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겨울] #12
서해의 평균 수심은 50미터가 채 못 된다. 1,500미터에서 1,700미터를 오가는 동해의 해심(海深)과는 비교 자체가 무리다. 대신 서해는 조수 간만 차가 크다. 안 그래도 야트막한 바다가 물참과 간조때 수위 변화까지 크게 겪다 보니, 밀고 들어오고 쓸고 나가는 자리에 새길을 놓듯 갯벌을 활짝 닦아 놓는다. 또 서해는 남해와 마찬가지로 본래 내륙이었던 지형이 해수에 잠겨 형성된 침강 해안이다. 융기 해안인 동해에 비해 곶(바다 쪽으로 뾰족히 뻗은 육지), 만(바다가 육지 안을 파고들어 온 부분), 섬이 많아 해안선이 구불구불 복잡한 형태를 띤다. 땅이 내려앉아 생긴 서해안은 얕고 낮게 굽이져 있고, 땅이 솟구쳐 일어난 동해안은 깊고 드높아 벼랑져 있다. 서해는 밭과 닮은 흙빛 펄을 펼치고, 동해는 어느 산에서도 못 볼 푸르른 단애 절경을 제공한다. 똑같은 바다인데 한쪽은 땅의 형질을, 다른 쪽은 산의 기세를 간직한 듯하다.
이런 개인적인 감상 탓인지 동해에 갈 때는 왠지 ‘올라가는’ 느낌이다. 실제로 태백산맥의 급경사가 동해의 해안선까지 이어진다고 하니, 올라간다는 체감이 단지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이와 비교하면 서해는 정서적으로 좀 만만하다. 굳이 거창한 휴가 계획을 세우지 않고서라도 언제든 편하게 다녀오게 된다.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지면 늘 떠오르는 곳은 서해다.(남해도 물론 좋긴 한데, 내게는 동해처럼 ‘마음먹고 가야 할’ 본격 여행지 중 한 곳인지라⋯.) 혼자 차 끌고 곧잘 다녀오고는 한다. 특히 충청남도 태안의 두여해수욕장과 만리포해수욕장을 좋아한다.
사진 속 바다는 초겨울 충남 보령의 서해랑길을 거닐다가 촬영한 것이다. 서해랑길은 말 그대로 ‘서해랑 같이 걷는 길’이다.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부터 인천 강화군까지 뻗어 나가는 1,800킬로미터 길이의 도보 여행길이다. 하루쯤 오로지 걷기 위해서만 숙소를 잡아 놓고 온종일 길 따라서 바다나 실컷 보고 오면 좋겠다. 서해에서 늘 하는 생각이고, 서울에서 수시로 꾸는 꿈이다. 먼 타지 사는 소꿉친구 대하듯, 만만하고 정다이 여길 바다 하나 가졌다는 게 이렇게나 든든할 수가 없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