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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술사 Aug 19. 2021

[SF를 찾아서]16편/사후세계의 메세지<굿바이,욘더>

그리고 영화 <퍼스널 쇼퍼>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 2016)

그때그때 생각나면 찾아오는 비정기적 SF 장르 리뷰 No.16



최근 읽은 책과 영화는 공교롭게도 사후 세계로부터 메세지를 받거나 

혹은 사후 세계로부터의 메세지를 기다리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작품이었다.

먼저 김장환의 장편소설 <굿바이,욘더>는 제4회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수상작으로

약 30년 후의 근미래 (2047년경의 서울?)가 배경이다.


p. 17 中에서


그리고 사람들에겐 저마다 선호하는 디바이스가 달라붙어 있었다.

나처럼 손으로 컨트롤하는 방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팔목에서부터


엄지, 검지에 이어진 반쪽짜리 장갑 형태의 장비인 핸디를 사용했다.

'셰이드'라 불리는 선글라스 모양의 인터페이스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목걸이나 헤어밴드 같은 하드웨어를 쓰는 사람도 이었다.

요즘에는 아예 머리나 신체에 칩을 박아 넣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러면 시신경 조작을 통해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다.


"손님?"

 택시 기사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도 내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이 뚜렷이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정말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거기에 그대로 내려야할지. 아니면 어디라도 다음 장소를 찾아 이동해야 할지.

내 두뇌는 다음엔 무엇을 하라는 명확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어쩐다? 만일 여기서 내리면 집으로 걸어 들어가나? 이후가 없는 집에서 뭘하지?

집에 들어가서 그녀가 거기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할까?


 사망신고까지 마치고 왔음에도 그것은 말 그래도 '현실적'이지 않았다. 

분명히 거기 있어왔고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어떻게 그렇게 문득 없어질 수 있는지. 

이 세상 아무것도 그렇게 순식간에 없어지지 않는다. 스위치가 꺼지듯이, 갑자기.

  택시에서 내렸지만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후가 없어진 세상에서 멀리 떠나려고 했는데

결국엔 우리가 살던 거리로 돌아온 셈이었다. 나는 무심코 이후가 간혹 들르던 교회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이 동네에 처음 이사를 오던 날 그녀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소설 속에서 발췌한 위 내용처럼, 

암으로 아내를 떠나보낸 주인공 김홀은 


어느날 사이버 공간에 저장해둔 아내의 기억, 아바타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 육신을 버리고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공간인 '욘더'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p. 58~59 에서


 나는 그제야 미디엄이라는 여자가 했던 말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한 추모 사이트가 아니라는 걸.

그저 어디에 정리되어 있는 내 아내의 기억을 열람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어쩌면 내 머릿속에 있는 그녀에 대한 기억과 이곳 서버의 인공지능 속에 남아 있는

그녀의 기억이 만나는 일이다. 

내 속에 있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이곳에 저장된 그녀 자신의 기억을 통해 

다시 생명을 얻고 또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다.


  나는 다음 말을 찾지 못했다. 재차 이렇게 물어보는 것 말고는.

 "정말 맞아? 이후가 맞아?"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굴리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인공지능에 약간의 부하가 걸린 것 같았다.

아마도 상대의 이상한 행태에 대해 의미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시나리오를 찾고 있을 터였다.

 "맞는 거 같아. 내가 맞아. 내가 차이후!"

 "내가 누군지 알겠어?"

 나는 마치 잠깐 정신을 잃었다가 의식이 돌아온 사람을 대해듯이 그렇게 또 물었다.

"그럼."

"내가 누구야. 한번 말해봐."

"자긴 홀, 성은 김 씨고 외자 이름을 가진 내 남편. 2017년생. 2043년 성북3구청에서 나와 결혼했지."

아바타는 그저 데이터베이스의 자료를 인용할 뿐이었다.

"메세지를 보낸 것도 당신이야?" 내게, 찾아오라고?"

"응, 맞아. 맞아, 내가 보낸 게."

아바타는 말을 거두고는 시간을 두고 다시 시작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이 연출을 맡은

<퍼스널 쇼퍼>는 2016년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으로, 

감독의 전작<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 함께한,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주연을 맡았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분한 모린은,

얼마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쌍둥이 남매인 루이스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모린과 루이스는, 둘 중 누군가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남은 사람에게, 사후 세계에서 어떤 신호를 보내오기로 미리 약속을 한 상태다.

그래서 현재, 모린은 루이스의 신호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모린이 기다리는, 그리고 발견하게 되는 어떤 신호는

이 영화의 주제이자, 스포 및 결말에 해당하는 부분이므로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루이스의 연인이었던 라라가 새로 사귀게 된 남친 어윈이

모린과 만난 자리에서 '이젠 벗어나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소설 <굿바이, 욘더>의 후반부 어떤 한 장면과 겹쳐 보였다.


p.320 中에서


"그래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 안 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꾸만 되풀이 되는 기억이 아니라 진짜 망각, 진짜 오블리비온일지 몰라.

당신은 여기 자신의 의사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이제는 나의 의사에 의해서 머물고 있는 거야.

(중략) 당신은 이미 죽었어. 더 죽을 필요는 없지."

내가 말했다.


솔직히, 소설 <굿바이, 욘더>가 

내세우는 주제는 흥미로웠지만

소설의 완성도에 대해서만 질문한다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인터뷰어로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김홀이 반 미래학 박사인 장진호 박사를 인터뷰하고,

사회 전반의 화두가 되어 버린

욘더의 정체에 대해 관심을 갖는 장면,

그리고 후반부에 장진호 박사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 등등

작가가 나름대로 메세지를 담으려고 노력한 장면에서,

나는 그다지 큰 재미도,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


김홀은 인터뷰어로서, 인터뷰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지만

그뿐이다. 분명히 주인공인데, 

그는 이 소설의 세계관에서 벌어지는 일

(바이앤바이, 부흥사 K로 대변되는 사이버 구루, 브로핀 헬멧 제조사 등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있는 듯한 조직적인 네트워크와 카르텔)들과는

좀 동떨어져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인터뷰 장면에서도 

주인공이 인터뷰어로 명성이 좀 있다는 설정이 있기에, 

번뜩이는 날카로운 식견을 가지고, 심층적인 인터뷰를 할 줄 알았는데

그의 질문은 단편적인 정보의 조합만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p.320 中에서


"욘더.. 사이버 임모탈리티."

(중략)

"가상공간의 불멸,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며 이미 여기 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요즘 욘더라는 정체불명의 공간에 대해 하층 네트워크에서 활발히 이야기된다.

이야기의 버전은 다양하지만 그것의 요지는 대체로 '브레인 다운로드' 같은, 꿈의 기술이 완성되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그 기술로 인간의 정신을 사이버 스페이스로 전송해 서버가 유지되는 한 

그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작가가 던지는 질문과 주제 만큼은 공감할 수 있었다.


p.305  中에서

" 이후 씨의 경우나 두분 사이의 아이, 지효라고 그랬나요?

그 아이의 경우를 보죠. 우선 지효는 실체가 없는 것에서 비롯된 기억이란 점에서는

피치의 아버지와 다른 것이 없죠. 하나는 이후씨가, 다른 하나는 피치가, 

각자 바랐던 것이 기억으로 남았다는 것,즉 염원으로 간직된 기억들이란 점에서.

그런가 하면 이후 씨는 병상에서 이곳으로 바로 다운로드되었기 때문에 그 둘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죠.

그래서 아마 선생님은 한쪽엔 실체가 존재하고 다른 쪽엔 그게 없다고 믿으며 

그 양쪽을 구분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계실 거예요.

그러나 돌이켜보세요. 이곳에 살면서 그 둘 사이의 차이를 한 번이라도 명확히 느껴보신 적이 있나요?

아니, 만일 이후 씨가 이곳에 다운로드된 사실이 없고 우리가 그동안 선생님을 속이고 있었다고 하면 

선생님은 그걸 알아차릴 수가 이었을까요? 

설사 그렇다 한들 이후 씨에 대한 실감이 조금이라도 덜했을까요?"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김홀은 '욘더'에 온 후

어떤 한쪽은 실체가 존재하고,

그 반대쪽은 그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둘을 구분하여 나누려는 습관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정말 의미가 있느냐는, 

욘더에서 만난 인물의 지적에 뜨끔한다.


그리고 이 대화 이후  김홀은 아내를 만나, 

자신이 지금 진짜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깨닫게 된다.


<굿바이, 욘더>와 <퍼스널 쇼퍼>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후

그들이 실재(實在)하는, 

사후세계를 그리워하거나

혹은 직접 사후 세계에 들어가는 결정을 한 인물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망자에 대한 기억을

망각하지 못해,

<굿바이, 욘더>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인이 된 사람들의 메모리가 유령처럼 부유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들은,

소설과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어떤 장소에 가서, 혹은 어떤 사건을 겪으며 

작품의 말미에 스스로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작품의 결말에서 

각자 어디론가 떠난다.


욕망과 금기, 

기억과 망각, 

영원과 죽음.

선택의 기로에 놓인 

두 사람이 택한 마지막 장소는 과연 어디일까?


<굿바이, 욘더>는 결말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주지만

<퍼스널 쇼퍼>는 내게 확답을 주지는 못했다.


모린은 정말 그러한 이유로 

그곳을 택한 것일까?


나는 확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모린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 

굳이 다른 이들의 해석이 궁금하지 않은 것은


어떤 영화는 때로는, 

질문 그 자체로 만으로도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퍼스널 쇼퍼>는 내게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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