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은 정말 이상한 단어다

[평일의 의식의 흐름. 봄] #25

by 임재훈 N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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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이 있다.’ 특정 장소나 상황, 또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에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존재감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나 사물이 실제로 있는 느낌’이다. 뜻풀이가 난감하다. 있으면 있는 거지 ‘있는 느낌’은 대체 뭘까. 존재감이 있다는 말을 풀어 쓰면 ‘누군가/무언가가 있는 느낌이 있다’인 셈인데, 이건 또 대체 뭔 소리일까. 굳이 이렇게까지 배배 꼬아 가면서 한 대상의 존재-있음을 바라봐야 하나. 저 대상의 ‘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나, 그럼에도 내가 친히 그가/그녀가/그것이 ‘여기 있다’는 걸 알아봤다, 내게는 그와 그녀와 그것의 존재를 집어 내는 감이 있다, 라는 걸 뽐내는 언사가 아닌가. 타자의 존재를 추켜세우는 듯하지만 실은 나의 감을 뻐기는 투랄까. 엄밀히 따지면 대상애가 아니라 자기애다. 대상을 경유하여 결국 자기에게로 사랑을 보내는 행위. ‘존재감이 있다’를 ‘존재감이 강하다’로 바꾸면 자기애적 뉘앙스가 한층 짙어진다. 누군가/무언가가 있는 느낌이 강하다. 누군가/무언가의 있음을 알아차리는

‘내 느낌’이 강하다는 소리다. ‘존재감이 없다’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사람이나 사물이 (실제로 있는데) 없는 느낌.’ 결국 이 역시도 내 느낌에 불과하다. 내가 대상의 있음을 못 느낀 걸 두고 적반하장으로 상대한테 존재감이 없다고 탓하는 꼴이다. 내가 존재감이라는 낱말과 이걸 활용한 관용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다. 기왕 ‘존재’라는 글자를 써야 한다면 존재감보다는 ‘존재성’을 선호하겠다. ‘실체, 기체, 본질, 본성 따위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있는 확실성’을 뜻한다. 존재성이 있다/없다, 존재성이 강하다/약하다. 존재감에 비해 좀더 명확하다. 있는 느낌이 있고 있는데 없는 느낌이 있고 없는데 있는 느낌이 있는, 그렇다고 자신하는 ‘나’의 분별심을 상당히 덜어 낸 표현이다. 카페의 불투명한 창 너머로 보이는 검은 실루엣. 분명 사람들이 있다. 얼굴, 연령, 성별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지만 그들의 존재성은 실루엣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날 그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라고 나는 증언할 수 있다. 이미 스스로 있는 존재성에 대하여 내가 한 번 더 있게 하려들거나 감히 없애려는 건방을 떨지 말기. 존재를 감별하는 버릇을 버리기.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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