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그리고 사랑하기
가까이에서 그를 올려다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손짓으로 속삭입니다.
아늑함에 스르륵 잠이 들까 두려워
물러서서 바라봅니다.
또 다시 손을 흔들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합니다.
더 들려줄 이야기가 남아있다고.
올해도 고창 중산리에는 250살이 넘은 이팝나무가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5년 전 이 곳 고창으로 내려와 살면서 해마다 5월 중순이면 이 황홀한 모습을 보려고 찾아옵니다.
예전에는 이팝나무를 눈 여겨 본 적이 없었습니다. 보았는데도 기억이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팝나무는 주로 전라도와 경상도 등 남부지방에 주로 서식합니다.
이팝나무란 이름은 꽃이 필 때 나무 전체가 하얀 꽃으로 뒤덮여 이밥, 즉 쌀밥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도 하고, 여름이 시작될 때인 입하에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르다가 이팝나무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흔히 조팝나무와 혼동하게 되는데요. 조팝나무는 장미과,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로 꽃의 색깔이 하얗다는 것만 유사할 뿐 전혀 다른 종입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꽃모양도 전혀 다릅니다. 이팝나무는 긴 쌀알처럼 보이고, 조팝나무는 넓게 퍼진 5장의 꽃잎 가운데에 노란 꽃술이 있습니다. 줄기의 형태도 높은 곳에서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와 달리 조팝나무는 개나리 같이 얇은 가지 여러 개가 땅에서 올라와 꽃을 피웁니다.
3년 전 막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자마자 5월 1일부터 100일 그리기를 했습니다. 20일이 지났을 무렵까지 작은 소품 같은 것을 겨우겨우 그리고 있는 실력이었는데도 용감하게 중산리 이팝나무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싶었습니다.
색연필, 오일파스텔, 연필, 세필펜
계속 도구를 바꿔가며 매일 그렸습니다.
같은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인데도 피사체가 주는 울림이 크니 계속 그리게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그리기 시작한 이팝나무.
재작년에는 처음으로 수채화로 그려보았습니다. 느티나무처럼 채색으로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겨울 설경을 그리는 것처럼 이팝나무 바깥의 하늘과 군데군데 보이는 나뭇잎이나, 가지, 그림자만 채색하여 새하얀 꽃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러서 어떻게 그릴지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그렸습니다.
작년에는 광주 어반스케치 동호회 분들과 모여 현장에서 그렸습니다.
동호회 분들 모두가 선원들을 바닷속으로 이끄는 세이렌에게 홀린 것처럼 이팝나무를 바라보며 그렸습니다.
그리고 올해, 바쁜 5월 초가 지나고 겨우 한 숨을 돌리는 날이었습니다.
‘다음 주에 오면 만개하겠다’
이전에 갔을 때는 아직 꽃이 활짝 피지 않았습니다.
다시 중산리 이팝나무를 찾아갔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많았지만 이팝나무의 꽃이 새하얗게 보였습니다. 봄바람도 많이 불고 있었습니다.
편안한 캠핑용 의자를 펴고 앉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올해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니?’
파란색 잉크를 넣은 만년필을 골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먼저 채색하고, 이팝나무에 붓을 대자마자 잉크가 번졌습니다. 잠시 고민했지만 그대로 붓에 물만 묻혀 잉크를 번지게 했습니다.
이팝나무의 황홀한 모습을 어떻게든 멋지게 담아내려고 노력했던 3년
올해는 이렇게 무심한 듯 과감하게 그렸습니다. 이대로 만족합니다.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 흡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