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리를 어떻게 (안) 볼 것인가

[평일의 의식의 흐름. 봄] #24

by 임재훈 N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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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애니메이션을 감상한 뒤로 동네 왜가리들이 좀 달라 보인다. 이 작품에는 창조자의 전령으로서 기괴한 왜가리 한 마리가 등장한다. 우리말 제목은 ⟨키미타치와 도오 이키루카(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라는 일본어 원제의 직역이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단출히 ⟨소년과 왜가리(The Boy and The Heron)⟩로 번안되었다. 서양의 배급사 관계자들 눈에도 ‘왜가리’가 눈에 탁 들어온 모양이다. 작품에 대한 호오와는 별개로, 일단 봐 버린 이상 우리 동네 왜가리들을 예전과 똑같이 대하기가 어려워졌다. 내 상상력이 지나친 탓일까. 다 안다는 눈빛인 것 같고, 대뜸 사람의 언어를 구사할 것 같고, 집까지 몰래 따라올 것 같고, 하여간 기분이 좀 이상했다. 그런데 이게 또 새로운 재미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있으나 없으나 별 신경도 안 썼던 동네 왜가리들이었는데, 이제는 안 보이면 궁금해진 것이다. 어디로 가 있나 하고. 왜가리 사진 몇 장 찍으려고 대수롭게 외출하는 일도 잦아졌다.

그렇다면 왜가리 입장에서 난 뭘까. 애니메이션 따위 볼 일 없는 왜가리들 눈에, 나는 ‘더 보이’도 ‘더 맨’도 아닌 ‘휴먼(a person)’이겠지. ⋯⋯어쩌면 이러한 시선의 대비를 확인하려고 왜가리를 찾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가리를 ‘더 헤론’으로 보지만, 왜가리는 나를 ‘그냥 휴먼’으로 일별할 것이다. 이쪽은 이미지로, 저쪽은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응시한다. 이 시선의 대비를 느낄 때 나는 괜히 만족스러웠다. 상대의 편견을 되갚아 주기는커녕 그러거나 말거나 보는 둥 마는 둥하는 왜가리는 내게 ‘대상’이면서 ‘나’였다. 저런 편견 없는 눈을 갖고 싶고, 편견에 찬 내 눈의 하찮음을 인정하는 경험. ⋯⋯지금은 의식적으로 왜가리를 본체만체하고 있다. 사진 안 찍는 연습도 하고 있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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