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은금주 Oct 09. 2017

“자유로운 나무가
선물하는 행복한 열매”

고창군에서 유기농 포도를 생산하는 도덕현 농부

온새미로 유기농 포도원의 4000송이 포도



9월 초 포도 수확 시기를 맞아 고창의 온새미로 유기농 포도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렜다.    

거목의 포도나무들이 시야를 벗어날 만큼 드넓게 가지를 펼치고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자유롭게 자라는 곳.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그 경이로움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이곳에 올해는 한 그루에 4천 송이의 포도가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곳은 이미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한 해에 2~3천 명이 다녀가는 관광명소. 올해는 비공식 세계 기록을 가진 이 ‘기적의 포도나무’를 보기 위해 더욱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발길이 이어졌다. 2013년에 2천 송이, 2015년에는 3천 송이의 포도가 열렸던 이 나무는 놀라운 생명력으로 해마다 기록을 다시 쓰며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4천 송이 포도나무가 차지하는 면적만 3백여 평. 2천 평 규모의 농장에서 이 나무가 6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일반적인 포도나무 둘레는 10㎝ 정도이지만 이 나무는 53㎝다. 포도알의 크기도 일반 포도보다 1.5배나 크다. 그런데도 훨씬 달고 풍부한 맛을 자랑한다. 일반 머루포도의 당도가 14~16브릭스(brix)인 데 비해 이곳 포도의 당도는 20브릭스에 이른다. 

     

이곳 농장에는 이런 거목의 포도나무들이 24그루나 있다.

이 나무들에선 보통 2~3천 송이의 포도가 열리고, 가장 적게 열리는 나무가 1천 송이다. 보통 포도나무 한 그루에 50~100송이가 열리는 것에 비하면 정말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열 살이 넘은 포도나무는 열매 품질이 떨어져 뿌리째 뽑거나 땅을 갈아엎고 새 묘목을 심어야 한다. 하지만 이곳의 포도나무들은 올해 열세 살이 됐다.      


이 ‘기적의 포도나무’를 키운 주인공은 도덕현 대표. 벤처 농군, 스타 농군, 포도 명인으로 불리는 그는 

자신의 농장 방식대로 포도를 기르면 100년이고 200년이고 이 나무로 포도를 재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네스북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가 230세인데 자신의 포도나무를 그 이상으로 키워내고 싶은 바람을 갖고 있다.  

    

아마 2000년도쯤일 거예요.

일본에 3천 송이가 열리는 포도나무가 있다는 뉴스가 나오는 거야일본 사람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싶더라고요그렇게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온 거예요이 포도나무 품종이 유럽산 야생 포도나무인데 그때만 해도 이 야생 포도 대목을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어요몇 년 동안 공부하고 어렵게 나무를 구해 2005년에 500그루를 심었죠형질이 나쁜 것은 점차 도태시키면서 지금 24그루가 남은 겁니다.”     


포도나무 품종이 같다고 모두 이런 나무를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비법은 무엇일까? 답은 ‘온새미로 유기농 포도원’이라는 농장 이름에 들어 있다. 온새미로란,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김새 그대로,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나무가 가진 유전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최대한 나무에게 자유를 주고 사랑으로 보살피며 

스트레스 없는 환경에서 행복한 열매를 맺도록 정성을 다해 도운 것이 바로 오늘날 기적의 포도나무를 만든 비법이다.     


저를 보면 어떻게 그렇게 농사를 잘 짓느냐고 많이들 물어봐요그럼 저는 임산부를 생각하라고 해요좋은 것을 먹고스트레스 받지 않고공기 좋은 곳에 있어야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잖아요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못해주는 것이거든요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런 걸 잘해준다고 생각하면 돼요.”    

  


도덕현 농부의 농사법은 탄소순환농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숲 속 켜켜이 쌓인 자연 재료가 퇴비가 되어 자연 스스로도 나무가 잘 자라듯이 그저 우리 조상들이 하던 방식 그대로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도덕현 농부는 대나무톱밥과 참나무톱밥, 옥수수씨눈밥, 두부비지, 쌀겨, 보리겨 등등을 넣어서 만든 천연 퇴비를 써서 철저하게 토양을 관리한다. 농약이나 화학비료, 동물의 분뇨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식물성 발효 유기물 퇴비를 만들어 토양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 




도덕현 농부는 27년 전 농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친환경을 고집했다. 처음엔 사과 농장으로 시작했지만 친환경으로 재배하기가 어려워 1년 만에 땅을 갈아엎고 감나무를 심었다. 포도농사는 3년 후에 시작했다.

재작년까지 수확 시기가 다른 감과 포도를 함께 재배하다가 지금은 포도에만 전념하고 있다.      


제가 만성 비염 환자라 농약은 냄새만 맡아도 수도꼭지처럼 콧물이 줄줄 흘러요농사는 하고 싶은데 농약은 할 수가 없으니 처음부터 유기농으로 했죠전국에 유기농 하는 선생님들을 무던히도 찾아다녔어요그 분들 기술부터 정신까지 다 물려받은 거죠저는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유기농 하는 분들의 장점만 가져왔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왜냐하면 유기농이라는 것은 매뉴얼이 없어요기후도 다르고 환경 조건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 것을 배울 수가 없어요자기가 자기 것을 만들어가는 거지그분들 장점을 다 가져다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고창의 포도농사에 적합하게 토양을 만들어갔다고 보면 돼요.”     


그는 가장 싫어하는 말이 “농사를 짓는다”는 말이라고 했다. 농사는 짓는 게 아니라는 것. 짓는다는 것은 집처럼 설계도가 있다는 말인데,  농사는 정해진 설계도가 없기 때문이다. 농부와 농산물이 얼마나 잘 소통하느냐, 기후나 온도 같은 환경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농사가 뭐냐고 물으면 저는 그냥 생활이라고 해요공무원도 직장인도 하는 일이 다 생활이잖아요나도 농업이 생활일 뿐이에요어떤 사람들은 농사 힘들지 않으냐고 하는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힘들어야 살아 있는 거지힘들지 않으면 죽은 거예요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요.”

     

그는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유기농으로 지었지만 인증을 받은 것은 2009년이다. 자신이라는 사람 자체가 인증인데 무슨 서류가 필요한가 싶어 맨 처음엔 인증 자체를 거부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서류나 형식보다는 농사를 하는 사람의 인성이나 정신, 자격 같은 것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유기농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농사 자체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27년 전만 해도 유기농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던 때라 미친놈 소리를 듣고, 왕따를 당하는 것은 예사였다. 

처음 7년 정도는 판매처가 없어서 고생도 많이 했다.      



저는 농사를 처음 할 때부터 가격을 딱 정하면 그 밑으로는 절대 안 팔아요만약 20톤을 수확했는데 5톤밖에 못 팔면, 15톤은 다 땅에다 갈아 넣었어요유통업자들이 와서 싼 가격을 제시하며 달라고 하죠줘버리면 나는 끝나는 거예요그것은 포도 가격이 아니라 평생을 해온 일에 대한 자존심이기 때문이에요그렇게 여기까지 왔어요동네에서 미친놈이라고 소문이 났죠.  아무도 무서워서 말도 못 붙였어요안식구도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죠그렇게 7년을 보냈어요.”     


스스로를 괴짜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런 고집이 있었기에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최고의 명품 포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온새미로 유기농 포도원은 요즘 희성농장으로 더 많이 불린다. 희성은 도덕현 농부의 아들 이름이다. 올해 서른한 살인 희성 씨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포도농사를 짓기 위해 

뒤늦게 한국농수산대학교에 들어가 내년에 졸업을 한다. 앞으로 아들과 함께 수확량과 품질을 더욱 높여

세계적인 포도 명가를 이루고 싶다고 바람을 전한 도덕현 농부는 소비자들에게도 애정 어린 당부의 말을 전했다.     


소비자들이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았으면 좋겠어요몸에서 흡수하지도 못하는데 뭘 그렇게 많이 먹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가요좋은 것을 조금만 먹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너무 보기 좋고 편리한 것만 찾지 말고보이지 않는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면 더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이 될 겁니다.”








www.enviagro.go.kr

친환경농산물 인증정보를 넣으면

지역에서 생산자 정보까지 한 번에 ~







매거진의 이전글 “무주구천동의 귀한 유기농 사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