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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아재 May 04. 2022

그림으로 봄을 만끽하는 방법

어반스케치의 매력

  봄이 왔습니다. 이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좋은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는 벚꽃을 원없이 그렸습니다.

  사진으로는 제주 삼성혈의 벚꽃, 나주 목사내아의 벚꽃, 건널목과 놀이터의 벚꽃을

  야외에서는 광주 운천저수지, 고창 석정웰파크, 그리고 고창 선동초의 겹벚꽃까지 그렸습니다.     

  사진으로 찍은 풍경을 집에서 그리면 집에 있는 여러 가지 미술도구들을 사용하기도 편하고, 화판이 흔들리지 않는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그릴 수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사진이 담긴 스마트폰 화면을 확대해가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구조물이 어떤 것들인지 확인하는 일들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그릴 때는 그런 답답함이 말끔히 사라집니다만 또 다른 불편함이 생깁니다.                    

  제일 먼저 너무 춥거나 더울 때, 비바람이 불 때 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5월 초에도 두세 시간 야외에 있을 때에는 바람막이나 담요를 두르고 있어야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계속 움직이는 시야의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그릴지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두고 전체 프레임을 고정한 후 확인하면서 그리면 됩니다. 다만 현장에서 처음 그릴 때는 프레임을 계속 확인하다가 눈 앞의 선명한 풍경을 두고 스마트 폰에 담아둔 사진을 보고 그리게 되는 애매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계속 현장에서 그리다보니 그런 일은 점차 줄어들었고 이제는 프레임을 확인하는 사진도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세 번째 문제는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선뜻 용기를 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앞에서도 계속 말씀드렸던 세상의 진리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현장에서 그리는 즐거움을 더 자주 느끼고 빨리 익숙해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동호회에 가입하고 모임에 나가서 함께 그리거나 친구들과 함께 그리면 어디에서든 무적이 됩니다. 함께 수다 떨며 그림을 그리는 것 만큼 행복한 시간이 없습니다. 남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 할은 걸 틈이 없이 행복해집니다. 

  이 행복은 직접 경험해보시면 바로 알게 되실 겁니다.


“안 뜨거워. 들어와 봐. 아유 시원하다.”

어릴 때 뜨거운 열탕 안에 들어간 아버지의 거짓말 같으신가요?


  저도 처음에는 현장에서 그리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습니다. 가족들 함께 카페에 가 구석에서 살짝살짝 그렸습니다. 카페에서 대부분 스케치만하고 사진을 찍어 집에서 채색했습니다. 그러다가 스케치가 아주 마음에 드는 날 용기를 내어 카페에서 처음 팔레뜨를 꺼냈을 때가 기억납니다.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아... 물감을 꺼내면 사람들이 엄청 쳐다볼텐데....” 

  물론 물통을 엎지르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가족들에게 “조금 더 기다려줄 수 있어? 채색도 하고 싶은데....”라고 양해를 구하고 완성을 하곤 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리는 것을 ‘어반스케치’라고 합니다.

  어반스케치의 규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는 실내외의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린다.

2. 우리의 드로잉은 여행지나, 살고 있는 장소, 주변의 이야기를 담는다.

3. 우리의 드로잉은 시간과 장소의 기록이다.

4. 우리가 본 장면을 진실하게 그린다.

5. 우리는 어떤 재료라도 사용하며 각자의 개성을 소중히 여긴다.

6. 우리는 서로 격려하며 함께 그린다.

7. 우리는 온라인에서 그림을 공유한다.

8. 우리는 한 번에 한 장씩 그려 세상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현장에서 직접 보고 그림을 그려 완성하는 행위’입니다. ‘완성’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둔 것은 조금 깐깐하고 엄격한 기준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엄격히 말하면 현장에서는 스케치만 하고 채색은 집에서 하는 것은 어반스케치가 아닙니다. 

  어쨌든 즐겁고 행복하게 그리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저는 ‘어반스케치’란 단어를 오용하더라도 조금 더 ‘남용’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반스케치 작가님들은 ‘제대로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셔서 지금은 조심해서 쓰고 있습니다. 아니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어반 (urban)’이라는 단어의 의미대로 ‘도시’를 그리는 것을 어반스케치라고 생각하거나, 풍경화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 풍경이건, 건축물이건, 사람이나 동물이 포함되어 있건, 도시이거나 시골이건 상관없이 ‘현장에서 직접 보면서 그림을 완성하는 행위’를 어반스케치라고 하는데 이렇게 오용되는 것을 보면 어반스케치의 깐깐한 정의에 수긍을 하게 됩니다. 

  드로잉 실용서나 에세이를 출간하신 저자분들께서도 책에서는 '어반스케치' 대신 “현장스케치”나 “야외스케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계시더군요. 저도 이제는 집에서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남길 때 해시태그로 #어반스케치 라는 단어 대신 #어반드로잉 이라고 남기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행복에 익숙해지면 슬슬 다른 사람들의 시선, 부담을 즐기게 됩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행복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쌓여가면 사람이 없는 곳보다는 사람들이 지나가다 발을 멈추고, 말을 걸고 이야기를 붙이게 되는 자리에서 그리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올 봄에는 용기를 내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사진을 찍는 군산 '초원사진관' 앞 달고나 좌판 할머니 옆에 앉아 끝까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함께 그리는 그림친구와 함께라면 두려울 게 없어집니다. 스스로 칭찬할 수 있는 경험을 획득했습니다. 이제 제가 생각하는 '어반스케치'의 끝판왕, '길거리에 서서 그리는 경험'만 쌓으면 됩니다만... 그전에 먼저 체력을 길러야 할 것 같습니다. 쿨럭.

    



  직접 보고 그리는 것에는 앞에서 말씀드렸던 불편과 부담을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매력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간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그림의 선이나 색감에 녹아듭니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지나도 그림을 그릴 때 느꼈던 기분이 다시 살아납니다. 

  뺨을 스치는 바람도 좋고, 눈이 시린 하늘 빛에 눈을 찡그려도 좋습니다.     


  사진, 특히 다른 분의 사진을 보고 그릴 때면 ‘느낌’보다는 ‘기술’에 집중하며 그리게 됩니다. 그 날의 온도와 햇빛, 바람과 냄새보다는 구도와 소실점, 음영과 색감 표현 같은 것들에 집중하게 됩니다. 조금씩 더 나아지는 그림을 보며 보며 성취감을 더 자주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저 그리는 행위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일은 직접 보고 그릴 때 더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못 믿으시겠다구요? 

이번 주말 나들이 할 때는 우선 종이와 펜을 가방 안에 꼭 챙겨나가 보세요. 

스케치북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카페의 냅킨에 그려도 좋습니다. 


당신의 찬란한 봄을 그려보세요.     

     

아내가 올 봄에 찍어 준 제 인생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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