센토는 매력적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해도 이곳 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다. 물론 낡고 불편한 것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센토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의 건강을 기원한다. 왜냐면 센토가 변함없이 오래오래 유지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언제나 변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 주는 곳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기쁨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다. 너무 개운하다. 어느 한 곳 정체 없이 온몸 구석구석이 순환되는 느낌이 든다. 땀을 많이 흘렸더니 갈증이 난다. 자전거의 핸들이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한다.
맥주 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