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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Feb 02. 2020

[윤] 쿠알라룸푸르에서 집 구하기

돈은 별로 없는데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요 :)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외국 생활을 하다 보니 정말 하기 싫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새로 집(방)을 구하는 것이다. 낯선 나라, 생경한 도시에서 집을 구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신경 쓸 것이 너무 많다. 집의 구조와 상태부터 시작해서 대중교통은 잘 되어있는지, 주변에 편의시설은 충분한지 등을 고려하다 보면 처음에는 새로운 장소를 탐방하는 재미를 느끼다가도 이내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마음에 꼭 들어서 살고 싶은 집은 예외 없이 내 예산을 훌쩍 넘기 때문에, 하나둘씩 제외되기 시작하는 조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쓰라림과 동시에 '역시 돈이 최고야' 같은 류의 생각을 되뇌게 되기 일쑤이다.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국가를 막론하고 정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는 것을 보니, 아마 새로운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는 것이 나만 싫어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전 글(말레이시아에서 도둑맞은 이야기)에도 밝혔다시피 나는 여러 가지 이로 인해 더 이상 도둑이 들었던 집에서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해서, 보람이와 상의 끝에 집주인에게 조기 퇴거를 통보 후 새로운 집을 알아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반년 정도 쿠알라룸푸르에 살아서 어느 정도 익숙하니 까짓 거 집은 다시 구하면 되지'라는 마음 반, '언제 집을 또 알아보고 이사를 하나' 싶은 마음 반 합쳐 며칠 고민을 하던 도중 2020년 새해가 다가왔고, 직장 동료 몇 명이 모여 집에서 다 같이 만두나 빚자는 초대를 받고 새해 첫날부터 타인의 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그런데 만두를 빚으며 둘러보니 이 집,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 작년에 완공된 곳이어서 새 집이고, 부대시설(ex. 수영장, 운동시설)도 훌륭한데, 내가 다니는 회사랑 가까워서 통근시간도 30분이 채 안 걸리는 데다가(버스로 5 정거장) 무엇보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답답함이 전혀 없는 뷰(저 멀리 슬쩍 KL의 명물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도 보였다)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도대체 이런 집은 얼마예요...?


"저는 Partly furnished로 계약해서 월세는 1,800링깃인데, 침대 하나 넣어주는 조건으로 1,900링깃(한화 약 570,000원) 내고 있어요."


'방 2개짜리 집이 겨우 이 가격이라고? 이거 꽤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보람이를 돌아보니 이미 보람이는 이 집과 사랑에 빠진 표정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이 집을 위주로 우리의 새로운 집을 알아보도록 해야겠다.



말레이시아에서 집을 구할 때 한인 사이트를 통해서 구하거나 계약된 날짜 이전에 나오는 사람들로부터 직접 승계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보통 iProperty라는 사이트를 가장 많이 이용한다. 사용법은 별로 특별하거나 어려울 것은 없다. 원하는 지역 또는 집을 검색한 다음에 나오는 결과들을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집 or 방이 있으면 등록되어있는 부동산 에이전트에 문의를 해서 집을 보고 계약을 하면 된다.

https://www.iproperty.com.my/


그런데 나는 이미 6개월가량 쿠알라룸푸르 근처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iProperty를 통해 새로운 에이전트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알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일을 진행하면 더 좋을 것 같아, 팀 동료들과 동기들 몇 명에게 에이전트들 연락처를 수소문 후 집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사실 집을 구하고 싶은 2~3곳의 후보지가 더 있기는 했지만, 나와 보람이가 마음에 들어했던 집이 있기 때문에 일단은 그 집으로만 알아봐 달라고 요청을 해놓았다. 그런데 부동산 에이전트끼리 서로 고객 정보를 공유하는 채널이 있는지, 단 한 명의 에이전트를 제외하고(나는 총 4명의 에이전트와 연락을 했다) 모두 내게 "너 혹시 다른 에이전트에게도 문의했었어?"라고 내게 연락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내게 물어본 한 명의 에이전트가 더 있었는데, 그는 협상이 결렬됨을 깨닫자마자 방폭을 시전하였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각기 다른 에이전트로부터 계속해서 이 질문이 반복되다 보니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자유시장경제 체재에서 내가 원하는 재화를 얻기 위해 단지 여러 곳에 가격문의를 했을 뿐인데, 마치 내가 경쟁을 유도하여 시장을 흐린다는 느낌을 받아서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혹시 말레이시아의 부동산 시장은 신의로 점철되어 있어, 계약을 할 때는 단 한 명의 에이전트와 진행을 하는 것이 국룰인가?'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는데 이런 상황은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이후 집을 계약한 에이전트에게도 물어보았는데 그녀는 단순 명료하게 내게 대답했다.


뭐 어때. 네가 고객인데. KL에 차고 넘치는 게 집과 에이전트야. 신경 쓰지 마.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마음에 드는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 기존에 생각했던 월 예산 RM2,000은 조금 초과했지만, 2년 계약이라는 강수를 두어서 엇비슷한 가격에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다. 사실 한치 앞날을 알 수 없는 외국에서 2년간 거주지가 묶여있다는 것이 약간 부담되기는 했다. 하지만 집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나는 최근 5년 동안 1년 단위로 거주지를 옮겨 다녀 잦은 이동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안정적인 생활로 돌아오고 싶어서 보람이와 상의 후 2년간 새로운 집에 살게 되었다. 부디 새로운 집에서는 무탈하고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기를...!



* 아래 동영상은 집을 처음 보러 갔을 때 찍었던 동영상이다. 곧 이사를 마치고 정리가 끝나면 온라인 집들이도 한 번 진행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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