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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호 그리고 보람 Jun 06. 2020

[윤] 날카로운 첫 타투의 추억

잘 새긴 타투, 열 조언 안 부럽다.

Tinder에서 만나 결혼을 한 커플로, 말레이시아에서 거주 중입니다.
함께 글을 쓰면서 번갈아 가며 올리고 있습니다. 제목의 [윤]은 윤호의 글, [보]는 보람의 글입니다.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나와서 문득 거울을 보니, 새삼스레 '내 몸에 타투가 이렇게 많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요즘에야 예전(!)에 비해서 타투를 받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아직은 한국 사회에서는 타투는 일반적인 표현 방식은 아닌 듯하다. 특히 나의 마지막 타투는 반팔을 입으면 바로 드러나는 곳에 있는데, 그 문구가 강렬해서인지 서체가 튀어서인지 모르겠지만 타투 자체에 놀라워하거나 타투로 나를 기억하는(ex.왼팔에 한글 타투있는 분) 사람들을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내 몸에는 총 6개의 타투가 있는데,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의 첫 타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 타투를 하게 된 계기


때는 2014년 여름, 첫 번째 직장에서 인턴으로 1년 정도 일했을 때였다. 인턴 기간은 점점 길어지는데, 채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약이 없어 기대 반, 불안함 반의 마음을 가진 채 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직위가 인턴이다 보니 회사로부터 완전한 복지 혜택을 받지는 못했는데, 우습게도 여름휴가는 따로 받지 못했지만 내게도 휴가비가 일부 지급이 되었다. 정확히 금액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당시 학생이었던 내게는 적지 않은, 평소라면 사지 못했던 물건을 덥석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문득 '이 돈으로 타투를 받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가 없으니 어디 여행을 갈만한 시간도 없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물욕은 없었고 딱히 필요한 것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차라리 그동안 생각해놨던 문구를 이참에 타투로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타투는 매우 비싸니까. 갖고 싶은 타투가 있다면, 그리고 그 타투를 평생 내 몸에 가져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면, 충분한 현금이 현재 수중에 있는지 또한 확인해봐야 비로소 타투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이 완성되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이미 생각해놓은 타투가 있었다. '용기를 가지고 패배하라'라는 문구를 캘리그래피로 디자인해서 잘 안 보이는, 하지만 슬쩍 보일 수 있는 가슴께에 하고 싶었다. 이 문장은 이영도의 판타지 소설 <피를 마시는 새>에 나오는 대사이다. '무슨 타투를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문장으로 해?'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영도가 굉장히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장르는 개의치 않았고, 무엇보다 이 대사가 주는 메시지가 내 삶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는 조금 나아졌지만, 27살의 나는 과감하고 용기 있는 척 굴지만 늘 모든 것이 안정적이라고 느껴질 때 비로소 행동하려고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사 모든 요건이 완벽히 준비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때로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야 할 때도 있는데, 늘 '준비'가 덜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번번이 타이밍을 놓쳤다. 회사에서 업무를 진행할때도, 연애도, 심지어 링 위에서 권투를 할 때도 말이다. 이런 나 자신이 지긋지긋했는데 '용기를 가지고 패배하라'라니, 저 모순된 문장이 내게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비록 실패를 경험할지라도 용감하게 도전하라는 저 메시지가 내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던 나날들이었다. 휴가비가 입금된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눈여겨보던 타투이스트에게 예약을 잡았다.

이 대사는 Nike의 캐치프라이즈인 Just Do It과도 맞닿아있다고 느꼈다. 그냥 하세요. 타투든 뭐든.


# 타투를 받던 날


타투는 분당 정자동에 있는 타투이스트의 작업실에서 받았는데, 죄지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부들부들 떨었던 기억이 난다. 타투이스트분이 내가 첫 타투를 받는다는 것을 아시고는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이 정도 타투면 수술로 따진다면... 맹장 수술 정도로 가벼운 편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라는 말로 나의 긴장을 덜어주시려고 애썼다. 일단은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내가 살면서 받은 수술을 받은 경험이라고는 스물한 살 때 축구를 하다가 코뼈가 부러졌을 때가 유일했다. 따라서 타투 시술이 수술만큼은 아프다는 건지, 아니면 이 정도 레터링은 간단한 작업이라는 것인지(후자가 맞았다) 감이 오지 않아서 긴장된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 다행히 타투이스트께서 작업 전에 보여주신 캘리그래피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한 시간 정도 걸려 타투가 완성되었는데 가슴 위쪽이 그나마 덜 아픈 부위라서 그런지 생각보다 아프진 않았다. 굳이 묘사하자면 치과에서 스케일링하는 것보다 살짝 더 아플 때가 있는 정도였다. 작업이 끝나고 거울을 바라보니 내 몸에 지울 수 없는 무언가가 적혀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타투 후 관리법 및 주의사항에 대한 설명을 듣고, 비용을 지불한 후 작업실을 나섰다. 사실 첫 타투를 받기 전에는 타투를 받으면서 많은 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서 '의외로 타투를 받는다는 게 큰일은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 타투를 받은 후


1. 옷을 입고 있으면 보이지는 않기에 굳이 어머니께 말씀드릴 필요는 없었지만, 매번 신경 쓰는 게 싫어 3일 후에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타투를 보여드렸다. 타투를 확인함과 동시에 등짝스매싱(이때는 '선타투 후뚜맞'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이었는데, 나중에 이 말을 듣고 타투를 받는 데에 정말 딱 어울리는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과 함께 2~3일 정도 내게 말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V넥 티셔츠를 입으면 살짝 보이기는 했다.


2. 타투가 여러 개인 사람들은 보통 첫 타투를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나는 아직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타투를 꼽으라면 처음 받은 이 타투를 꼽는다. 생각보다 캘리그라피 디자인이 잘 나와 이쁘기도 하고, 무엇보다 정직원 전환 후 회사에서 허덕이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이 타투를 다시 보고 첫 퇴사를 결심했기 때문이다. 퇴사 후 외국 생활에 대한 꿈을 키웠기 때문에 퇴사가 내 인생의 기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이 타투에 대한 애착이 크다.  


첫 퇴사는 정말이지 엄청나게 떨렸지만(가족, 직장 동료, 친구들 할 것 없이 주위에서 굉장히 만류했다), 내가 마음먹고 받은 타투의 의미처럼 용기를 가지고 패배하기 위해 당시에는 큰 결심을 했다. 그리고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여전히 나는 별일 없이 산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종종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마주한 현실에 얼마나 용기 있게 맞서고 있는지.


3. 2010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영화 <허트 로커(The Hurt Locker) > 시작부에는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도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The rush of battle is a potent and often lethal addiction, for war is a drug)."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에서 '전투'를 '타투'로 살짝 바꾸면 현재 내 상황에 대한 설명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난 이후로 5개의 타투를 더 새겼고, 요즘은 막연하게 '한 두 개 정도만 더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 타투들 중 도안 형태는 없지만 내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문장을 더 가지게 되었고, 덕분에 매일은 아니더라도 종종 타투를 들여다보며 얼마나 이 의미에 맞게 살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아직은 한국에서 타투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음은 분명하지만, 오랜 고민 끝에 새긴 타투들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고 내게 늘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단지 액세서리 같은 느낌을 원해 즉흥적으로 타투를 원한다면 개인적으로는 말리고 싶지만(타투는 새길 때보다 지울 때가 훨씬 더 아프고 돈도 많이 든다!), 심사숙고하여 결정한 타투가 있다면 적극 권장하고 싶다. 이 또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아끼는 방법 중 하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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